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부자들’이 보여주는 현실과 판타지

영화 <내부자들>이 올해 초겨울 극장가를 완전히 점령했다. 지난 주말까지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다. 지금 추세라면 500만 명을 넘어 600만 명까지도 넘볼 기세다. <내부자들>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영화다. 지금까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한국영화로 500만 이상의 흥행 기록을 세운 작품은 <친구>(2001), <타짜>(2006)와 <추격자>(2008), <아저씨>(2010) 딱 네 편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그 다섯 번째 영화로 합류하게 되는 셈이다. 그만큼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 흥행 면에서 한수 접고 들어가는 불리한 입장이라는 얘기인데, 거꾸로 그 같은 등급으로 500만을 넘겼다는 건 웬만한 영화의 800만~1천만에 버금가는 흥행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그렇다면 이즈음에 우리는 왜 영화 <내부자들>이 이런 흥행파워를 보여주고 있는지에 대해서 질문해볼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이 영화가 드러내는 한국 사회의 부조리가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묘사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성접대 장면은 너무 선정적인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사실, 이 영화는 정계-재계-언론계를 잇는 삼각 카르텔의 추악함을 드러내는 데 거의 영화의 전반부 1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 장필우(이경영 분), 그들에게 뒷돈을 대주고 사익을 챙기는 미래자동차의 오회장(김홍파 분), 그리고 그들의 막후 조종자를 자임하며 커미션을 챙기는 조국일보의 이강희 논설주간(백윤식 분)이 그들이다. 영화의 전반부는 실상 이들이 거의 주인공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감독 우민호는 이들이 어떻게 한국 사회의 파워 엘리트로서 군림하고 있는지를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그리고 그들의 대척점에 정치 깡패 안상구(이병헌 분)와 족보 없는 검사 우장훈(조승우 분)이 있다. 추악하지만 거대하고 강고한, 그래서 감히 누구도 깨뜨릴 수 없을 것 같은 삼각 카르텔에 대한 깡패와 검사의 연합 작전은 영화 후반부를 이끄는 동력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두 가지 축을 연쇄적으로 이어 붙이며 달려가는데, 첫 번째 축은 세밀하게 구축된 안타고니스트(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의 세계를 완성하는 것이며, 두 번째 축은 프로타고니스트(사건 행위의 주체)들이 그 세계를 붕괴시키기 위해 치밀한 전술과 연대 전략을 실행에 옮기는 단계이다.

사실 이런 구도는 일반적인 영화 시나리오 작법을 고려할 때 상당한 무리수라고도 볼 수 있다. 대개의 경우, 류승완의 <베테랑>처럼 주인공들의 세계가 먼저 제시된 뒤, 안타고니스트(영화 속 재벌 3세)의 위협이 뒤따른다. 그래야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한 관객들이 비교적 편안하게 그 또는 그들이 거대한 장벽을 넘어서는 과정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부자들>은 반대의 길을 가는 것이다. 우민호 감독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여기에서 영화가 사회와 맺는 맥락적 관계가 도출된다. 즉, 이미 <내부자들>이 전반부에 보여주는 그 추악한 풍경은, 관객들이 이 사회의 공기 속에서 암묵적으로 느끼고 있는 현실에 대한 기시감을 끄집어낸다. 감독은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관객들이 이미 ‘짐작하고 있는’ 그 현실을 새삼스럽게, 그러나 충격적인 방식으로 상기시킨다.

나는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영화는 현실을 비추는 볼록거울”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영화 <내부자들>이 보여주는 기득권 카르텔의 우아한 시궁창은, 볼록거울에 비친 우리의 현실이다. 이 영화의 거대한 흥행 현상 이면에는 그것에 대한 관객들의 동의가 전제되어 있다.

다만, 영화이므로 영화적 한계 안에 갇힐 수밖에 없는데, 검사와 깡패의 연합작전이 그 철옹성 같은 카르텔을 무력화시킨다는 설정은 어쩔 수 없이 판타지다. 영화 <암살>에서 안옥윤(전지현 분)이 배신자이자 친일파 염석진(이정재 분)을 끝내 처단하는 것은, 미완의 역사 청산을 대리 충족시키는 판타지이며, 일개 형사(황정민 분)가 돈이면 다 된다고 믿는 재벌 3세(유아인 분)의 오만을 응징한다는 <베테랑>도 실은 판타지다. 만약 이들 영화들이 그같은 판타지를 설계하지 않고, 진짜 우리의 현실처럼 정의는 늘 기회주의자들에 의해 패배하고, 가진 자의 법이 서민의 생존권을 압도하는 것으로 묘사됐다면 아마도 흥행은 애당초 물 건너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 판타지들을 흥행을 위한 꼼수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그 판타지들이 모두 대중의 의식/무의식 속의 결핍감에 닿아 있으며, 그것 역시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무지막지한 ‘헬조선’을 견뎌내고 버티기 위해, 마치 잠 안 오는 밤에 필요한 술 한 잔처럼, 스크린에 투영된 세상에서나마 옳은 것이 이기는 걸 목격하고 싶은 것. 거기까지가 우리의 참혹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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