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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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ABC

도도 프로필 사진 도도 2014년 12월 31일

중심의 변두리에서

같은 시기에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 대두되었던 두 연예인이 있다. A는 불륜으로, B는 이혼으로 화제였다. 화제의 규모로는 큰 차이가 없었는데 이 두 가지 이야기를 다루는 언론의 태도에는 차이가 컸다.

A에 대해서 회사는 처음부터 침묵을 지시했다. 기사를 내지 말라고 했다. 얼마 후 타사 기사를 통해 진전된 정보가 나왔다. 이것도 밝히면 안 되냐고 관리자에게 물었더니 괜찮다고 콱 물어버리라고 했다. 관리자도 A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관리자에게 내가 본 기사를 보여줬는데 작성한 기자의 이름을 보더니 이 사람 기사는 받으면 안 된다고,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그러려니 했다. 보도 원칙상으로도 그게 옳았다. 타사의 모 기자가 기사화했다는 이유로 이 회사가 취재 없이 똑같이 기사화할 수는 없었다. 그간 내가 했던 일이 그 보도 원칙을 전부 어기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정보가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 오르는 것은 물론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대부분의 언론사가 다 받아썼다. 나는 이 타이밍에는 굳이 받아쓰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딱히 의미가 없어보였다. 같은 일을 하는 다른 직원이 혹시 이에 관해 쓰고 있냐고 나에게 물었고 나는 아니라고 했다. 다른 직원이 이에 대해 글을 몇 개 올렸다.

A의 불륜과 A의 주변인까지 도마에 오르며 며칠간 공방이 오갔다. 그즈음 나는 A에 대한 기사를 하나 올렸다. 상대의 주장과 그에 대한 A의 반론을 인터넷에 있는 정보를 토대로 복사 붙여넣기해 구성한 다음 제목으로는 상대의 주장을 적었다. 곧 회사의 관리자 한 명이 전화를 받았다. 아무래도 내가 쓴 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기사가 삭제되지는 않았지만 제목은 A의 반론으로 바뀌어 있었다. A는 이제 본인 기사 데스크까지 보고 있었다. 나는 기사 수정에 대해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사실 회사에서 손을 대도 할 말이 없는 기사는 이것 외에도 많다. 나는 취재를 하지 않았다. 나는 기자가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을 알았고 내가 여기서 정보를 수집한 출처는 어디 가서 내 기사가 옳다고 주장할 근거가 전혀 되지 못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 점을 이유로 기사를 삭제한다면 할 말은 없었지만 전례와는 맞지 않았다. 이 회사는 모든 기사를 회사가 보증할 수 있을 정도로 신뢰할만한 정보만을 기사화하는 모범적인 언론사가 아니었다.

업무를 종료할 때 이 팀은 항상 전날 트래픽 순위를 가지고 일종의 종례를 했다. 그 때 나는 이 문제를 한 차례 제기했다. 그랬더니 A가 이 문제를 보도하지 말라는 내용증명을 보냈다는 답을 들었다. 황당했다. 보도하지 말라는 내용증명을 받았다고 정말 보도하지 않는 언론사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보도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고 보도를 하지 말아야한다면 보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언론사의 보도 여부를 상대가 내용증명을 보냈는지를 따져 결정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A의 사생활 문제는 국민의 알 권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국민이 이 사실을 알고 모르고는 투표에 반영될 사안도 아니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연예인 B는 이혼의 전 과정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B에 대해서는 어떤 지침도 없었다. 지침이 없다는 것은 얼마든지 기사를 써도 상관없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B는 약 이틀간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전 언론사가 B에 관한 기사를 하루에 수백 개씩 쓰고 서로 복사해 파급이 빨랐다. 그리고 사안을 봤을 때 A는 입장이 모호한 데 반해, B는 명백한 피해자였다. B의 이야기를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피해자인 B를 재삼 상처 입히고 낙인찍는 일이었다.

내가 그 전까지 있던 언론사는 보도를 위해서라면 소송도 불사했다. 소송을 편하게 생각하는 언론사는 없지만 그들은 기자에게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었다. 한 언론사는 피소당한 사례를 정리해 기자들에게 그 내용을 돌리기도 했다. 이러이러한 점을 주의하면 소송을 당해도 이길 수 있다는 게 골자다. 나는 처음 그 문서를 보고는 역겨웠다. 옳은 보도보다는 소송에 걸리지 않는 보도만 하겠다는 의미의 문서로 보였다. 피소당한 사례만 적었기 때문에 그들이 고소한 일은 담겨있지도 않았다. 대체로 소송을 건 사람은 힘없고 돈 없는 일개 소시민인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소송이 뭔지도 몰랐지만 대개 참다못해 소송을 시작했다. 그런데 소송 사례를 살펴보면 대형 언론사가 전담 변호사를 붙여가며 되는 말 안 되는 말 다 집어넣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소송에서 이기려고 하는 게 보였다. 그들은 잘못을 잘못으로 인정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자신을 보호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보도가 아니라 생존이었다. 독자는 언론에게 공정한 보도와 게이트 키퍼 기능을 원한다고 말하고 어느 언론사든 회사 소개란에는 그 이야기를 잘 포장해 그에 부합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글을 올린다. 그러나 언론사는 공정 보도나 게이트 키퍼 기능보다는 하루라도 연명하는 게 먼저다. 그것을 위해서는 소송도, 어뷰징도 할 수 있다.

