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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 = “건국” 67주년...숨은 동기와 위험

장행훈 프로필 사진 장행훈 2015년 08월 24일

언론광장 대표

영화 <암살>의 개봉 한 달째인 8월 22일 하루 관람객 수가 19만 930명이었다. 누적 관람객 수는 1,139만 9,404명. 22일 현재 1,137만 명(11위)을 동원한 <변호인>은 물론 1,139만 명(10위)의 <해운대>를 밀어내고 10위를 차지하는 위력을 과시했다. 지금의 추세라면 머지않아 1,174만 명이 본 <태극기 휘날리며>까지도 따라잡을 수 있으리란 전망이다.


<암살>이 이런 기록을 세운 괴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영화를 잘 만든 것이 첫 번째 이유겠지만, 올해가 광복 70주년이라는 사실이 영화의 흐름과 어울려 관객을 끄는 강한 흡인력을 발휘했으리라는 영화 평론가들의 분석이다. 영화를 만든 최동훈 감독도 그 분석에 동의했다.


최 감독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왜 하필 지금 이 시대에 1930년대 독립투사의 이야기인가?” 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며 제작 동기를 털어놓았다.




아무리 거부하려 해도 영화는 결국 동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게 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우리의 무의식이 지금 (영화에) 반영되고 있는 거다. (중략) 역사문제에 있어서 일본의 태도에 한국 사람들의 불만이 있다. 역사 교육이 중요한데 우리 역사교육도 부실한 것 같고... 친일파에 대한 매듭을 짓지 못해 여전히 찌꺼기가 남아 있잖나. 그런 눈으로 1930년대를 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광복 후 70년간 친일파에 대해 말 못할 증오와 불만을 느끼고 있던 국민이 영화 <암살>을 봄으로써 마음속의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은 대리만족을 느꼈으리라는 보도가 많았다. 최 감독은 (정권이) 챙겨주지 않은 친일 과거사를 영화로 “챙겨주려 했다”는 말도 했다. 결국, 국민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주려는 했던 감독의 배려와 노력이 불과 한 달 동안에 1천만 관객을 동원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탐사보도를 표방하는 대안언론 뉴스타파 방송이 8월 초 광복 70주년 특집 프로그램으로 친일파와 그 후손들의 생활을 다룬 4부작 <친일과 망각>을 열흘 동안에 100만 명이 보는 뜨거운 반응을 보인 것도 비슷한 이유 같다.


이런 분위기와 결이 다른 사건이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다. 별 내용이 없는 경축사가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은 “오늘은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이라는 구절 때문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이후 되풀이 하는 그릇된 역사관의 표출이었다.


경향신문이 8월 17일 자 사설 “광복절 경축사에 드러난 박 대통령의 위험한 인식”에서 지적한 대로 박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건국”이라고 표현한 것은 잘못이었다. 대통령이 정부수립을 ‘건국’이라고 표현한 것은 여권과 뉴라이트 진영에서 흔히 혼동해서 사용하고 있는 데 그릇된 역사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사설 내용을 요약하면




제헌헌법은 전문(前文)에서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명시했다. 대한민국이 1919년 ‘건립 (건국)’되고 1948년 ‘재건’되었음을 분명히 했고...현행 헌법 전문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이 ‘국부’라고 주장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도 관보 제1호에 ‘(대한)민국 30년’이란 연호를 사용했다. 이승만 대통령도 대한민국의 시작을 1919년으로 판단한 것이다.



사설은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1948년 건국론을 주장하는 이들의 속내는 무엇인가 묻는다. 그리고 그것은 “임시정부의 법통과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를 축소하고, 이승만 독재를 미화하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대통령은 취임선서의 첫머리에 헌법 준수를 맹세하는데 (건국 발언으로) 대통령이 위헌 소지가 있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건국’ 주장은 보수 정치인이나 뉴라이트의 논리다. 한 마디로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것을 부인한다. 그걸 인정하면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은 부각되는 반면, 친일부역자들의 행동은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건국’은 대한민국과 임시정부의 연계 고리를 단절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다. 건국은 ‘정부수립’과 다르다. 2차 대전 중 나치 독일에 점령됐다가 나치 패망 후 주권을 회복한 국가 중에서 ‘건국’을 선포한 나라는 없다. 독일에 점령당한 프랑스는 해방 후 제4공화국이 들어선다. 그러나 제4공화국을 건국이라고 부르는 프랑스인은 없다.


한국과 가장 닮은 독일의 경우를 봐도 단독정부를 세운 서독의 탄생을 건국이라고 부르는 역사학자는 없다. 공산 소련이 붕괴하고 들어선 러시아의 출현도 건국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런데 2차 대전 후 분단국으로 독립한 대한민국의 탄생만을 건국이라고 부른다?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한데 박근혜 정권이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 부끄럽지도 않은가?


정치인들은 이제 정치적 목적으로 더 이상 역사를 왜곡하는 일은 그만두라고 권고하면서 그들에게 묻고 싶다. 친일왜곡의 역사를 고발하는 영화 <암살>에 열광하고 쇄도하는 국민들이 ‘건국’론에 분노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한번 생각해 봤느냐고.


우리는 친일부역자들에 대한 반민족적 행위를 처벌하지 못했다. 우리 국민에게도 역사를 청산할 기회를 한 번은 가질 필요가 있다. 정의에 대한 갈증을 한 번쯤은 해소할 경험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 경험이 없으니 친일 부역자들이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민족을 배반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늦었지만 역사의 광복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광복 70년이 될 때까지 친일 세력이 국가를 지배하고 국권을 농락하는 불의가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영화 <암살>은 우리에게 역사의 광복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일깨워줬고, 대통령과 보수 뉴라이트의 ‘건국’ 음모는 그럴듯한 말장난으로 아직도 친일 세력이 반민족적 음모를 꿈꾸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에게 역사를 정확히 이해하는 ‘역사의 광복’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각성케 하는 광복 70주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