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정권의 유신 회귀 꼼수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논란이 두 달째 이어지고 있다. 한 마디로 자국(自國)역사 교과서를 국가가 제작하겠다고 하는 것은 전체주의 체제에서나 생각할 수 있는 발상이다. 민주국가에서는 상상해서는 안 될 위험한 음모 시나리오다.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가 논란이 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이 스스로 정상적인 민주정권이 아님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다. 선진 민주국가로서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고 있는 나라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없다.

일제(日帝) 말기 일본도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했었다. 그러나 일제가 전쟁에서 진 다음 일본을 점령한 연합군최고사령부(SCAP)는 1947년 일본의 임시정부에 국정교과서 제도를 폐지하고 민간에게 역사 교과서를 집필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역사 교과서가 국정(國定)에서 검정(檢定)으로 바뀌게 된 배경이다. 일본이 자진해서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폐지한 것이 아니다. 미국이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가 비민주적이고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우려에서 주일(駐日) 연합사령부를 통해 국정화를 폐지시킨 것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역사교과서의 국정화가 민주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는 위험한 제도라는 것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일본이 국정화를 폐지한 지 68년이 지난 지금, 한국사의 국정화를 강행하겠다고 정부와 여당이 무리하고 있다. 비정상 아닌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사상과 양심 종교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다. 1948년 유엔이 채택한 세계 인권선언 제18조는 “모든 인간은 사상과 양심 종교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진다. 이 권리에는 종교와 믿음을 바꿀 자유와, 홀로 또는 다른 사람과의 공동체 내에서, 공적 또는 사적으로, 교육 업무 예배 의식 면에서 자기 종교나 믿음을 표출할 자유가 포함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 헌법도 제19조에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럽의 48국이 채택한 유럽인권협약 제18조도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역사에 관한 인간의 판단은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역사에 관한 인간의 판단은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프랑스처럼 좌우 이념적 대립이 예리하고 인종 종교가 다양한 국가일지라도, 역사는 국가가 직접 개입해서는 안 되는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국민이 분열하지 않도록 역사를 하나로 가르쳐야 한다”고 쌍나팔을 불며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국가적 이슈로 부각했다. 서울대 역사학 교수를 비롯해서 각 급 학교의 역사 교사들이 대거 국정화 반대 성명에 앞장섰다. 지난 두 달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운동이 국민적 쟁점이 됐다.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오동석 교수는 25일 자 한겨레에 보도된 인터뷰에서 국정교과서의 문제점을 이렇게 요약한다

헌법은 검열을 금지한다. 여러 출판물을 허용하되 국가가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고 검열하는 것도 헌법에 위반된다. 하물며 국정교과서는 국가가 제작하는 교과서 하나만 인정하는 제도니까 검열보다 더 나쁘다. 정부는 국가교과서 이외에 다른 한국사 관련 교재들 얼마든지 출판될 수 있다고 반박할 거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입시와 교과서의 절대적인 상관관계를 고려하면 사실상 국가가 한국사와 관련된 내용들을 다 결정하는 거다. 이것은 표현의 자유 침해다.

교육부나 새누리당은 1992년에 헌법재판소가 국정교과서에 대해 합헌(合憲)결정을 내렸다는 점을 들어 국정화를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제시할지 모른다. 이에 대해 오 교수는

헌재 결정문 가운데 법적인 구속력이 있는 부분은 ‘주문’인데 (합헌은)‘중학교 국어 국정교과서’가 합헌이라는 거다….교과서 발행체제나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헌재의 견해는 국정보다는 검인정제도를, 검인정보다는 자유발행제를 채택하는 것이 헌법의 이념을 고양하고 교육의 질을 제고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원칙적으로 헌법상 국정화가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를 구구절절 언급한 뒤, 다만 중학교 국어 교과서의 경우 맞춤법 등의 우려가 있으니 국정제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법적으로나 역사학계의 흐름으로 보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용납될 수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는데 국론이 모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정부나 새누리당은 역풍이 너무 거세 당분간 주춤하고는 있지만, 국정화를 완전히 포기한 눈치 같지는 않다.

25일에는 교육부가 정면으로 국정화는 추진하는 길을 피하고 교과서 필진을 바꿔 실질적으로 국정화한 것과 같은 실효를 거두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마치 일본의 극우 정치인인 아베 총리가 평화헌법을 고치지 않으면서 실질적으로 일본의 군국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꼼수를 모방하고 있는지 모른다.

한 마디로 역사를 정치적인 세뇌의 도구로 삼아 한국 사회를 보수화하고 유신(維新)으로 회귀하려는 목적을 포기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역사 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을 보수 쪽으로 세뇌하는 정치적 목적으로 달성하려는 꼼수를 중단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집권자가 역사를 정치적 세뇌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표현한 것으로는 조지 오웰의 다음 명언이 최고가 아닌가 싶다. 그는 공산 전제주의 체제를 풍자한 소설 <1984>에서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는 불멸의 명언을 두 번이나 책에서 반복한다. 사람의 머릿속에 미리 들어와 있는 역사 지식과 선입견은 다음에 일어날 일을 평가하고 대응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기 때문에 지배자들은 역사를 정치적 세외의 도구로 이용하는데 강압적 방법을 불사한다.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이 한국사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올인하는 것이 혹시 조지 오웰의 명언에 감명받은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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