판결이 나고 설령 언론사가 패소한다고 해도 벌금 액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기사와 관련한 소송에서 패소하거나 한 발 물러나는 태도를 보이면 언론사는 그 모습이 잘못을 인정하고 개선하겠다는 모습으로 비치지 않고 언론사의 신뢰에 작은 흠결이라도 생길 것을 우려하기 때문에 언론사는 소송이라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 그들은 그렇게 기자를 보호했다.

그래서 나는 내용증명을 받았다고 기사를 내리는 언론사가 어디 있냐고 다시 물었다. 팀장은 우물쭈물하더니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했다. 당시 첫 출근한 신입 세 명이 함께 있었다.

내가 들은 결론은 A가 언론사주와 친분이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회사 같았으면 파업할 일이지만 나는 여기까지 듣고는 접었다. 우선 나도 취재한 사안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고, 내가 이 일을 강행해봐야 이전에 언급한 파이낸셜뉴스의 보도 사례처럼 이 기사는 언론사와 무관하다는 식으로 나올 게 뻔했다. 이들은 데스크 권한을 주는 대신 직원을 보호하지 않았다. 잘못되면 직장이 날아갈 수도 있었고 소송에 걸려도 회사는 내 편에 서줄 리 없었다. 나는 더 좋은 직장이 나타난다면 언제든 버리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지만 직장을 버리는 것과 직장이 나를 버리는 것은 달랐다. 보도 윤리를 들먹이며 이러면 안 된다고 하기에는 내가 쥐고 있는 팩트가 하나도 없었다. 지는 싸움인데다 값어치도 없었다.

그 시간에도 B는 언론의 난도질을 당했다. 당시 포털에 올라오는 기사들을 보니 A는 이 회사 사주 외에도 적지 않은 언론사의 사주와 친분이 있는 모양이었다. A의 이름으로 검색해 관련 기사를 확인했더니 전문적인 수준으로 어뷰징을 하던 언론사 몇 군데가 빠져 있었다.

C는 A와 B의 일이 지나가고 얼마 안 되어 문제가 제기되었다. C에 대한 광고 퇴출 운동이 전개되면서 C의 이름이 계속 검색어 상위에 올랐기 때문에 나는 이 사실을 안 볼 권리에 대한 문제로 엮어 기사화했다. 그러자 그 글을 본 직원이 자신이 전에 C가 검색어에 올라 기사화했던 적이 있는데 상부에서 C의 이야기를 기사화하지 말라고 해 기사를 삭제한 적이 있다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했지만 오히려 더 오기가 생겨 기사를 계속 보강했다. 선정적인 기사가 아니면 절대 상위를 차지할 수 없다던 트래픽 순위에서도 이 기사는 10위권 내에 꽤 오래 머물렀다. 덧글을 찾아보니 A의 사건에서는 기사 하나 안 내더니 C의 사건에서는 얼씨구나 하고 기사 쓰냐는 덧글이 있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C는 그러고도 한참 후까지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광고 퇴출 운동이 처음에 기사를 올렸을 때보다 몇 시간 사이 더 진행된 상황을 알리는 기사를 작성해 2보로 올렸다. 내가 그 기사를 올리자마자 관리자가 와서 팀에게 C에 대한 기사를 내지 말라고 했다. 아니나다를까 내가 올린 기사는 나 모르게 전부 삭제되었다.

다음날, C에 대한 기사를 내지 말라고 나에게 말한 관리자에게 이 일은 어떻게 된 것인지 물었다. C도 A처럼 친분을 이용해 언론의 입을 막았거나 아니면 협박이라도 한 줄 알았다. 알고 보니 C의 매니저가 언론사 고위 간부 한 명에게 전화해 죽겠다고 울어서 해당 간부를 시작으로 기사 삭제 지시가 내려왔다고 했다.

선정성 위주의 보도가 제 살 깎아먹기인 줄 알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트래픽을 높이려면 선정적인 보도를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언론사주의 친분과 연예인 매니저의 통곡은 언론 본연의 목적이나 이들이 목숨처럼 떠받들던 트래픽보다 위에 있었다. 피해자였던 B가 온 언론사의 집중 포화를 받은 것은 B가 언론사에 전화해서 기사를 내려달라고 하거나 울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