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통령 선거가 주는 교훈

세계 언론이 역사적인 선거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한 프랑스 대통령선거의 1차 투표가 23일 실시됐다. 무려 11명의 후보가 출마했고, 그중 50%를 득표한 후보가 없었기 때문에 2주 뒤인 5월 7일 1차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두 후보를 놓고 당선자를 결정하는 2차 결선투표가 실시된다. 1차 투표 결과, 24.1%로 얻어 1위를 한 “전진하자!” 운동 후보 에마누엘 마크롱(39세)과 23.1%를 얻어 2위를 한 극우 국민전선(FN) 후보 마린 르펜(49세)이 결선을 벌이게 된다.

이번 대선은 극우정당으로 낙인찍힌 국민전선이 2002년 이후 15년 만에 결선에 진출하는 세력을 과시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선거였다. 15년 대선에서는 다수 좌파 정당들이 난립, 표를 분산시카는 바람에 사회당이 2위에 들지 못하고 그 여파로 국민전선이 2위를 차지하게 됐지만 이번에는 처음부터 괄목할 지지세력으로 2위를 차지했다. 프랑스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새로운 정치현상을 조성했고, 그 결과가 유럽연합(EU)의 와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선거였다.

전통적으로 1차투표 결과는 우파의 제1당과 좌파의 제1당의 후보가 1, 2위를 차지해 결선투표를 치렀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는 여당인 사회당과 바로 전에 집권했던 보수 공화당(LR) 후보가 모두 결선투표에서 탈락했다. 제5공화국 역사상 최초로 나타난 이변이었다. 그 대신 정당 후보가 아니라 무슨 무슨 운동을 대표하는 후보들이 대선의 주역으로 부상했다. 기성 정당과 정치인들에 대한 유권자의 불신이 초래한 현상이다. 정당 대표가 아니라 시대정신을 나타내는 문제가 유권자의 관심을 끄는 새로운 선거 문화가 등장한 것이다.

이번 대선은 사회당 출신의 올랑드 대통령이 실업자를 줄이겠다는 공약을 지키지 못한데다 국민의 지지도가 10% 이하로 추락하자 5공화국 출범 이후 최초로 재선 출마 포기를 선언한 가운데 치러지는 선거여서 다소 혼란스러웠다. 거슬러 올라가면 예선 단계부터 예상 밖의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작년 말 실시된 우파 정당의 예선에서 정치 원로들이 후보 예선에서 탈락하고 사르코지 대통령 아래서 총리를 지낸 프랑수와 피용이 후보로 선출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금년 2월에 실시된 죄파 예선에서도 잠시 교육부 정관을 지냈지만 당원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브누아 아몽이 사회당 후보로 발탁됐다.

사회당의 올랑드 대통령이 인기가 없어 재선을 포기하는 상황에서 실시되는 선거이므로 우파인 공화당 후보 피용이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것이 여론의 전망이었다. 그러나 2월 초 주간지 ‘르 카나르 앙셰네’의 보도가 판도를 바꿔 놓았다. 피용의 부인이 남편이 하원의원시절 그의 보좌관으로 이름을 올려놓고 30년 가까이 월급을 받아갔다는 폭로였다. 여론이 들끓었다. 공화당 내에서까지 피용의 후보 불가론 후보 교체론이 일기 시작했다.

피용은 사실을 부인하고 션거운동에 매진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지지도가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투표 결과는 3위에 그쳐다. 결선 후보자격 미달이었다. 사회당 후보 브누아 아몽도 5위에 머물렀다.결국 프랑스 거대 양당 후보로서 결선 투표 자격을 얻은 후보가 한사람도 없었다.

결선은 “전진하자!” 운동의 마크롱과 극우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이 대결로 승부가 나게 됐다. 문제는 르펜 후보가 승리하는 날에는 프랑스를 유럽연합과 유로화지역에서 탈퇴시키고 다시 프랑화를 사용하며 국경을 통제해서 이민을 막겠다는 공약을 국민투표에 부치게 되는 것이다. 영국의 브렉시트에 이어 프랑스까지 EU를 탈퇴하는 프렉시트가 현실화될 수 있다. 영국과 달리 프랑스가 EU를 탈퇴하면 유럽연합은 끝장을 보게 된다. 세계 언론이 프랑스의 대선을 역사적인 선거라며 주시한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프랑스의 EU 탈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 평가였다.

천만 다행인 것은 1차투표에서 선두를 차지한 마크롱 후보는 국민전선과는 정반대로 EU의 통합을 강화하고 조절하겠다는 친EU론자인 것이다. 그리고 EU와의 관계 조정을 주장하는 극좌 “복종을 거부하는 프랑스”운동의 장뤽 멜랑숑을 제외하고는 좌우를 막론하고 모든 후보가 마크롱에게 투표하자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극우 국민전선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데 모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 결선투표일은 2주 후인 5월 7일이지만 이미 투표 결과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마크롱이 올랑드 후임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2주일 후면 다음 프랑스 대통령이 될 에마누엘 마크롱은 어떤 인물인가?

그는 1977년12월 21일 생. 만 39세다. 프랑스 북부 솜(Somme) 주의 수도 아미앵 출신이다. 명문 파리 정치대학(시앙스포)과 행정대학(ENA)을 졸업하고 2008년부터 로쉴드(Rothschild;로스차일드) 은행에서 근무했다. 2012년 올랑드가 대통령에 취임한 후 그의 비서실 부실장에 발탁됐다가, 2014년 8월 경제산업장관으로 임명돼 2016년 8월까지 2년간 일했다. 올랑드의 경제정책에도 영향을 많이 끼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크롱은 경제장관으로 일하던 2016년4월 “전진하자!”는 청년운동을 창설하고 운동에 참여할 청년들에게 좌우 이념에 얽매이지 말고 중도노선울 추구하는 것이 프랑스 정치의 나아갈 길임을 강조해왔다. 프랑스 혁명 후 2세기 동안 좌우로 분열된 프랑스의 분열을 극복하고 중도노선을 선택하자는 것이다. 이제 프랑스에서 중도정치가 시작될 것이다. 프랑스의 정치판도가 바뀔 것이다. 성공하면 유럽의 정치풍토의 변화에도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중도라서 마크롱이 프랑스에서 실시할 중도정치로 프랑스 정치판도가 어떻게 바뀔지가 관심정치에 동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실험에 대한 호기심을 느낀 사람들은 적지 않은 것 같다. 역시 프랑스 대선을 역사적인 선거라고 부를 또 하나의 현상인지 모르겠다.

마크롱은 2006년부터 9년까지 사회당에 입당 활약했으며 장관 시절 사회당 전국위원회 회의에도 참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장관을 그만 둔 다음에는 당비를 내지 않아 지금은 사회당 당원이 아니다. 그의 중도노선 철학과 사회당 당원은 서로 어울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마크롱은 아미앙의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라 프로비당스 고등학교 1학년 때(15세) 24세 연상인 프랑스어 여교사 브리지트 트로뉴와 사랑에 빠져 부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특이한 사생활의 역사를 가진 정치인이다. 정치에서도 인습을 무시하는 결혼을 단행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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