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일어난 이상한 일

나는 함께 일하던 기자들을 좋아했다. 그들은 영민하고 합리적이었으며 상황에 대한 판단이 빨랐다. 직업적으로도 대다수는 뛰어났다. 나는 가끔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기사의 본질과 문제점을 그들은 빠르게 파악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과 일할 수 있다면 언론 일을 계속 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사실을 이중삼중으로 확인하고 그것을 토대로 기사를 쓰는 업무는 특성상 매우 소모적이었다. 그래도 여기라면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은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즈음 회식이 한 차례 있었다. 자리는 밤늦게까지 이어졌고 나를 포함해 여직원 두 명과 남자직원 두 명이 마지막까지 남았다. 두 명의 남자직원이 노래방에 가자고 했다. 나를 제외하고는 이미 술이 많이 들어갔던 것 같다. 남자직원들은 19금 영상이 나오는 노래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형태로도 저항하고 싶다는 표시를 하지 못했다.

나는 술을 별로 마시지 않았지만 다른 세 사람은 술을 많이 마신 것처럼 보였다. 포르노 영상이 나오는 그 이상한 노래방에서 남자직원 가칭 T는 나를 끌어안았다. 불쾌했고 어색했고 이상했다. 반면 T에게는 이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 같았다. 다른 남자직원과 여직원은 한 팔로 서로를 안고 앉아있었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네 명 가운데 나 혼자서만 이상함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 전부가 이 상황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은 나만 이상한 걸까. 그렇다면 이 상황은 이상하지 않은 게 아닐까. 당시는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이런 정도의 일이 직장에서는 당연한데 내가 과민한지, 아니면 내가 저항해도 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잠시 생각하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자리를 피하기로 마음먹고 도중에 빠져나왔다. 그리고 택시를 잡아 집에 가려고 했는데 그 틈에 T가 아닌 다른 남자직원이 나를 따라 나와서는 내게 어디 가냐고 물었다. 나는 이제 가야할 것 같다고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다시 끌려들어 가야하나 싶어 무서웠다. 정확히는 이 사람이 무슨 수를 쓸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하지만 그는 내가 가진 불안감에 부응하는 강제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다지 취한 것 같지 않았다. 그는 택시를 타려던 내게 5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쥐어 주었는데 나는 이에 강제력에 밀리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로 모멸감을 느꼈다. 돌아가는 길에 머릿속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른 기자 E에게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E는 내가 입사 초기에 마음고생을 할 때, 이 점을 간파하고 나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 적이 있어 당시 믿고 지내던 기자였다.

다음 날, 출근해서 함께 있던 여직원과 이야기했더니 자신은 필름이 끊겼다고 했다. 기억의 유무야 어쨌든 나는 그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줄 알았다. 정체 모를 불쾌감과 분노 같은 것 말이다. 혹은 나는 모르는 불쾌감의 정체를 그녀는 알고 있겠거니 했다. 무슨 근거는 없었지만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저간의 일을 모두 설명했다.

그녀는 부끄러우니 그 일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녀가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공개적으로 언급할 의사가 없다는 것만은 알아챘다. 그녀는 피해를 숨기려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로서는 그녀에게 그 일이 피해였는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당시 상황을 본 것만으로는 내가 그녀의 심리상태를 알 수 없었고 심지어 그녀는 기억까지 없다고 한다. 일어났던 일 가운데 그녀의 부분에 내가 더 개입할 여지는 없어 보였다.

이는 이 일을 내가 문제 삼으려면 내 케이스만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몇 시간을 고민하다가, 기자 E를 통해 내가 불쾌감을 느꼈음을 표시했다. 감정적인 면에서 이는 다른 세 사람 가운데 주로 T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자 E가 T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곧 T가 내게 잠깐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T는 나에게 따로 사과를 해왔다. 사과의 워딩은 ‘네가 그런 것 싫어하는 줄 몰랐다, 미안하다.’였다. 내가 사과의 내용과 품질을 따지기 시작한 게 이 때부터였다. 그리고 몇 가지 의문이 뒤따랐다. 왜 T는 내가 그런 일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묻지도 않고 멋대로 판단을 내려 나를 함부로 대했을까. 내가 느낀 모멸감이 두 남자직원의 무지에서 비롯되었다면, 당연히 그들이 아니라 내가 피해를 입어야하나. 그들의 성인지 감수성은 어느 수준일까.

T의 사과가 거짓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마디 사과를 듣는 것만으로 마음이 풀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가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다. 별 일 없었던 것처럼 마음이 좀 가라앉는데 2~3주 정도가 걸렸다. 내가 심리적 타격을 입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던 데는 가해자였던 T의 사과가 주효했다고 본다. 그대로 T와 함께 일하는 것은 영 불편했지만 나는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내가 크게 괴롭지 않다면 사과를 받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만족하기로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본 글은 뉴스타파 블로그를 통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뉴스타파 블로그 회원가입을 통하여 뉴스타파 블로그에 합류하세요! 블로그 가입하기 | 자주 묻는 질문
뉴스타파 객원칼럼은 뉴스타파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뉴스타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