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하나가 독자에게 닿기까지

방송사에서 기사를 하나 내기 위해서는 우선 취재계획을 올려야 한다. 그 다음에 취재계획에 대해 팀장이나 부장에게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촬영기자를 배정받을 수 있다. 촬영기자와 함께 취재를 하고 기사를 작성하면 팀장이나 부장에게 그 기사를 보여줘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기사 내용이나 표현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다. 여기서 기자들은 그들의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기사에 대해 조율을 마치면 기자는 원고를 직접 읽고 녹음한다. 그리고 편집자에게 녹음한 테이프와 취재해온 영상을 넘겨주고 그들은 뉴스로 내보낼 영상을 편집한다. 기자는 편집자에게 뉴스 편집에 대해 지시하고 그렇게 완성된 영상을 다시 팀장 또는 부장에게 보여주고 승인을 받는다. 그제서야 리포트 하나가 채널을 통해 빛을 보게 된다. 신문사는 영상 편집 과정이 없는 대신 기사 승인을 받은 다음 교열기자의 교열을 받아야 한다. 교열 과정에는 문법적 오류 수정은 물론이고 팩트 체킹도 포함된다. 이렇게 많은 과정을 거쳐야 겨우 기사 하나가 나간다. 기사 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반면 여기서 내가 다루는 뉴스 관리 시스템은 개인 블로그와 다를 바 없다. 글을 넣고 그림을 삽입해 전송 버튼을 누르면 이 회사 사이트는 물론 메인 포털에까지 순식간에 올라간다. 기사를 올리는 데 아무 제한이 없다. 한번은 주요 포털 메인에 한 언론사의 기사가 걸린 적이 있다. 기사가 포털 메인 첫 번째에 걸리는 것은 신기할 게 없지만 그것은 기사라고 할 수 없는 글이었다. 기사 제목은 “편집장 XX야, 일 때려친다”였다. 이 기사의 원문은 삭제되었지만 파이낸셜뉴스는 직접 이 사안을 다루었다. 2013년 11월 27일자로 ‘“편집장 XX야, 일 때려친다”.. 이게 네이버 뉴스 제목?’이라는 제목으로 남의 일인 것처럼 대한 기사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 이 기사는 2013년 5월 24일 일간스포츠에서 비슷한 기사가 나갔던 일을 인용했고, 이 내용이 해당 언론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고 악성 패러디물이 퍼져 언론사의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방송사와 신문사를 거치면서 나는 이런 일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방송사와 신문사 생활은 한편으로 절차와의 전쟁이었다. 최종적으로 나간 기사에 문제가 있으면 이 많은 과정에 걸리는 모든 사람들이 연대 책임을 물어야 했고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언론사 전체의 책임이기도 했다. 그만큼 기사 하나를 내보내는데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대체 저런 글이 어떻게 데스크를 통과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기서 어뷰징 업무를 직접 맡고서야 이 일을 이해했다.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기사 하나 내는 게 식은 파이 먹듯 쉬운 일이다. 여기서 데스크가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어뷰징 기사를 관리자가 일일이 보고 확인할 시간이 없다. 시간만 없는 게 아니라 필요도 없다. 회사의 목적은 한 명이라도 회사 사이트에 더 끌어들여 광고 수익을 얻는 것이다. 팩트도 맞든 틀리든 상관없다. 트래픽만 끌어들이면 된다. 기사 데스크는 기사가 나가는 시간을 지연시킨다. 실시간 검색어는 시시각각 바뀌는데 한가롭게 데스크를 보는 게 트래픽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방해가 되면 됐지, 이익이 될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어뷰징 인력에게 데스크 권한을 같이 준다. 엄밀히 말해 데스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뷰징 담당자가 기사를 올리면 기사 작성을 하고 직접 데스크를 통과시킨 것으로 보는 게 정확하다. 나는 여기서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기사화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

