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김원봉, 그리고 반민특위

영화 <암살>이 광복절이었던 지난 8월 15일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의 내용을 고려하면 참으로 상징적인 기록이다. 광복 70주년이라는 의미가 더해지면서 <암살>의 천만 돌파는 여러 측면에서 주목을 끌었다.

충무로에서는 ‘500만 명까지는 영화의 힘으로 가고, 500만 명 이상은 흥행의 힘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흥행이 흥행을 견인하는 셈인데, 한 편의 영화가 천만을 넘기는 것은 단순히 대박을 터뜨렸다는 차원을 넘어 하나의 사회적 현상, 또는 담론으로 고양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의 집단 무의식 속에 잠복해 있는 역사적 부채감과 영화가 광범위한 접점을 만들어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영화 <암살>은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에 대한 원망이 엄청난 흥행세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암살>은 친일파를 제거하기 위해 파견된 안옥윤(전지현) 등 세 명의 암살조의 활약을 대중 오락영화적인 호흡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막상 영화가 개봉하고 나니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졌다. 영화 속에서는 조승우가 연기한, 비중도 굉장히 작은 김원봉이라는 인물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것이다. 역시 영화 속에 등장하는 김구 선생이야 우리 역사의 굵직한 인물로 많은 국민이 알고 있지만, 김원봉은 생소한 인물이었던 게 사실이다. 나 역시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어도,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김원봉이 누구인지 몰랐다.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그가 항일 독립 투쟁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했던 인물인지를 알게 됐다. 그건 영화 <암살>에 고마워해야 할 부분임에 틀림없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우리는 약산 김원봉을 잘 모르고 있었을까. 호기심이 일어 그의 행적을 찾아보았더니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김원봉은 해방 이후 김구와 함께 통일 조국을 위한 남북 협상에 참여했다가 북한에 남았다. 그는 북한 노동상과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 부위원장까지 지냈다. 그러니 반공을 국시로 삼았던 남한에서 그의 독립 투쟁 활동이 평가절하될 수밖에 없었던 건 어쩌면 당연한 노릇이었겠다 싶었다. 어쨌든 김원봉은 1958년 북한 정권에 의해 숙청당하게 되니, 독립투사들이 받은 대우는 남과 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영화 <암살>을 통해 뒤늦게나마 김원봉이 재조명을 받는 것은 분명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 등장하는 이른바 ‘반민특위’에 대해서도 사회적 담론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암살>과 관련된 검색 키워드에서 ‘반민특위’는 빠져 있다. 영화 역시 염석진에 대한 안옥윤의 응징을 위한 배경 정도로 슬쩍 보여줄 뿐, 반민 특위가 어떤 활동을 한 단체인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반민특위, 즉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는 해방 이후 친일파 인사들에 대한 청산을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였다. 그러나 반민특위를 사실상 해체한 인물은 당시 남한의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승만이었다. 미군정의 지원을 등에 업고 권력을 쥔 이승만은 친일 인사들을 대거 기용했고 반민특위를 무력화함으로써, 그들이 다시 활개를 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한국 현대사의 첫 단추가 잘못 끼어진 원통한 순간이었다.

뉴스타파가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친일과 망각’이라는 특집을 통해서도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어떻게 남한 사회에서 호의호식하며 권력을 유지해 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단초는, 반민특위의 실패였다. 영화는 반민특위의 실패에 대한 원통함을 안옥윤의 대리 응징으로 슬쩍 해소하고 있지만, 슬프게도 그건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청산은 기억함으로써 완성된다. 김원봉처럼 잊혔던 영웅을 다시 불러내는 것만큼이나 왜 이 나라가 여전히 기회주의자들의 땅으로 남아 있는지, 그 이유 역시 정확하게 직시해야 한다. 영화 <암살>을 통해 거기까지 사회적 담론이 전진하지 못하는 것 역시, 씁쓸하게도 해방된 지 70년이 된 이 시대에까지 반민특위 실패의 후유증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 TEdd Kim

    반민특위의 실패는 이념으로 무장한 두 강대국의 패권주의의 대리인이였던 친소사대주의자인 김일성이 민족주의를 가장하고 북쪽을 점령한 소련의 대리인으로 북쪽에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하고 친일파의 청산이 철처히 정치적 이해타산에 의하여 이행되어졌고, 민족주의자요 민주주의자 였던 독립지사의 독립된 대한민국의 건립을 좌절시켰고, 미국이 점령한 남쪽 또한 친미사대주의자인 이승만이 권력장악을 위하여 오직 반공주의 아니면 살길이 없었던 친일파를 권력의 파수꾼으로 등용시켜 철저한 반공주의 전위세력으로 활용하면서 민족주의자요 독립지사이며 민주주의 이념에 의한 새로운 독립국가의 건립에 대한 이념을 송두리체 좌절시켰다. 외세라는 두세력이 한반도에서 충돌하면서 독립국가의 비전과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의 단죄는 도로아미타불이 되어버렸다. 소련과 미국은 독립지사들이 원하는 독립된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건립을 원하지도 않았고 허용할 추호의 의사도 없었다. 단지 북과남에 소련과 미국의 대리인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정권의 건립만을 원하고 있었다. 한국민이 원하는 독립은 외세라는 변수에 의하여 좌우되는 종속변수에 지나지 않았다. 바로 반민특위의 실패는 한국민의 역사적 실패였고 아울러 힘없는 독립이 진정한 독립을 이룰수 없다는 뼈아픈 교훈이였다. 아울러 반민특위의 실패는 미국는 친미국가의 존속을 위하여 한국의 역사적실패에 관심이 없음을 실증하고 있다. 강대국인 미국에 의한 민주주의 이식은 역사가 증명하듯이 정통성이 상실된 민주주의, 부패된 민주주의, 권력이 남용되는 민주주의 건립으로 진정한 독립국가의 건립을 방해하는 민주주의 국가로 남을수밖에 없는 역사적 한계를 증명하고 있고, 소련의 대리인인 김일성이 건국한 북쪽의 공산국가는 독립정신을 계승할수 없는 정통성이 상실된 일인중심의 권력이 집중된 괴물국가로 전락했다. 이미 과거의 괴물이 되어버린 공산주의 이념으로 공산독재전제왕국이 되어버린 괴물국인 북한과 아직은 희망을 걸어보는 남쪽의 대한민국, 외세에 의하여 펴져 있는 친일과 찬미하는 독버섯을 떨쳐내고 독립정신과 독립지사들이 희망하고 소망했던 공정한 권력, 정의로운 권력, 바른 국민의 여론에 의하여 통제되는 권력, 삼권분립과 국민의 소리를 담아내는 언론에 의하여 견제 되는 권력, 진실과 진리를 끝까지 추구하고 심판되는 진정한 양심과 진리가 심판과 판단의 기준이 되는 민주주의 국가로 환골탈태 할수 있는 시대의 도래는 요원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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