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이 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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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쪽은 피해자다. 피해자가 정신적 압박이 심한 상황에 놓이기는 하지만 해결의 열쇠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피해자로서 본의 아니게 해결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이 정도로 내가 애쓰지 않아도 사건이 알아서 해결되었으면 했지만, 일이 그렇게 돌아갈 제도적, 인적, 도덕적 기반이 없어 이것저것 다해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X에게 사과를 요구했으며 가해자의 상관에게 이 일을 알리기도 했고, 나중에는 법적인 해결을 위해 경찰을 찾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 일을 개인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나는 피해자로서 가해자의 사과를 받는 일에 1년여를 매달리며 대화를 시도했다. 내가 고통받은 부분을 설명하는가 하면 가해자의 행동에 대한 이유, 이에 대한 설명, 사과를 지속해서 요구했다.

가해자는 블랙아웃을 주장했다. 내가 가해자의 블랙아웃을 믿기까지 두 달, 그리고 내가 가해자에게 가해 사실을 납득시키는 데만 넉 달 이상을 소모했다. 가해자는 당시의 기억이 없다는 이야기를 반복하며 사건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가해자는 끝내 사건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말을 못했지만, 자신이 벌인 일이라고 말하지도 못했다.

나는 완전히 실패했지만, 사과 요구가 쓸모없는 일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피해자가 겪는 괴로움 가운데 하나가 이 일이 자신으로 말미암아 일어났다는 자책감이다. 자신의 잘못으로 이 일이 일어났다는 자책감을 안게 되고 자존감도 떨어진다.

물론 성폭력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초래한다. 피해자가 사건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더라도 자신이 왜 이런 사건을 겪게 되었는지에 대해 혼란을 겪는다. 사과 요구는 피해자가 자신의 감정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사건에 대해 아무리 잘 설명해도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겪은 일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기는 어렵다. 언어의 한계, 이야기를 듣는 상대가 피해자나 가해자에 대해 가진 개인적 감정이나 평가, 성범죄에 대한 개개인의 의견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슈가 될만한 이야기를 알리는 것이기에 알린 이후로는 주위로부터 쏟아질 시선을 각오해야 한다. 이를 감당할 수 있다면 공론화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가 피해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리라는 보장은 할 수 없다. 오히려 피해자가 다른 사람의 시선에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고, 어쩌면 가해자를 사회적으로 매장할 수도 있다.

내 경우 사건을 아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것 외에는 일이 어떤 방향으로도 진행되지 않았다. 공론화가 효과를 보려면 여론 형성이 가능할 정도의 정서적 공감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게 사실상 불가능한 조직임을 내가 너무 늦게 깨달았다. 조직은 이 일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는 이상 피해자인 내 입장을 고려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고소 후 출근을 하는데, 그 전까지 멀쩡하게 잘 다니던 회사가 갑자기 불에 휩싸인 것처럼 보였다. 내가 앉아있던 자리며 사무실 공간이며 업무상 돌아다니는 곳이며, 모든 곳이 다 지옥 같았다. 당장에라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이 일을 이유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정신이 다른데 가 있으면서도 꾸역꾸역 다녔다. 자살충동을 느낀 것도 여러 번이다.

D의 말로는 X로 하여금 무조건 나에게 사과하라고 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 E를 불러놓고 자신은 일이 있어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이들 셋은 모두 워크숍 참석자였다. 적어도 D가 자리에 있을 때까지 E의 입장은 X가 나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단호했다고 한다. 이는 내가 고소하기 이전, 사과를 받으려던 단계에서의 일이었다.

