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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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줄 모르는 언론”의 시대에...

장행훈 프로필 사진 장행훈 2015년 05월 19일

언론광장 대표

<언론의 언론> 미디어오늘 창간 20주년 소감


<미디어오늘>이 5월 13일 창간 20주년을 맞아 한국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문제점을 시작으로 “한국 저널리즘의 복원 전략”에 이르는 한국의 언론문제를 놓고 장장 4시간의 토론회를 했다. <언론의 언론>을 지향하는 미디어오늘로서 우리 언론이 당면한 문제와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오늘 한국의 언론 현실은 어둡다. 경영이 어려운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언론 언론인에 대한 언론 소비자들의 깊은 불신이다, 언론의 신뢰 상실이다.


정부가 장악한 공영방송에 대한 불신은 뿌리가 깊다. 시청자들은 낙하산 사장이 경영하는 “정권방송”에 수신료를 인상해 줄 수 없다고 거부한다. 공영방송을 대표하는 한국방송(KBS) 기자들은 진실을 보도하지 못하는 자신들을 “기레기”(기자 + 쓰레기)라고 자학(自虐)하고 있다.


조.중.동으로 불리는 주류 보수언론도 강한 불신 대상이다. 3신문의 유료부수는 2002년과 2014년 사이에 200만 부가 줄었다(481만-281만). 초국적 PR 기업 에델만이 조사한 한국언론 신뢰도는 4년째 “믿지 못할 경지”(distrust)에 머물러 있다. 2008년 55%이던 신뢰도가 4년 후인 2011년 44%로 떨어졌다.


민주사회에서 언론은 주권자인 국민이 알아야 할 정보를 전달하는 주요 메신저다. 국민을 대신해서 권력을 감시하는 감시견이다. 그런데 이런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않아 불신을 받고 있다. 제2의 유신 시대가 왔다는 여론의 투정이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언론 다양성, 언론과 권력의 유착, 언론인 윤리 그리고 한국 언론을 복원하는데 언론소비자들이 기여할 수 있는 역할 등 토론회에서는 다뤄진 문제들을 요약해 소개한다.


먼저 한국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문제다. 한국 언론자유를 옥죄는 주범이 정치권력, 공영방송 사장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는 나쁜 지배구조다. 극히 비민주적이고 독재방식이다.


지금은 언론이 권력으로 인식되고 있는 시대다. 국민을 대신해서 권력을 감시할 임무를 띠고 있는 가장 막강한 언론매체의 장을 국가의 최고 권력자가 실질적으로 선정 임명하는 것은 정치권력이 공영방송을 동물원의 사자처럼 다루고 있는 거나 다를 바 없다.


2008년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된 보수우익의 사르코지는 국가가 공영방송주식을 1백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그때까지 방송위원회(CSA)가 임명하던 공영방송사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언론장악 시도라는 언론계와 사회 각계의 비판이 쏟아졌다. 헌법위원회도 비공식적으로 권력을 감시할 언론매체 사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언론에 흘렸다.


그래서 2012년 사르코지의 뒤를 이은 사회당의 올랑드 대통령은 공영방송사장 임명권을 방송위윈회에 환원하겠다는 것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는 당선 후 공약대로 법을 개정해서 공영방송 임명권을 방송위에 되돌려 줬을 뿐 아니라 방송위원 중 대통령 지명 몫인 3명을 2명으로 줄였고 2013년 다시 1명으로 줄였다. 방송위원 수가 9명에서 7명으로 줄었다. 대통령 추천 위원은 위원장 직(職)만 맡는다. 나머지 6명은 상하 양원에서 3명씩 선정하는데 상하 양원의 문화위원회에서 5분의 3 동의를 얻어야 한다. 어느 당이 여당이 되던 야당의 동의 없이는 방송위원을 선정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여당이 과반수의 의석을 확보했다고 해서 공영방송을 좌지우지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우리가 본받아도 좋을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방송위원 선출 방법이다.


다음은 언론 다양성 문제다. 언론 다양성 원칙은 유럽 87개국이 회원인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가 권고한 결의안으로 프랑스는 이 권고에 따라 언론 다양성 원칙을 헌법에 삽입하기 위해 2008년 헌법을 개정했다. 다른 회원국도 그렇게 할 것이다. 유럽평의회의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다른 회원국들이 국내법에 반영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 세력이 언론매체를 독점하면 매체가 없는 소수집단은 그들의 의견을 표현할 길이 없게 된다. 실질적으로 언론자유가 제약된다. 언론매체 다양성 원칙은 유럽 평의회 국가들이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원칙이다. 유럽평의회가 회원국들에 언론 다양성 원칙의 준수를 강력히 권고하는 이유다. 그러므로 부수가 많은 신문은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 방송매체까지 겸영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신문시장의 70%를 점유한 조중동이 전부 종편을 겸영하고 있다. 이것은 다양성 원칙 위반이다. 소수 대자본이 언론매체의 독과점을 통해 언론 시장을 지배할 수 있게 되면 진보정당이 보수정권과의 경쟁에서 이겨 정권교체를 이룬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현재 한국의 언론매체 분포가 바로 그런 상황이다. 한국 언론이 바로잡아야 할 급선무의 하나다.


다음은 권언유착 문제다. 민주주의에서 삼권 분립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둘 이상의 권력이 유착하면 권력분립 원칙이 작용하지 않게 돼 소수의 독재가 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자본의 영향력이 막강해지면서 대자본도 언론처럼 하나의 권력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헌법에 규정된 3권 중의 하나와 제도권력 밖에 있는 권력(언론과 자본)이 제휴하면 역시 권력유착 현상이 일어나고 민주주의의 권력분립은 실효를 거둘 수 없게 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런 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미 영국에서 머독이 노동당의 블레어 총리, 보수당의 캐머런 총리와 권언유착에 “성공”한 선례가 있다. 머독의 폭스뉴스방송도 공화당과 거의 공개적으로 권언유착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맥체스니 교수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이미 5년 전에 언론(폭스) + 정당(공화당)+ 대자본의 <철의 3각> 선거복합체가 완성됐다. 한국도 비슷한 단계에 와있지 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언론은 세계 도처에서 “킹메이커”의 역할을 하고 있다. 스스로 '킹' 역할을 하기도 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다음은 언론인 윤리문제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도 언론인의 윤리 문제를 우려했다. 한홍구 교수는 미디어오늘 창간 2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과거와 달리 (오늘의) 문제는 조중동 내부에서 양심을 가진 기자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90년대에는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는 언론인들이 미력하게나마 존재했다. 그런데 지금 조선 동아 내부에서 엉터리 기사에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라고 걱정했다. 기자들이 민주주의를 무시하다시피 하는 오늘의 언론현상을 보고 분개할 줄 모르는 것을 보며 한 교수와 우려에 공감하는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고 본다.


우리의 언론 현실이 어둡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한탄만 하고 있을 것인가? 결국, 언론소비자가 각성하고 언론의 윤리강령을 무시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언론인 언론 사주를 향해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론소비자들이 신문을 읽을 때도 비판정신을 갖고 읽고 텔레비전도 비판적 시각으로 보면서 언론을 향해 잘못을 지적하고 항의해야 한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언론 언론인들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질타하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언론개혁을 실천하는 대안언론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일도 필요하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제도언론에만 언론을 맡겨도 되는 시대는 지났다. 독자가 언론을 향해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다시 의식하게 하고 언론인들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쳐 줘야 한다. 이제 언론소비자가 직접 언론 개혁에 나서야 한다. 언론은 민주주의 가치에 무관심한 언론인에게만 맡기기에는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