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저스의 예고된 스크린 독과점

어벤저스 감독과 출연진이 4월 16일 한국에 와서 기자회견을 했다. 전 세계 프로모션 가운데 한국을 가장 먼저 방문했다고 많은 언론이 감읍했다. 그 자리에서 감독은 말했다.

한국은 중요한 시장이다.

그런데 이 말의 속뜻을 좀 삐딱하게 받아들이면 이렇다.

한국 시장은 할리우드의 봉이다.

당연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은 한국에서 해외 흥행 수입의 10% 이상을 벌어간다. 한국 시장은 할리우드 영화가 북미를 뺀 나라 밖에서 벌어들이는 돈의 대략 2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 규모를 따져 보면 유난히 할리우드에 충성스러운 시장인 셈이다. 물론 그건 한국 시장의 특수성과 무관하지 않다. 한마디로 할리우드가 장사하기가 굉장히 유리한 시장이다. 말할 나위도 없이 무한대의 스크린 독과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영화가 전국 2,300여 개 스크린을 다 점령한다고 해도, 그걸 막을 방법이 한국에는 없다.

과연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개봉하자마자 사상 최다 스크린 수를 경신했다. 4월 25일 이 영화가 확보한 스크린은 1,843개. 상영 횟수를 고려한 상영 점유율은 무려 70%에 달한다. 그러니까 전국에 있는 상영관 10곳 중 7곳은 <어벤저스>를 틀었다는 얘기다. 이런 현상이 빚어진 것은, 일단 4월 비수기에 관객 가뭄에 애가 탄 극장들이 <어벤저스>에 대거 스크린 몰아주기로 화답했기 때문이다. 엄청난 예매율이 알리바이가 됐다. 그러나 예매율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확보한 스크린 수에 연동한다. 접근성이 강한 영화일수록 예매율이 올라가고, 극장들은 이걸 근거로 더 많은 스크린을 몰아준다.

어쨌든 그 덕분에 <어벤저스> 속편은 각종 신기록을 경신하며 맹렬한 흥행 질주 중이다. 연일 보도자료가 날아온다. 역대 최고 예매율, 역대 최다 예매량, 외화 사상 최단 기간 100만 돌파, 외화 사상 최단 기간 300만 돌파 등등의 기록들이 메일함으로 친절하게 배달된다. 그러나 보도자료 그 어디에도 이 영화가 사상 최다 스크린을 ‘독식’했다는 얘기는 없다.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비난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따져보자. 이것은 <어벤저스 2>의 과욕이 빚은 횡포일까? 단지 그것 때문일까?

많은 이들이 스크린 독과점을 시장 주체의 왜곡된 ‘의도’가 만들어내는 현상으로 오해한다. 아니다. 그것은 현재 한국 영화 유통 시스템에 의해 필연화 된 작동 원리다. 그러므로 영화진흥위원회 같은 기관에서 CJ니 롯데니, 멀티플렉스 종사자들을 불러 놓고 “우리 상생합시다” 악수시킨들 공염불이다.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가 왜 이러지,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 스크린 독과점으로 가게 돼 있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그게 자본의 독과점적 관성이다. 사회 시간에 졸지 않았으면 모르지 않을 상식이다.

스크린 독과점의 폐해를 재론하는 건 입 아픈 일이다. 불공정 경쟁 어쩌고를 떠나 딱 하나, 영화는 문화이고,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다양성을 스크린 독과점이 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도와 법이 필요한 것이다. 제도와 법을 통해 그걸 견제하지 않으면 시장 주체들을 아무리 설득해봤자, 알아서 독과점을 자제하지 않는다. “우리도 우리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할 거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최민희 의원이 스크린 독과점을 견제하는 관련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게 벌써 수 해다. 과연 그이와 그 소속 정당에 입법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당장 주류 영화인들부터 스크린 독과점 문제에서는 복지보다 성장주의자들이 많고, CJ나 롯데에 줄을 대서 ‘나도 언젠가 천만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는 환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법자들도 대략 여론을 의식해 생색만 내고 끝내고 싶은 것이 아닐까 싶다.

<어벤저스> 속편은 천만 넘는다. 이건 너무 쉬운 예상이다. 그리고 점점 더 한국영화보다 할리우드 영화가 천만을 넘는 빈도수가 많아질 것이다. 한국영화가 뚫은 속도 무제한 고속도로로 할리우드가 쌩쌩 달린다. 자업자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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