나는 조서를 쓰면서 당시 워크숍 참석자의 명단을 경찰서에 함께 제출했기 때문에 경찰서에서 참고인들에게 연락이 가면 놀라지 않을까 싶어 그 가운데 몇몇 사람에게 내가 X를 고소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내게도 설득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나는 E가 나를 도와줄 사람이라고 생각해 이례적으로 사건 내용을 사건 발생 며칠 후에 이미 알렸다. E는 내가 고소를 진행하면 X는 끝장이라고 했다. 이 일로 법적 절차를 밟게 되면 나도 다치지만, X의 경력과 가정생활이 다 파탄 날 텐데 X가 그렇게 되면 내가 그 심적 부담을 다 감수할 수 있겠느냐며 취하하라고 했다. 사회적 매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 줄 모르냐는 말도 덧붙였다.

내가 설마 그걸 몰랐을까? X가 처벌을 받으면 X가 당연히 타격을 입을 줄 알았고 내게는 그게 목적이기도 했다. 이전까지 몇 달간 처벌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피해자가 살아남기 어려운 회사 환경과 내가 X의 처벌보다 사과를 원했던 것 때문이다.

나는 오랜 시간에 걸쳐 사과를 받으려고 했지만, 실패했기에 처벌을 위한 절차를 진행한 것이다. 일을 복잡하게 풀고 싶지 않았고 X의 사람됨에 대한 기대 탓에 언젠가는 사과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X가 처벌을 받았을 때 내가 심적 부담을 느끼리라는 생각은 어느 순간에도 한 적이 없었다.

E는 상상 이상으로 영악했다. E는 T와의 사건에서 내가 사과를 받을 수 있게 해줘서 내 신뢰를 얻었다. 하지만 X와의 일을 내가 고소했다고 하자 완벽한 가해자의 편이 되었다. E에게 중요한 것은 조직 내 성범죄 가해자가 처벌을 받지 않을 정도로 사건을 무마하는 것이지, 사건의 해결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과하는 정도면 내가 별다른 논란을 일으키지 않으리라고 생각했기에 E는 내 사건의 두 가해자 T와 X로 하여금 내게 사과하도록 조언했고, X를 고소까지 한 경우에는 사건 자체가 컸기 때문에 법적 처벌이나 수위 높은 징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나를 말리려 했다.

E는 내가 정신적으로 얼마나 고통을 겪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지식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E의 입장이나 여건상 아무래도 나보다는 X에게 자신을 투사했을 것이다. 이너 서클끼리의 보호는 이후에 혹시 사고를 저지를지 모르는 자신을 지키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고소를 했는데도 이 고소 건으로 불안감도 크고 가해자에게 분노 감정도 상당히 큰 상태였기 때문에 나를 설득하려는 말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런 종류의 말이 불쾌하게 들렸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말이 맞는데 내가 화가 나서 저만큼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심리상태가 불안정했기 때문에 내 판단에 자신감을 갖지 못했다. 당시의 나는 이성을 잃었다고 해도 될 정도로 이 일에 사로잡혀 있었다. 거의 유일하게 판단할 수 있었던 게 내가 판단불능에 가까운 상태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간을 두고 고민해보려고 판단을 유보했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대부분은 나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기름을 부었다.

가해자의 입장을 주장하지 않고 내 입장에 서서 이야기를 하던 소수의 기자 가운데에서도 고소를 취하하라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혼자 법적 절차를 밟기 시작했기 때문에 내가 받을 스트레스가 너무 크고 사건이 마무리되기까지 기간도 길어질 것이며 X가 처벌을 받는다고 해서 내 마음이 풀릴 것을 보장하기 어려우니 그만두라고 했다. 확실히 나는 이제껏 받아본 적이 없는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주위에서는 조언 이상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사실상 모든 절차를 혼자 진행하고 있었다.

이즈음 함께 일하던 기자 한 명이 소송에 휘말렸다. 해당 기자가 작성한 기사의 사실 내용이 맞지 않으며 악의적으로 기사를 냈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고소를 당한 기자는 물론 내부에 있던 다른 기자들은 고소 취지에 반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또 이런 소송은 보통 기자 외에 언론사가 함께 걸리기 때문에 회사 차원에서 방어한다. 전담 변호사가 붙고 회사의 기자들이 모두 같은 편이 되어준다.

