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션>이 감동적인 이유

리들리 스콧 감독의 할리우드 SF 영화 <마션>이 가을 극장가에서 흥행 순항중이다. 지난 8일 개봉해 일주일째인 14일까지 218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여전히 50%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예매 점유율을 감안하면, 400~500만 명 이상의 관객 동원은 거뜬해 보인다.

영화 <마션>은 화성탐사대에서 낙오된 마크 와트니(맷 메이먼 분)의 생존기와 그를 구출해내려는 NASA와 동료들의 구조기를 함께 펼쳐 놓고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톰 행크스가 주연했던 무인도 표류기 <캐스트 어웨이>(2001)와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했던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의 서사적 틀을 우주 공간으로 확대한 버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첨단 우주 과학을 기반으로 펼쳐지는 모험극은 한국에서 유난히 인기가 많았다. 우주 공간에서 낙오된 산드라 블록의 지구 귀환기를 담은 <그래비티>가 그랬고, 웜홀, 블랙홀 등 온갖 물리학적 지식이 총동원된 <인터스텔라>는 한국에서 천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이 영화 역시 그런 면에서 한국 관객들의 취향에 제대로 어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단지 그것 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볼거리가 충만한 영화라 할지라도 감동이 빠지면 광범위한 호응을 얻기 어렵다. 사실 영화 <마션>은 무대를 우주로 옮겼을 뿐, 두가지 플롯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하나의 웅장한 휴먼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화성에 홀로 남게 된 마크가 과연 구조대가 손길이 닿을 때까지 살아 남을 수 있느냐와, 그의 생존 사실을 알게 된 지구인들이 마크를 구해낼 수 있느냐라는 두 가지 절박한 질문을 품고 관객들을 끌어 당긴다. 즉, 이 영화는 살아 남으려는 인간의 의지와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살려 내려는 인간애의 의지를 펼쳐 보인다.

인간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살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존재다. 그것은 문명을 진화시킨 원동력이었다. 한편으로 인간은 동료 인간에 대한 연대, 그러니까 나의 생명이 소중하듯, 다른 인간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가치 역시 지니고 있다. 그래서 마크가 아득한 고독의 심연 속에서 쉽게 절망하지 않고 끝내 화성 기지 내부에서 식량이 될 감자를 재배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마크가 죽은 줄 알고 화성을 탈출했던 아레스 3호의 대원들이 마크를 구해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다시 화성으로 날아가 구출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은 더욱 감동적이다. 이것을 든든하게 뒷받침하며 조금이라도 더 가능성 있는 구출 작전을 짜내고 개발하는 NASA의 활동은 인류의 가치를 확인시킨다는 점에서 공명을 불러 일으킨다.

관객은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마크의 입장이 되었다가, 마크를 살려내고자 모든 위험을 무릅쓰는 아레스 3호 대원들의 입장이 되었다가 무기력하게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라 가능한 모든 방법을 고민하는 NASA 직원들의 입장이 되며 감동을 얻는다. 그렇다. 이게 인간의 모습이다. 인간적인 인간 사회가 지향하는 바의 이상향이 <마션>에 있는 것이다.

한편, 그것은 씁쓸하게도 한국사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자살율 1위, 젊은이들 사이에서 ‘헬조선’이라는 냉소적 신조어까지 나올 정도로 이 사회는 점점 더 사람들을 살기 빠듯한데다 인정 없는 시공간으로 밀어 넣고 있다. 때마침 통과된 노동시장 개혁안은 모든 노동자를 사실상 비정규직화함으로써 파편화된 개인으로 전락시킬 채비를 하고 있다. 이로부터 ‘같이 살자’가 아니라 ‘다 죽어도 나만은 살 수 있다’는 허구의 신화가 강화된다.

<마션>을 보며 세월호 사건을 떠올린 사람이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살려내고자 하는 의지와 만나지 못했던 그 비극의 순간 말이다. 통탄스럽게도 당시 세월호의 선장과 승무원들은 아레스 3호 대원들의 태도와 정반대였고, 초동 구조에 실패한 정부는 NASA의 태도와 천양지차였다. 한 명의 생명을 위해 지구에서 수 개월이 걸리는 화성까지 날아가는 그 인간애는, 그 숭고한 의지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았다.

현실을 각성시키는 불편한 영화도 있지만, 대부분의 대중 영화는 관객에게 감정적 판타지를 제공한다.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현실에서 결핍된 것에 대한 대리만족을 얻는 것이다. 영화 <암살>을 통해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에 대한 대리 복수를 경험하고, <베테랑>을 통해 재벌의 횡포에 대한 대리 응징을 경험한다. 그렇다면 영화 <마션>이 우리에게 주는 대리 만족이 무엇인지는 비교적 자명해 보인다. 그것은 여기에 없는 것이다.

  • tempuser

    딱히 이런 감정을 의식적으로 느끼지는 않았지만 일리는 있는 것 같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그냥 공대뽕을 즐기기 위해 본것이라 ㅎㅎ 과학덕후력으로 화생을 개척하는 것이라! 죽음을 무릎쓰고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도 비슷한 느낌이었을까요, 맷데이먼에 본인을 대입하면서 개척자의 심리를 대리경험하는 것이 저에겐 영화의 가장 큰 재미였습니다.
    비현실적인 것은 알지만 나름 감동적이었던 것은 중국이 일부러 자신들이 로켓기술을 감추려고 태양신호의 존재를 감추고 있다가 “이건 과학자로써의 도리다” 라면서 통쾌하게 태양신호를 나사에 제공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현실에서는 절대 이렇게 순조롭게 일이 진행될리는 없겠지만, 지구안에서만 놀던 인류가 이제 화성(더 나아가 우주)라는 존재에 대항하기 위해 하나로 뭉치는 현상이 흥미로웠습니다. 결국 인류란 무언가 적으로 돌려야만 단합을 하는 그런 존재인가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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