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검열의 시대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영화에 대한 사전 심의, 즉 검열이라는 게 존재했습니다. 영화를 세상에 내놓기도 전에 공무원들이 영화인들의 창작물에 마구 가위질을 해댔죠. 어처구니없는 시절이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사전 심의가 사라지기까지는 군사정권이 막을 내린 뒤인 1996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사전 심의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고, 한국에서 검열이라는 후진적 제도는 일단 명목상으로는 사라졌습니다. 물론 지금도 남아 있는 제한상영가 등급이 사실상의 검열이라는 시각이 존재하지만, 어쨌든 사전 심의를 통해 영화에 합격, 불합격 딱지를 붙이는 관행은 없어졌습니다.

한국영화의 전성기는 검열의 폐지와 함께 도래했습니다. 때마침 대기업이 영화계에 진출하는 것과 맞물리며, 그동안 숨죽이고 있었던 재능 있는 영화인들이 창작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발산했고, 이것은 한국영화의 소재 영역을 혁명적으로 넓혔습니다. 그리고 장선우, 박철수, 박광수, 홍상수, 김기덕, 이창동 등 일군의 작가주의 감독들이 물 만난 고기처럼 퍼덕거리며 나래를 펼쳤습니다. 바야흐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가 시작됐습니다.

2015년 현재, 여전히 법과 제도로는 한국에 검열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방식의 검열이 존재합니다. 권력이 눈에 띄지 않게 영화를 통제하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가능합니다. 세무조사나 모(母)기업에 대한 검찰 수사 압력 등을 행사하면 영화사들은 ‘깨갱’할 수밖에 없어집니다. 대규모 영화 자본은 권력의 입맛에 맞는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영화 자본은 다시 창작자들을 옥죕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검열로 작동합니다.

반민주적인 어떠한 권력도 체제의 부조리에 저항하는 영화인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습니다.

지난해 말 개봉해 천만 관객을 돌파한 <국제시장>은 국내 최대의 영화배급사 CJ E&M의 영화입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이 회사는 지난 2012년 대선 직전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배급했고, 역시 천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영화계에서는 이 영화가 집권 세력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고 합니다. 기억하다시피 이 영화가 다분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시켰고, 때마침 당시 유력한 야당 대선 주자인 문재인 후보가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린 게 화제가 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CJ의 이재현 회장은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물론 횡령은 큰 잘못입니다. 그러나 오비이락치고는 참으로 타이밍이 절묘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 이후 CJ E&M은 자사 케이블 TV를 통해 현 정권의 모토인 ‘창조경제’를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내보냈습니다. CJ의 주변에서 정권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는 영화는 만들지 못한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는 <국제시장>이 나왔고,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 이 영화의 애국심을 칭송했습니다. 한편, CJ는 이미 완성된 영화 <소수의견>의 배급을 포기했습니다. 영화 <소수의견>은 용산 참사를 모티브로 국가 권력의 부도덕을 질타하는 내용입니다.

영화 <연평해전>을 배급한 NEW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인권 변호사 시절을 담은 <변호인>을 2013년 말에 배급해 천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그리고 1년 반 뒤 역시나 CJ처럼 “애국 영화” <연평해전>을 배급하기에 이릅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듣자 하니, NEW는 <변호인>을 개봉한 뒤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았고, 회사의 대표는 대상포진에 걸릴 만큼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방식의 검열에 대한 합리적 의심은 괜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소수의견>은 <연평해전>과 함께 300여 개 스크린에서 개봉했습니다. 상영횟수는 <연평해전>의 3분의 1 수준입니다. 또 한 번 듣자 하니, 대기업 계열의 멀티플렉스들이 이 영화에 스크린을 배정하기를 꺼리고 있다고 합니다. 영화계 안팎에서는 이 역시 ‘몸 사리기’로 보고 있습니다. 영화가 개봉하기 직전, 한 극장주는 제게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위탁점들(멀티플렉스 체인에게 극장 운영을 위탁한 지역 극장들) 주인장들에게 전화라도 걸어야 겠어요. (대기업) 직영점들이야 눈치 보지만 위탁점들은 눈치 보지 말고 시원하게 자기 상권 관객들에게 개운함을 줘야 하는데 눈치를 보니…

지금, 우리는 권력이 더욱 교묘한 방식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상황을 알게 모르게 통과하고 있습니다. 즉 우회적 검열의 산물들 말입니다. 다만 1996년 이전과 지금이 다른 것은, 그 땐 창작자들이 노골적이고 야만적인 검열에 저항하는 투사가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부지불식간에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는 것입니다. 자본이 권력의 노예가 되고 창작자들이 자본의 노예가 된 딱한 시절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나의 절친 악당들>의 임상수 감독이 친히 초반에 등장하자마자 스스로를 죽여 버리는 연출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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