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게이트’, 박근혜정권의 그림자인가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이 박근혜정권의 행동대 역할을 한 의혹을 받고 있는 극우단체 어버이연합(대한민국어버이연합)에 지난 4년간 5억 원이 넘는 거액의 돈을 지원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한국의 경제계(대기업 재벌)를 대표하는 전경련이 보수정권과 유착 관계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 <어버이 게이트>로 확대돼 가고 있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어버이연합은 이미 이명박 정권 때부터 보수정권이 여론의 공격을 받으면 이를 저지하거나 역공해온 것으로 알려진 조직이다.

이미 이승만 정권 때부터 정권이 여론에서 수세에 몰리면 행동대를 동원해서 공포감을 조성하고 반정부 여론을 침묵시키는 수법을 사용해 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평화적 시위라기보다는 상당히 폭력적인 “관제시위”였다. 국민은 이런 관제시위에 익숙해져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모른 채 해왔다.

배후가 누구라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권력의 비호를 받는 조직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직접 피해자가 아닌 한 감히 맞상대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런 때 시민의 진정한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권력 남용의 실체를 밝히고 폭력적 조직의 행동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언론이었다.

이번 어버이연합의 실체를 드러내는 데도 전경련이 지난 4년 간 문제의 어버이연합에 무려 5억 원이 넘는 거액의 돈을 제공한 사실을 폭로한 JTBC 방송 보도 이후 한겨레 경향신문 등 진보언론이 끈질긴 취재로 어버이연합의 배후에 청와대나 국정원이 자리 잡고 있으며 특히 국정원이 보수단체의 콘트롤타워(지휘탑) 역할을 해온 사실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의 주범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파기환송심 공판에서 검찰은 ‘국정원 심리정단 소속 직원 박모 씨가 우익단체와 청년 우익 단체를 지원하고 지도하는 활동을 벌였다’고 밝혔다는 보도다. 어버이연합은 물론 국정원이 오프라인에서도 보수 단체의 정치적 활동을 조종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어버이 게이트>로 드러난 사실들은 박근혜 정권하의 한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하고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대한민국이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국가라기보다 실질적으로는 보수권력(權力)과 국가정보(情報)원 대기업(財閥) 그리고 보수언론(言論)의 4자 복합체제가 지배하는 체제라는 부각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4.13총선은 4자 복합체제의 지배 틀을 깨고 권력구조를 바꿔놓은 하나의 혁명이었다. 진정한 자유선거가 가능하다면 취약해진 민주주의가 주권자인 국민의 힘으로 독재를 퇴치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모든 국민에게 각인시켜 준 선거혁명이었다. 따라서 총선결과가 우리에게 선물한 여소야대의 새 국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의 하나는 또다시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해서 주권자의 의사에 반한 인물이나 정당이 정권을 장악하게 하고 그래서 우리의 민주주의를 허수아비 민주주의로 만드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선거제도를 보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외적인 위협에서 국가의 안보를 지키는 임무에 전념해야 할 국가정보기관이 특정세력의 시녀로 전락해 한국의 민주주의를 유산시키는 범죄에 가담하거나 국내 정치에 개입할 수 없도록 테러방지법이나 그 시행령 등 모든 방면에서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 여지를 최대한 축소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국가정보원은 국가 안보에 못지않게 민주적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 미국 국가안보처(NSA)의 정보분석 전문가인 에드워드 스노든은 미국헌법에 규정된 민주적 가치를 무엇보다 중시했다. 그래서 그는 NSA가 헌법기치와 충돌하는 업무를 맞게 되자 가책을 느끼고 망명을 결정했던 것이다. 한 때 정부 관리들로부터 배반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의 행동을 이해할 뿐 아니라 그의 용기를 칭찬하는 시민단체가 늘어나고 있다.

대한민국은 북한의 공산독재 체제와 대치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북한의 존재는 보수세력에게는 권력을 유지하는데 이용가치가 있다. 북한이라는 공동의 적은 보수세력을 집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북의 위험을 부각시켜 국내 반대 세력의 인권을 탄압하는 명분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역사는 진정한 안보 이유보다 권력유지를 위한 ‘북풍’ 남용이나 ‘정치적 음모론’이 우리의 민주주의 발전에 얼마나 불행한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너무 많이 보여줬다. 그래서 모든 민주 시민에게 더 이상 북의 위협이 두려워 민주주의를 희생하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값비싼 교훈을 줬다.

그런데 한국의 경제계를 대표하는 전경련이 극우 어버이연합에 4년 동안에 무려 5억 원의 자금을 지출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어버이연합은 박근혜정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옹호하는 집회를 열고 비판시위를 공격해온 극우 정치조직이다. 이런 정치조직을 경제계를 대표하는 전경련이 4년 동안 거액의 행동자금을 지원한 것은 권력과 대기업의 유착관계를 수치로 보여주는 행동이다. 어버이연합은 국정원이 만든 것으로 보도된 “박원순 제압문건”을 비롯해서 세월호 유족시위에 대한 반대집회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시위, 작년 말 한.일정상 간 위안부 졸속합의 비난시위에 대한 반대집회 개최 등 위기 때마다 박근혜 정권을 옹호하는 집회를 조직해온 단체다.

전경련이 어버이연합에 거액을 지원한 명분도 분명치 않다. 어버이연합에서 전경련으로부터 받은 돈이 사용처에 대한 설명도 일관성이 없다. 더구나 전경련은 어버이연합에 자금 제공에 관한 보도가 나온 지 1주일이 넘었는데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떳떳한 자금이었다면 무슨 목적으로 돈을 줬는지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전경련은 이제 더 이상 침묵만 하고 있을 수 없다. 이미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검찰의 수사가 개시되면 모든 의문이 다 풀릴 수 있을까?

전경련의 어버이연합 자금 지원은 재계가 정권의 행동대 역할을 하는 정치단체에 활동자금을 제공한 것이기 때문에 중대한 정치문제로 비화할 수밖에 없다. 검찰 수사와는 별도로 새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할 만한 사안이다.

한일 정상 간 위안부 문제의 졸속합의에 항의를 비난하는 여론이 비등했던 지난 1월 항의시위에 반대하는 맞불 집회를 여는 문제와 관련해서 청와대의 허 모 행정관이 어버이연합의 추선희 사무총장에게 집회 개최를 지시하는 문자 메시지를 교환했다는 보도도 정치적 폭탄이 될 수도 있다. 청와대는 아는 바 없고 허 행정관 개인의 결정이라고만 말하고 있지만 위안부 문제처럼 국민적 관심이 쏠려있는 문제를 일개 행정관이 혼자서 결정할 수 있겠는가?

어버이 게이트는 총선 참패로 궁지에 몰려 레임덕을 맞고 있는 박근혜 정부를 괴롭힐 강력한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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