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우롱하는 “꼼수 민주주의”

바야흐로 짝퉁 민주주의, 꼼수 민주주의 시대인 것 같다. 특히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가 그렇다. 법원의 판결이 어떻게 나던 18대 대선은 국정원이 대대적으로 개입한 창피스런 선거였다. 박근혜 정권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30년 이전으로 후퇴시켰다는 해외 언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우리 민주주의가 꼼수 민주주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국회선진화법(선진화법)이 화두다. 선진화법은 국회 입법 과정에서 여당이 야당의 반대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법안을 상정하고 날치기로 통과시킴으로써 국회의원들 사이에 벌어졌던 몸싸움과 단상 점거의 고질을 근절하기 위해 2012년 4월 총선 때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킨 역사적 개정 국회법의 별칭이다. 국회전진화법은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내건 선거공약이었다.

국회 선진화법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제한해 다수당의 법안 강행 처리를 차단하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 법안은 과반수보다 엄격한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동의해야 신속처리법안으로 상정할 수 있도록 해서 여당 독주를 예방하는 내용이 골자다.

여당이 국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도 그 수가 5분의 3을 넘지 못하는 한 야당이 반대하면 주요 법안을 미음대로 상정하기 어렵다. 여당은 이 때문에 법안이 제대로 상정되지 못해 입법 정체 현상이 일어나고 국회가 제 기능을 못한다고 불평했다. 그래서 박근혜 정권 출범 첫해부터 선진화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새누리당 안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 4년째를 맞으면서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선진화법 개정 압박이 강화되기 시작한 것 같더니 새해 들어 새누리당이 마침내 선진화법 개정에 박차를 가했다. 그 의도는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며 떳떳지 못한 방법, 꼼수를 쓴 것이다. 새누리당이 국회선진화법을 선거공약으로까지 내건 법이었다면 강압적인 또는 사술(詐術)적인 수댠까지 동원해 폐지하려고 한 것은 비판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야당과 진솔하게 토론하고 설득하는 자세로 문제점을 해소하는 노력을 했어야 했다는 생각인데 그러지 못했다.

1월 18일 오전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실에 원유철 위원장을 비롯해 여당 소속 의원 15명이 참석했다. 야당 의원 13명은 한 사람도 안 보였다. 여당의원만으로도 과반수가 넘으니 회의 진행에는 문제가 없었다.

원 위원장이 개의를 선언하고 여당 간사가 11일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을 전체회의에 산정할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모두 동의했다. 이어 원유철 위원장은 모든 절차를 생략한다고 말하고 회의를 끝냈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회의에 걸린 시간은 단 4분 45초.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완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은 이렇게 해서 새누리당에 의해 발의됐다가 그 자리에서 자진 폐기됐다.

왜 4분 45초 만에 셀프 폐기? 여당이 법안을 진짜 폐기한 것은 물론 아니다. 이 법안을 본회의에 올리기 위한 꼼수였다. 국회법 제87조는 상임위원회가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기로 한 법안에 대해 7일 이내에 의원 30명 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그 법안을 본회의에 부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셀프 폐지>는 바로 이 우회통로를 이용해서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기 위한 꼼수였던 것이다.

새누리는 지난 15일 본회의 소집을 요구했다. 여당의 작전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야당이 “마치 3선 개헌(69년 박정희)하듯 법에 근거한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날치기를 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국회사무처 관계자의 논평대로 야당의 동의 없이 법안을 본회의에 부의할 목적으로 자신들이 발의한 법안을 스스로 부결시킨 뒤 이를 다시 본회의에 부의한 것은 당당하지 못한 사술(詐術) 냄새를 풍긴다. 정의화 의장도 기자들에게 부적절한 방법으로 제안된 새누리당의 운영위 안건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운영위 안건을 본회의에 상정할 의사가 없다는 암시다.

새누리당 주장대로 국회의장의 법안 상정권을 크게 제한한 선진화법이 야당에게 일종의 거부권을 인정함으로써 국회의 입법활동이 크게 축소됐다는 지적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반면에 선진화법이 도입되면서 국회가 일당독재의 도구로 전락되지 않고 국회가 야당의 목소리도 반영하는데 기여한 공로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국회선진화법이 제기한 문제점들은 여야가 진솔한 대화와 토론으로 타협점을 찾으면 된다. 선진화법을 개정하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술수를 쓸 필요는 없다고 본다.

선진화법 파동이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전경련과 상공회의소 등 경제인 단체들이 국회를 상대로 벌이는 경제활성화법안 촉구 1천만 명 서명운동에 참석해 비판을 받았다. 대통령뿐 아니라 국무위원과 경제사회단체들에 대해서도 경제단체 서명운동에 참가하도록 압박하는 분위기로 확산돼 ‘관제서명운동’ 양상을 풍겼다.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할 대통령이 이익단체들이 국회를 상대로 벌이는 입법촉구 서명운동에 참가해 국회를 압박하는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인상을 주어 대통령의 격에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대통령은 직접 국회의원들을 만나고 특히 야당 중진들을 자주 만나 핸정부의 입법활동에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행동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의원과의 접촉이 아주 드물다. 특히 야당 대표와 단독회담은 취임 3년에 단 한 번뿐이었다. 이렇게 소통이 없으면서 어떻게 정부가 필요한 입법에 협조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민생법안이나 경제활성화 법안에 관한 한 박 대통령은 국회를 탓하기 전에 자신을 탓해야 한다는 비판의 소리가 많이 들린다. 대통령은 자신의 책임은 다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된 국정의 책임을 떠넘기는 좋지 않은 습관을 갖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미국 트루만 대통령의 좌우명처럼 “모든 책임은 내 앞에서 멈춘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본 글은 뉴스타파 블로그를 통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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