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뷰징 업체에 들어오기 전, 다른 언론사에 있을 때의 일이다. 따뜻한 사무실에서 밖에 눈이 내리는지도 모르고 있을 때 기자 한 명이 사무실로 돌아왔다. 몸을 녹이던 기자에게 어디에 다녀오는 길인지 물었다. 기자는 취재하러 나갔는데 막상 가보니 얘기 안 되서 킬시키고 왔다고 했다. 기자는 '잘했지?'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장난스러운 말투에 숨막히는 언론사 생활 속에서 작은 여유를 느끼고 나도 따라 웃었다.
얘기 안 된다는 것은 기사화할만한 이야깃거리가 안 된다는 뜻이고 킬시켰다는 것은 기사화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의미다. 이를 비롯, 어뷰징 업체로 넘어온 이후로 들을 일이 없었던 말이 몇 가지 있다. 기사를 한 건이라도 더 써야하는 마당에 얘기 되고 안 되고가 무슨 상관이며 킬이 웬 말이랴. 공정보도는 꿈에도 없는 단어였고 반론권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으며 취재는 그냥 안하는 것이었다. 어뷰징팀은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를 쫓아다니며 낚시만 하면 그만이었다. 기사에 대해 누가 항의하면 이러이러한 과정으로 취재했다며 기사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기사를 삭제했다. 취재를 안했으니 증거가 없고 끝까지 간다고 치면 법적으로도 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를 계속 모니터하다보면 시사나 트렌드와 무관한 검색어가 올라오는 일이 간혹 있다. 대학교 수강신청이나 합격자 확인, 기업체 입사 합격 확인 등이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 목을 매는 어뷰징팀도 이에 대해서는 무시해도 좋다는 지침을 받았다.
한번은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로 토익이 올라왔다. 새로운 부정행위가 적발되었거나 시험 유형이 바뀌었다면 얘기가 되겠지만 둘 다 아니었다. 정기시험 성적이 나오는 날짜라 토익 응시생들이 토익을 검색해 성적을 확인하려고 한 것이다. 토익은 한동안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곧 다른 직원이 토익을 갖고 작성한 기사가 올라왔다. 뭘 썼나 봤더니 오늘이 토익 성적이 나오는 날이라고 기사를 냈다. 그 순간 내 머리에는 내가 아는 온갖 폭력적인 언어가 스쳤다. 대체 그 기사를 누가 볼까. 그 기사를 보고서야 오늘이 토익 성적 확인하는 날임을 알아야 할 사람이 있기나 할까. 기사를 왜 쓰는지는 알고 쓴 걸까. 무슨 생각으로 기사를 썼을까.
인터넷 뉴스 기사가 기존의 신문이나 방송과 크게 다른 부분 중 하나는 기사를 읽는 사람이 덧글을 달 수 있다는 것이다. 기사 작성자가 덧글란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직접 낸 기사에 대한 책임감이나 자존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어뷰징팀에서 다른 직원들과 덧글 열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니 의견차가 컸다. 대다수는 확인하고 싶어도 기사를 작성하느라 시간이 없다고 했다. 본인이 쓴 기사가 아니기 때문에 아예 안 본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하나하나 다 찾아 확인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덧글란을 익명으로 운영하는 사이트의 악플에는 자신도 익명을 사용해 직접 키보드 배틀을 벌인다고 했다. 바이라인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이는 회사가 원하는 바는 아니다. 회사는 어뷰징 담당자들이 직접 출고한 기사가 옳든 그르든 트래픽만 끌어주면 되기 때문에 키보드 배틀로 시간을 잡아먹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새로운 어뷰징 기사를 올리는 게 실적 면에서도 낫다. 하긴 키보드 배틀을 하려면 계속 페이지 새로고침을 해야하니 토익 기사보다는 키보드 배틀이 회사 수익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전에 다니던 한 언론사에서는 기자에게 고정 칼럼란을 제공했다. 그 가운데 자신의 페이지를 보여주며 읽어보라고 했던 기자가 한 명 있었다. 농담 삼아 악플 달아도 되냐고 했더니 진지하게 그게 더 좋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 기자가 말한 좋다는 의미는 정말 악성 덧글을 달아도 좋다는 게 아니라 논리적인 반박이나 다른 의견을 개진해도 좋다는 의미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기자가 쓴 글이 천 개가 넘어 다 읽지 못했고 결국 한 개의 덧글도 달지 못했다.
나는 다른 어뷰징 담당자가 말한 악플이 그저 시비를 걸기 위한 것이었는지, 잘못된 정보에 반박하기 위한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옳은 정보를 전달하지 못해 독자가 그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빈 바이라인 뒤에 숨어 익명성을 이용해 기사를 자신이 작성하지 않은 척 기사를 옹호하는 덧글을 다는 것은 옹졸하고 치사하다.
관리자들은 이런 부분을 전부 간파하고 바이라인을 작성하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웃음거리가 될 기사를 올려도 작성자가 누구인지 모르니 비난하고 싶어도 네티즌은 타깃을 찾을 수 없다. 잘못 출고한 기사를 지우는 것은 블로그의 글을 삭제하는 것만큼 간단하다. 직접 만든 기사를 두고 익명성 뒤에 숨어 키보드 배틀을 벌이는 것도 암묵적으로 허용되었다. 어뷰징을 할 때는 트래픽 유발이라는 한 가지 목적만을 본다. 이후 기사가 미칠 영향, 혹시 발생할 피해자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뷰징 기사에는 책임감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