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국정화 전쟁” 선포한 대통령 시정연설

박근혜 대통령의 27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여론이 날로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열정적으로 천명했다. 대다수 언론은 국정화에 대한 “박근혜의 전쟁선포”라고 보도했다. 박근혜 대통령 자신의 “전쟁선포”로 이제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은 “말의 전쟁” 단계를 넘어 행동 단계에 들어섰다는 이야기다.

국론을 통합하기 위해 역사를 하나로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결정한 국정화가 오히려 국론을 걷잡을 수 없는 대결상태로 몰아넣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의화 국회의장도 지난 20일 관훈클럽 토론에서 이 점을 걱정하고 “박 대통령이 국정화로 국민분열 몰지 말라”는 충고를 했다. 그런데 청와대는 오히려 국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는 엇박자로 갔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집과 오만 탓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제라도 바로잡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연설에서 국정화는 “우리 아이들이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자라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라고 그 정당성을 역설했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궤변을 토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가진 아주 위험한 역사인식이다. 유신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위험한 정신적 공동유산이기도 하다. 박근혜는 유신독재의 원조 박정희 대통령의 상속인이자 수제자(首弟子)이다. 그는 비명에 간 어머니를 대신해 5년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매일 같이 유신 속에서 생활하며 유신“종교”의 신도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발상도 유신“신앙”의 영향일 수 있다. 국정화를 지지하는 새누리당 친박 상당수가 연령상으로 유신세대에 속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1989년 MBC <박경재 시사토론>에서 “나는 5.16을 구국혁명으로 믿고 있다”며 “그동안 매도당하고 있던 유신, 5.16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해야 한다. … 당장 비난을 받더라도 사람들을 설득시켜야 한다. 그게 정치”라고 소신을 밝혔다. 이어 “그래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런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다. 부모님에 대해서 잘못된 것을 하나라도 바로 잡는 것이 자식 된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5월 뉴라이트 진영이 펴낸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출판 기념 축사에서 “청소년들이 왜곡된 역사 평가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뜻 있는 이들이 현행 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청소년들이 잘못된 역사관을 키우는 것을 크게 걱정했는데 이제 걱정을 덜게 됐다.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고 선진 한국을 만드는데 이제 걱정을 덜게 됐다.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여러분과 함께하겠다”고 가슴에 맺힌 심정을 토로한 일이 있다. 30여 년을 통해 일관되게 드러난 박근혜의 역사관은 유신 역사관임을 드러낸 고백의 냄새가 물씬 난다. 따라서 미리 보지 않아도 그가 추구하는 국정화된 역사 교과서의 내용이 어떠리라는 것은 정확하게 예단할 수 있다. 국정화를 반대하는 역사학자들의 우려가 정치적 이념적인 이유만은 아니라고 본다.

이런 역사의식이나 가치관으로 볼 때 지금의 역사교과서는 올바른 교과서로 보일 수가 없을 것이다. 모두 비정상으로 보일 것이다. 반면 오늘 정상인들의 눈에는 박근혜식 역사관은 올바르지 않고 비정상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박근혜가 말하는 비정상의 정상화는 “정상의 비정상화”로 보일 것이 틀림없다. 국정화 반대 여론이 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민주주의의 기본인 사상과 종교의 자유 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분쟁 해결에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 유엔 내 역사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래서 유엔과 유네스코가 역사교과서 문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그 결과를 보고서로 내놓고 있다. 최근 보고서의 하나가 문화분야 인권보좌관 파리다 샤히드가 2013년 제68차 유엔총회에 제출된 역사교과서에 관한 보고서다.

샤히드 보좌관이 유엔총회에 직접 낭독한 보고서 요점을 간추리면

국정화된 역사교과서는 인권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오늘날 역사는 항상 상이한 해석이 나오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핵심 메시지로서 강조한다. 사건이나 사실이 입증되더라도 역사적 서술에는 모든 사람의 견해가 하나일 수 없다. 모두 완벽할 수 없다. 누가 옳은지 그른지 도덕적 정당성에 관해서 격렬하게 토론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그러므로 역사를 가르칠 때 역사는 학문적으로 이해해야 하며 비판적 사고, 분석적 사고를 기르고 토론하는 것을 권장해야 한다. 역사는 애국심을 북돋는 목적에 이용하거나 국민적 단일성(통합)을 강화하거나 청소년들의 생각을 공식이념이나 지배적 종교노선에 일치시키는 목적에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된다.

권력이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학문적 자율을 보장하는데 예민하게 주시하지 않으면 역사는 정부의 통제하에 놓이기 쉽다. 그러므로 학문적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유엔총회에 보고된 역사교과서 서술 지침에 의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국정화의 지침은 모두 배제돼야 할 지침들이다. 유네스코가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반대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 마디로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민주주의 원칙에 위반되는 것이다. 국정화는 독재국가가 국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박근혜 대통령은 그럴 위험이 특히 크다.

결론은 박근혜 정권은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철회해야 한다. 그것이 박근혜 대통령 개인이나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최선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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