고위 간부 한 명이 이 건에 대해 내부적으로 매 역할과 비둘기 역할을 나누었다. 간부 한 사람에게 원고 측에 연락해 분노 연기를 하도록 지시하고 자신은 후배들이 화가 많이 나서 어쩔 수 없지만, 자신은 그들을 돕고 싶다며 원고 측을 달래기로 했다.

이 소송에 걸렸던 기자는 나도 고소 진행 중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스트레스를 이유로 나에게 일의 대부분을 넘겼다. 내부 직원과의 소송에 시달리면 스트레스로 인한 괴로움을 말할 수 없다. 말한다고 해도 업무를 회피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조직 차원의 방어를 받는 것이 아니라 조직과 싸워야 한다. 하지만 회사 밖의 사람과 싸울 때는 입장이 달라지는 모양이다.

고소 후 X의 상급자인 D를 만나러 갔을 때의 일이다. 찾아갔더니 D가 없었기 때문에 근처에 있던 다른 기자와 잠깐 대화를 나누었다. 이 기자는 D, E, X와 더불어 당시 워크숍 참석자이기도 했다. 가칭 J라 하겠다.

나는 D가 어디 있는지, 언제 올지를 묻고 그에 대한 답만 들을 생각이었다. 다른 이야기를 할 생각이 없었는데, 이야기를 시작하고 불과 몇 분 사이에 나는 사건 대부분을 J에게 말하고 말았다. 결국, D의 소재는 밝혀내지 못했다. 기자가 무섭다는 생각을 한 것이 두 번인데 이 일이 두 번째였다. 어쨌든 이 이야기가 최소한 당시에는 J 선에서 넘어가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와중에 X는 담당형사의 전화를 받았다. 형사가 고소사실을 통지했더니 담당 형사에게 보이스피싱이 아니냐고 했단다. 내가 고소한다는 것은 아예 계산 밖이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상황파악을 하고 나서는 내가 이 이야기를 일부라도 알렸던 직원들을 대부분 만나서 사건에 대해 설명을 했다고 한다.

내가 직원들 몇 명에게 사건에 대해 말한 것은 맞는데 X가 만난다는 사람들에 대해 들어보니 그들이 누구인지를 거의 오차 없이 파악하고 있었다. 나는 X가 이 부분을 알아냈는지, 혹은 추측으로 맞춘 것인지는 모르겠다. 고소 이후 X는 사건에 개입된 직원, 내게 사건 이야기를 들은 직원들을 30분에서 한 시간 간격으로 나누어 개별적으로 만났다. X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내가 알게 된 것은 X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도중이었다. 회사 안에서 정보는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

X가 다른 기자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말한 내용은, 내가 지난 몇 달간 가해자를 스토킹했고 워크숍에서의 사건은 내가 있던 방에 들어와서 방이 미끄러워 내게 엎어진 적이 있다는 것이란다. 그리고 내게 무고와 명예훼손을 걸 생각이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블랙아웃이라던 X의 기억이 내가 X에게 알린 정보를 토대로 X에게 유리하게 재구성되어 있었다. 스토킹의 근거는 내가 만남을 요구했던 내역이라고 하는데 이는 사과 요구를 하려던 것으로 내용이 다르다. 사건 내용은 여기서 밝히지 않겠지만, 이 내용은 아니다. 이 내용이었다면 내가 애써 숨기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략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하자면 X의 발언은 나에게 별로 타격이 없었다. 화가 났던 것은 사실이지만, 나에게는 기록도, 자료도 있었다. 또한, 나는 X에게 이 사건과 관련한 모든 이야기를 했고 X는 나에게 관련된 모든 이야기를 들었다. X는 증인이 개입된 정황, 그들의 신원, 사건 관련 정보 등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경찰 조사 과정에서 무슨 말을 했을지는 X에게 뻔한 것이었다. 나는 X가 회사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것이 ‘블러핑’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X도 내가 이 판단을 내릴 것을 모를 리 없었다. X에게 화가 나기는 했지만,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이 거짓말의 마지막으로 X가 어디를 생각하는지 의아했던 것도 사실이다. 당시의 나는 화를 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는데, 화를 낸다고 달라질 것도 없어 그만두었다.

