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는 극장에도 있다

요즘 웬만한 동네에는 대형 마켓의 체인점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처음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 주변이나 역세권을 중심으로 개장했던 대형 마켓이 중소규모의 체인점들을 우후죽순으로 동네마다 개장하면서 슈퍼나 소규모 상인들의 설 자리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지요.

영화 시장은 어떻습니까. 저는 기회 있을 때마다 CJCGV 계열의 ‘무비꼴라주(지금은 CGV 아트하우스로 개명)’와 롯데 시네마 계열의 ‘아르떼’ 등의 이른바 다양성 영화 상영관을 대기업 멀티플렉스의 생색내기라고 비판해왔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계열 극장의 극히 일부 지역에만 이 상영관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CGV와 롯데가 독립/예술영화에 대한 진정성을 입증하는 방법은 단 하나, 계열 극장 전체에 독립/예술영화관을 하나씩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하지요. 왜 안하겠습니까. 지금 정도의 수준으로도 충분히 생색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애초부터 대기업 독과점에 대한 비판을 피해가기 위한 물타기 용도였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그나마 독립/예술 영화를 틀 수 있는 공간이 하나라도 아쉬운 마당이니 영화인들은 어떻게든 CGV 아트하우스나 롯데시네마의 아르떼에 자신들의 영화를 상영하기를 원하게 됩니다. 여기라도 잡지 않으면 아예 관객들을 만날 기회가 봉쇄되는 독립영화인들이 자연스레 CJ나 롯데 등의 대기업 계열 멀티플렉스에 줄을 서게 되는 것이죠.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특히 CJ의 경우에는 상업영화 진영뿐만 아니라 독립영화 진영까지 거의 다 독점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대형 마켓의 동네 상권 파괴와 거의 유사한 상황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그나마 흥행에 성공한 다양성 영화는 CGV 아트하우스가 배급한 <한공주>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사실상 전부입니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필수 전제 조건으로 삼는 독립영화들조차, CJ라는 자본 권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들이 틀어주면 그야말로 감지덕지입니다.

이런 마당에 멀티플렉스 계열이 아닌 독립/예술영화관들(이를테면 이화여대 안에 있는 아트하우스 모모나 아트나인 같은 곳을 말합니다.)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일방통행식 정책 변경으로 말미암아 생존에 심각한 위협을 당하고 있습니다. 독립/예술영화를 배급하는 한 개의 회사를 영진위가 위탁하고, 그들이 영진위로부터 운영 지원을 받고 있는 20여 개 독립/예술영화관들에 대한 배급을 총괄하는 시스템으로 바꾸겠다는 겁니다. 게다가 그 배급 편수도 연간 26편으로 한정해 놓았으니, 만약 그 26편 안에 들지 못하면 아예 관객들을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CJ 앞에 줄을 서던 독립 영화인들은 이제 영진위 위탁 배급사 앞에서도 줄을 서서 26편 안에 들기 위해 서로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될 것입니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인디 정신이 무색해지는 상황입니다. 또 한 가지, 영진위 위탁 회사가 배급하는 영화를 상영하지 않는 영화관에는 향후의 지원을 끊겠다고 하니, 전국에 흩어져 있는 소규모 영화관들은, 그야말로 프로그래밍의 자율권을 박탈당할 뿐 아니라, 사실상 영진위라는 또 다른 CGV의 하청 상영관이 되는 셈입니다.

영화 시장을 생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자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심장이 없는 자본과 문화를 모르는 정책 담당자들은 청맹과니입니다. 자본은 종사자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자체의 독과점적 관성으로 달려가게 돼 있습니다. 오히려 그 때문에 문화 정책은 그걸 적절하게 제어해야 하는 것입니다. 문화 생태적인 관점에서의 영화 정책은 독과점에 대한 견제, 약자 시장의 확대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이것은 관련 종사자들의 생존권 문제만이 아닙니다. 다양성은 건강한 문화의 필요충분조건입니다. 그리고 독과점은 다양성을 파괴합니다. 역설적이게도 CGV 아트하우스와 영진위는 다양성 영화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진위의 이번 다양성 영화 정책 변경이 독립/예술영화인들로부터 ‘문화 독재’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상의 검열이라는 겁니다.

생태계가 위협을 당하면 먹이사슬의 상층에 속하는 포식자의 개체수를 통제하지, 피식자의 개체수를 통제하지 않습니다. 그건 상식입니다. 지금 이 나라의 영화 정책은 상식과는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본 글은 뉴스타파 블로그를 통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뉴스타파 블로그 회원가입을 통하여 뉴스타파 블로그에 합류하세요! 블로그 가입하기 | 자주 묻는 질문
뉴스타파 객원칼럼은 뉴스타파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뉴스타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