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용무도(昏庸無道)의 2015년

2015년을 보내면서 대학교수들은 올해 한국 사회를 규정하는 사자성어(四字成語)로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선정했다(교수신문-12월20일). 어리석은 군주가 나라를 어지럽혔다는 뜻이다. 혼용(昏庸)은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를 가리키는 혼군(昏君)과 연군(庸君)을 합친 말이며 무도는 논어 ‘천하무도’에서 유래한 말로 사회가 무질서 상태인 것을 말한다. 혼용무도는 금년 한 해 동안 우리 사회를 어지럽게 만든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비판한 사자성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교수신문은 지난 8일부터 14일까지 접수된 올해의 사자성어 신청후보 중에서 5개를 놓고 교수 88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59.2%인 524명이 ‘혼용무도’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올해 한해 국정 문란의 책임이 “어리석은 군주에게” 있다는데 공감한 교수가 60%에 달했다는 이야기다. 정권을 비판한 근년의 “교수 사자성어” 중에서 가장 쎈 직격탄 같다는 인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까지 국정에 별 진전이 없는 원인을 야당과 국회의 비협조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해 왔다. 하지만 혼용무도의 선정은 한국의 지성을 대표하는 교수들이 “아니오”라고 부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혼용무도’를 추천한 이승환 고려대 철학과 교수는 “역사가들은 ‘혼용무도’의 표본으로 중국 진나라 2세 황제 호해를 들곤 한다”면서 “호해는 환관의 농간에 귀가 멀어 실정과 폭정을 거듭하다 즉위 4년 만에 반란군의 겁박에 의해 자결하고 진은 멸망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2015년 한국의 상황을 가리켜 “연초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민심이 흉흉했으나 정부는 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보여줬다. 중반에는 청와대가 여당 원내대표에게 사퇴 압력을 가하면서 삼권분립과 의회주의 원칙이 크게 훼손됐고, 후반기에 들어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국력의 낭비가 초래됐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 해 전 세월호 사건으로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했다는 국민의 지탄을 받고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메르스 처리에 과오를 되풀이했다. 박 대통령은 원조 친박이었던 유승민 새누리 원내 대표가 청와대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고 배신자로 낙인찍고 그를 원내 대표 자리에서 끌어내도록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압력을 가했다. 삼권분립의 원칙을 무시한 행동이었다.

국회의원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헌법기관이다. 그런데 새누리당 의원들은 의원 총회를 열어 자기들 손으로 선출한 유승민 원내대표를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원내대표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대통령이나 새누리당 국회의원 양쪽 모두 삼권분립의 원칙을 무시한 것이다. 새누리 의원들은 스스로 국회를 청와대의 거수기로 전락시킨 것이다. 이런 추태를 보고 기가 막힌 유승민은 원내대표를 사임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비장한 목소리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외쳤다. 대한민국은 민주국가가 아니라는 역설을 강조한 외침이었다.

이런 추태를 연출하고도 박근혜 대통령은 연말 정기국회 폐회를 얼마 앞두고 자신이 요구하는 법안을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해주지 않는다며 “맨날 앉아서 립서비스만 하고 자기 할 일은 안 한다. 위선이라 생각한다”고 국회와 국회의장을 비난했다. 대통령의 심기를 꿰뚫어 본 청와대 현기환 정무수석은 한 수 더 떴다. 그는 국회의장 면전에서 “국회가 밥그릇이나 챙긴다”며 탈법적인 직권상정을 요구했다. 대통령의 권력 남용을 견제할 국회의 사명을 인정하지 않는 막말 수준의 언동들이었다. 한국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박근혜의 그림자가 작용한 행태들이었다. 교수들이 2015년 한해를 규정하는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선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사건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의식은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한 1979년 10월에 정지된 것 같은 인상이다. 대통령의 정치의식 수준을 간파한 약삭빠른 경찰은 민주시민의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를 불법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복면한 시위대를 악명 높은 이슬람 테러리스트 조직인 이슬람국가(IS)조직에 비교하는가 하면 강신명 경찰청장은 “사람 많이 모이는 것만으로도 공안에 위협”이 된다고 공언하고 있다. 국민의 권리와 안전을 보호하는 경찰이 아니라 정권의 불법을 보호하기 위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독재정권의 손발로 타락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속내”를 간파하고 출세의 길을 걷기로 마음잡았다는 태도다. 역시 혼용무도의 효과로 보인다.

선정된 혼용무도 외에도 후보에 올랐던 사자성어 △사시이비(似是而非)(14.3%) △갈택이어(竭澤而漁)(13.6%) △위여누란(危如累卵)(6.5%) △각주구검(刻舟求劍)(6.4%)도 모두 위태롭고 혼란스러운 2015년 한국사회를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되돌아본 교훈들이다. 앞으로 우리에게 지혜를 줄 수 있는 말들이다.

그러나 박근혜를 대상으로 한 혼용무도(昏庸無道)와는 견줄 수는 없을 것 같다. 혼용무도는 오직 박근혜 대통령을 대상으로 선정한 교훈과 경고가 융합된 사자성어다. 박 대통령이 지금부터 임기 말까지 혼용무도의 뜻을 깊이 새기고 한국 민주주의와 국민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기를 바란다. 그러지 못할 경우 닥칠 무서운 불행도 잊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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