나는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고 일만 하면서 다른 감정을 공연히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X는 D와 G에게 네 명이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 나를 설득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X를 포함해 이들은 모두 언론사 간부였고, G가 주도적으로 이 자리를 만들었다. 의도는 뻔히 보였지만, 거부하지 않기로 했다. 그 자리를 거부한다고 해서 간부들이 나에게 불이익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미 회사가 들썩거릴 태풍의 눈이었기에 D와 G의 제안을 거절한다고 해서 더 나빠지려야 나빠질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혹시 그들이 조금이라도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할지 아닐지에 대해서는 들어보고 싶었다.

G에 대해서는 사내에 도는 루머를 들은 적도 있고 G와 함께 일하던 동료들의 평으로도 그다지 좋은 말이 없었다. G가 이 일에 개입할 기미를 보이자 G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이 여기저기 많다며 그럴 여지를 주지 말라고 개인적으로 내게 연락한 사람까지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G의 직함 가운데 이런 일에서 명목상으로라도 나를 도와줘야 할 포지션이 있기도 했고, X가 온 회사에 허위 사실을 퍼뜨린 것 이상의 대형 이벤트가 설마 있으랴 하면서 마음을 놓은 탓이다. D는 후배들에게 신망이 높고 나로서도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X의 얼굴은 보고 싶지 않아서 X를 제외한 두 명만 보겠다고 했다.

나는 두 사람에게 예상을 벗어나는 좋은 해결 방안을 기대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지만, D와 G의 이야기는 예상을 전혀 벗어나지 않았다. 역시 워크숍 참석자였으며 X의 상급자이기도 한 D는 모든 고통은 네 마음속에 있는 것인데 ‘X를 고소한다고 네 마음이 편해지겠냐’고 했고, 내가 고소하면 X가 많이 다칠 텐데 꼭 그래야겠냐고 내게 물었다.

이들에게도 내 입장은 없었고 가해자의 상황만 있었다. 여전히 스트레스가 심해 나의 판단력에 대해 자신할 수 없었지만, 이때는 화를 참지 못하고 내가 그들을 몰아붙였다. 내가 피해자고 원인제공은 가해자가 한 것인데, 왜 고소와 피해·가해 상황을 분리시켜 생각하는지 되물었다.

X가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고소하지 않았을 텐데 왜 그 둘을 따로 떼어서 내가 X를 파멸시키려는 사람으로 몰고 가냐고, 내가 그때 겪은 일과 지금까지 겪는 정신적 피해는 뭐냐고, 이런 이야기는 내가 아니라 X에게 가서 하라고 했다. D는 내 말을 듣고, 내 마음이 분노로 가득 차 힘들어 보이는데 그 마음을 내려놓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얼마 후 나는 G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조언을 부탁했더니 입장 정리를 잘했던데 뭘 묻느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G의 그 직함은 해당 분야에서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하려는 것보다는 이후 행보의 발판에 불과했던 게 아닌가 싶다.

X로 하여금 나에게 사과하도록 강요하다시피 했다던 D를 다시 찾아갔더니 ‘난 네가 이해가 안 돼’라며 갑자기 말이 바뀌었다. 가해자 X가 도와달라는 요청은 적극적으로 들어주고 피해자인 내가 도움을 청하자 나를 혼자 남겨 두었다.

X는 내가 만나기를 거부했고, D와 G의 설득도 실패하자 어쩔 수 없이 다음날 경찰 조사를 받으러 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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