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 취임이 국제관계에 몰고 올 태풍

1월20일 억대 부동산 재벌 도날드 트럼프가 미국 45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대선 선거운동 때부터 러시아의 정보기관이 컴퓨터 해킹으로 그의 당선을 적극 지원한 사실이 밝혀져 한 동안 미국-러시아 관계에 긴장이 조성됐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식을 2주 앞두고 대선 개입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 내 러시아 외교관 35명과 그 가족을 강제 추방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외교관례에 따라 러시아 내 미국 외교관을 추방하는 보복을 취하지 않은 덕분에 미-러 관계가 위기로 치닫지 않았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하면 그와 해야 할 역사적 과업을 한번 실현해보겠다는 야심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취임식 전 트럼프의 지지도는 44% 전후였다. 취임을 앞둔 대통령으로서는 미국 역사상 최하위였다. 그는 취임 연설에서 ‘미국 최우선’을 정책의 핵심원칙으로 표방했다. 국익을 위해서는 힘의 사용을 주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미국 내 기득권층의 권력 독점을 억제하고 일반 서민에게 헌법이 보장한 권력을 되돌려 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러나 취임연설은 포퓰리즘적 구호가 너무 많고, 미국의 4년을 어떻게 이끌고 가겠다는 국민통합적 비전보다는 선거운동 연설 같다는 폄하를 받아 국민이나 언론의 높은 평가는 받지 못했다. 첫날부터 트럼프 반대시위가 전국에서 열렸다.

트럼프의 미국우선론은 유럽을 자극했다. 트럼프는 영국의 유럽연합(EU)탈퇴를 칭찬했다. 다른 회원국의 탈퇴도 부추겼다. 미국이 냉전 기간 중 소련의 침략으로부터 유럽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했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도 이제 기능이 쇠퇴했다며 그 가치를 평가절하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유럽의 운명은 유럽인의 손안에 있다’며 통합운동을 지속할 뜻을 분명히 했다. 베를린을 방문한 프랑스 우익 공화파의 프랑수와 피용 전 총리도 미국 없이 유럽연합 회원국끼리 유럽방위동맹을 결성할 것과 유럽과 러시아의 안보회의 구축을 제안했다. 유럽이 이제 더 이상 미국의 제2중대 역할을 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러시아와 유럽안보 문제를 토의하겠다는 유럽 외교의 대전환 선언이었다. 냉전 이후 70년 만에 들어보는 지정학적 천지개벽 선언이었다.

트럼프는 취임 후 첫 번째 조치로 오바마가 임기중 최대 업적으로 삼고 있는 의료보험(Obamacare)제도를 폐지하는 정책에 서명했다. 과거 정권이 만들어 놓은 정책을 싹 쓸어버리고 새판을 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국민이 그의 정책에 순응할 지는 미지수다.

미국 바깥의 관심은 그의 국내정책보다 러시아 정책, 푸틴과의 관계에 있다. 지금까지 냉전은 미국 대 러시아(소련) 간의 총체적 대결이었다. 그런데 푸틴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1등공신이 됐으니, 트럼프와 푸틴 사이에는 당분간은 냉전이 중지된다고 볼 수 있다. 국제정치의 새 판이 벌어질 태세다. 미-러 화해와 데탕트가 어느 정도까지 진전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물론 그 과실은 트럼프보다 외교에 능한 푸틴이 몫이 더 클 것으로 짐작되지만 말이다.

중국정책에 관한 한 트럼프도 종래의 미국 정책을 답습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과 러시아가 가까워지면 러시아와 중국 관계에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런데 취임식 하루 전에 러시아의 주간지 <엑스페르트>(전문가)가 ‘트럼프냐 아니면 두 세계의 전쟁이냐’라는 제목으로 러시아가 보는 트럼프의 미-러 정책을 전망하는 기사를 실었다. 추리 단계를 넘어 트럼프의 러시아 정책에 관한 성공 조건을 제시하는 흥미로운 전망 기사다.

매카시즘 시대를 제외하면 트럼프가 취임하는 시간에 유럽과 미국에서 표출된 히스테리는 일찍이 볼 수 없던 수준이다.

<에스페르트>는 트럼프가 취임하기 전부터 미국의 CNN 같은 ‘자유세계’ 언론이 보도한 기사-취임하는 날 트럼프가 암살당할 수 있다는 것까지 상상한 추리-에 놀랐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도 트럼프가 탄핵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잡지는 이 같은 상상을 ‘힐러리 클린턴의 대선 패배나 브렉시트, 유럽 (극)우파의 성장을 보고도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묵은(기존) 체제는 분명히 오래 걸리고 어렵지만 결국 변화한다. 그 변화를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인지 인지하고, 최종적으로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에스페르트>는 지적했다.

트럼프에 장수를

<엑스페르트>는 트럼프가 러시아와 관계 변화 실험에 성공하면 미국과 러시아 나아가 다른 국가들에까지 새 세계의 희망을 주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트럼프가 건강하게 오래 장수하기를 기원한다면서 글을 맺는다.

<엑스페르트>의 전망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푸틴이 트럼프의 당선을 위해 미국의 대선에 개입하는 모험을 한 것은 70년 이상 지속된 냉전을 종식시키고 미구과 러시아로 대표되는 두 이데올로기의 세계가 이념적 대립을 종식시키는 노력에 성공하면 미-러는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를 위해 좋은 일인데 그 과업이 너무 어려워 시간을 정해놓고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 그러나 푸틴은 이 과업을 실현해 보기 위해서 트럼프를 대상으로 한번 실험해 보기로 결정했고 그래서 그의 당선을 위해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는 시사를 느끼게 된다.

문제는 푸틴의 미국의 대통령을 만드는데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의 해킹 수단까지 갖고 있는 인물로 앞으로도 트럼프를 상대로 미.러관계를 개선하는 노력을 계속할 것 같다는 것인데 트럼프가 돈만 아는 기업가이기는 하지만 장사치 기질 탓인지 거짓말을 곧잘하는 위험한 인물이라는 언론(르몽드)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적어도 한 동안 두 수수께끼 인물의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그들의 음모의 정곡을 찾아내는 인내를 가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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