어뷰징 담당자는 권력을 갖는 대신 회사로부터 어떤 보호도 받을 수 없다. 기명기사를 내는 기자들은 기사로 인해 소송에 걸릴 때, 회사는 법적 자문을 받게 해주고 동료나 선후배들도 도울 수 있는 선에서 서로 돕는다. 그러나 어뷰징 담당자는 회사로부터 인적, 재정적, 법적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 어뷰징 담당자는 기자가 가르친대로 기사를 복사 붙여넣기했지만 기사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기사를 삭제해버린다. 사안이 커서 기사를 삭제하는 정도로 진화되지 않으면 회사는 ‘그 기사는 회사와 무관하며 알바생 개인이 쓴 기사’라는 해괴망측한 변명을 한다. 물론 소위 알바생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는다. 비난받던 알바생이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회사의 어떤 지시를 받고 어떻게 그 기사를 작성했는지 회사의 모든 기사 작성 프로세스를 공개하면 언론사는 더 귀찮아지기 때문이다. 회사도 이 점을 알기 때문에 대형 포털 메인을 통해 편집장에게 욕을 난사한 파이낸셜뉴스와 일간스포츠의 어뷰징 담당자는 회사로부터 신원이 폭로당하는 일을 피한 것이다. 그들은 알바생이라는 불특정 다수를 비난하면서 일을 정리했다. 어뷰징 담당자가 빈 바이라인 뒤에 숨어있기는 하지만 문제가 커지면 보호받지 못하고 버림받는다. 사실 ‘회사의 지시로 어뷰징을 했다’고 어뷰징이나 언론을 모르는 대중에게 밝히는 것은 ‘히틀러 밑에서 어쩔 수 없이 충성했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방송은 시간의 제약이 있다. 그래서 중요한 기사라도 다른 기사에 밀려나는 일이 많았다. 취재기자들은 늘 큐시트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큐시트 상의 순서가 취재기자가 생각하는 기사의 중요도와 맞지 않았던 탓이다. 기자 간에도 이견이 있었고 큐시트에 직접 개입하는 간부와 취재부서의 간부 사이에도 이견이 있었다. 방송에서 시간 제약은 항상 문젯거리였다. 길면 긴대로, 짧으면 짧은대로 문제였다. 보도국은 아이템 자체가 모자라는 일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 편집부는 취재부서가 발제한 아이템을 다 쓸 수가 없을 지경이라 파업 상황이 아니고서는 항상 길어서 문제였다. 편집부서가 기사를 밀어내면서 큐시트 핑계를 대면 취재부서는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시간은 항상 모자랐다. 쌍용자동차 노조 파업 1000일이 되었을 때 메인 뉴스는 그 소식을 다루지 않았고 이 리포트는 밤 시간 뉴스에 나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 날 메인 뉴스가 나갈 때 나는 고용노동부 출입기자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뉴스에서는 팽이버섯의 국산 종균을 개발해야 한다는 리포트가 나갔다. 물끄러미 뉴스를 보던 기자가 내게 말했다. ‘넌 저게 궁금하냐?’

온라인은 지면이나 시간의 제약이 없다. 그러니 기사를 되는대로 마구 쏟아내는 것이다. 어제 예능 프로그램 하나가 방송되었다면 그 방송을 가지고 수십 개의 기사를 내보낼 수 있다. 특히 어뷰징을 한다면 기사의 양은 많고 데스크는 없다.

어뷰징 담당자 한 명이 제목에서 명백한 오타를 낸 적이 있다. 그 기사가 상위에 랭크되면서 다시 기사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담당 팀장이 그제서야 맞춤법 오류를 지적했다. 수정 요구가 아니었다. 이후로 주의하라는 말 뿐이었다. 팀장은 이미 기사가 올라올 때 오타를 봤고 오타임을 알면서도 수정하지 않았다.

기사에 오타 하나만 있으면 기사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다. 언론에 발을 들여놓기 전의 내가 그랬다. 기자가 제대로 뭘 모르고 쓴 것 같고 이 정도 확인도 안하고 기사를 내보냈나 싶었다. 나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쓰는 입장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글을 다듬어도 미처 모르는 오류가 나온다. 취재기자도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교열기자는 언론사에서 필요하다. 디지털 시대로 넘어와 정확성보다 속보성을 중시하면서 주요 언론사 가운데 이미 교열기자를 없앤 곳도 있다. 언론이 기사의 오탈자 수정이 따로 비용을 들일 정도로 중요하지 않다고 인식한지 오래라는 의미다.

데스크나 교열기자가 언론사에 취재기자만 있기에 심심해서 배치한 직무는 아니다. 모두 필요해서 있는 인력이다. 내 기사는 데스크도, 교열도 받지 않는다. 누구도 내 기사를 확인하지 않는다. 내 기사를 처음으로 보는 것은 나도 아니다. 기사를 클릭한 독자가 처음 기사를 본다. 독자는 모든 기사가 일련의 과정을 거쳤기에 언론사가 내보냈다고 생각하고 믿겠지만 어뷰징이 언론을 뒤덮는 환경에서 그 생각은 처음부터 끝까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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