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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와 파리가 테러에 대처하는 방법

도도 프로필 사진 도도 2015년 06월 16일

중심의 변두리에서

현대 사회에서 여론과 의제가 뒤바뀌고 잊히는 데 필요한 시간은 몇 시간에서 며칠 수준이다. 요즘의 의제는 메르스지만 내가 여행하던 시기의 주요 의제 중 하나는 현재까지도 진행형인 IS였다. IS는 여전히 건재한다. 당시 제기된 문제 가운데 해결된 것도, 이렇다할 진척을 보이는 것도 없지만 사람들은 여기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다. 사람들의 불안을 먹고 자라는 기사는 언제나, 어느 순간에나 있다. IS가 로마 남부에서 로마를 정복하겠다는 영상을 촬영한 것은 내가 여행하던 바로 그 시기였다. 그리고 파리에서는 샤를리 엡도 테러가 있었다. 이 일이 있기 전부터 이들 도시는 범죄로부터 그리 자유로운 편이 아니었다. 나는 이 소식을 유럽에서 접했다. 내 경우 로마와 파리에 가기로 하면서 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소매치기에도 신경이 쓰였는데 소매치기를 훨씬 뛰어넘는 테러 소식까지 접하고서는 여행을 중도포기할지도 고민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한국에서 번화가를 지날 일이 있었다. 일본 관광객이나 중국 관광객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대체로 사용하는 언어, 그리고 길 어디서나 펴드는 지도 등으로 여행객임이 드러났다. 사고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두는 논리를 좋아하지 않으나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들을 보고 그들이 관광객처럼 보였던 부분을 반면교사로 삼아 가급적이면 나는 관광객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혼자 다녔기 때문에 한국어를 쓸 일은 없었다. 그러니 말을 하지 않는 이상 언어로 내가 외국인임이 드러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점에 안심 아닌 안심을 했지만 관광객처럼 안 보이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한국어를 안 쓰면 뭘하나. 우리가 한국인이나 중국인, 일본인을 얼굴만 보고 구분해내기는 어렵지만 그 중 한 나라의 사람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해낸다. 즉 나는 유럽에서 유럽인의 외모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목에는 늘 미러리스 카메라를 걸고 있었다. 누가 봐도 관광객 행색이다.


소매치기를 피한다고 내가 세운 전략은 단순했다. 그들은 보통 3인조나 4인조로 짝을 지어 다니며 한두 명이 내 시선을 끄는 사이 다른 사람이 내 가방을 들고 도망간다고 한다. 사실 내게 큰 돈은 없었다. 그러나 돈이 없다고 가방에 든 물품이 필요없는 것은 아니다. 여권이며 노트 등 그들에게는 크게 필요하지 않으나 나에게는 치명적인 것들이 있었다. 그래서 외투 주머니에 지갑과 휴대폰을 넣고 목에 카메라를 걸고 가방은 아예 숙소에 두고 다니기로 했다. 카메라는 보안이 안 되지만, 그 전까지 갔던 곳의 메모리카드는 따로 보관을 해 두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종이 지도를 펴들고 다니지 않는 대신 수시로 휴대폰 지도를 열어봤지만 그걸 노려 채 간다면 그것도 어쩔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여러 물품이 잔뜩 든 가방을 도둑맞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런 사전 준비는 별 의미가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여행 기간 중 아무것도 도둑맞지 않았다. 최근의 테러로, 혹은 테러 위협으로 인해 이들 도시의 경계는 삼엄했다. 로마의 경우 주요 관광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공항 수준의 보안 검색을 거쳐야 했다. 짐과 사람 모두 엑스레이를 통과하지 않으면 입장조차 할 수 없다. 따로 티켓을 구매하는 시간보다 보안 검색을 통과하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 바티칸에 갈 때는 두 시간을 기다려 들어갔다. 그 외에도 요소요소에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다. 로마는 문화관광부가 웬만한 유적보다 훨씬 아름다워 해당 관청에 들어가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경찰은 정부 부처에 관광객이 들어오는 것을 제지하지는 못했지만 그 외 부분은 많은 통제를 했다. 만세를 부르는 포즈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조차 제지당했다.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다고 해석한 것 같다.


파리는 무장한 경찰 또는 군인이 3명씩 조를 지어 수시로 순찰했다. 파리에서는 숙소를 다소 외진 곳으로 잡았는데 관광지가 아닌 곳도 무장 군인들이 순찰하고 있었다. 공항의 입국장과 출국장에도 조를 이룬 무장 군인과 경찰이 분 단위로 번갈아 지나다니는 게 보였다. 이들이 투입된 목적이 테러 방지라고 해도 소매치기가 앞에서 벌어지는데 무시할 수도 없을 노릇이라 결과적으로 소매치기도 볼 수 없었다. 불안감을 가득 안고 시작한 로마와 파리 여행은 아무 탈 없이 끝났다. 파리에 있을 때는 외교부에서 각별히 주의하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지만 로마에 있을 때는 그런 연락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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