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부자들’을 불편해 하는 어떤 시각들에 대하여

지난 1월 7일 한국영화사에 또 하나의 기록이 보태졌다. 영화 <내부자들>이 ‘디 오리지널’이라는 부제를 단 확장판의 동원 관객수를 합쳐 역대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것이다. 기존의 청불 영화 최고 흥행작은 2001년의 <친구>였으니 무려 15년 만의 기록 경신이다. 관객을 성인으로만 제한하는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로서 이 정도로 흥행했다는 것은, 이를테면 12세 이상 관람가나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의 천만 관객 동원에 맞먹는 흥행세라고 할 수 있다.

영화 그 자체에 대한 논평 말고도, 이를테면 이런 흥행 현상에 대해서도 평론가는 분석해야 한다. 무엇이 이토록 많은 관객들이 <내부자들>을 보게 하였는가. 단지 영화의 힘 때문이라고만 단순화할 수 없는 이 시대의 집단 심리적 기제가 <내부자들>의 흥행을 견인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나는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과 지난 8일 대담을 했다. 그는 영화가 처음 만들어져 내부 시사를 가진 결과, “400만 명 이상은 들겠구나”라는 예상이 나왔다고 전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두 배 이상의 흥행 성적을 낸 것이니, 그들의 예측이 빗나간 지점, 그러니까 400만과 820만 명 사이의 지점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우민호 감독은 이 영화를 ‘정의에 대한 영화’라고 스스로 규정했다. 그 규정이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답답한 현실 속에서 정의가 구현되는 상황을 목격하고 싶은 관객들의 열망이 영화의 스타 캐스팅과 감독의 준수한 연출이 만들어낼 수 있는 흥행력 이상의 플러스 알파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나는 본다.

감독과의 대담에서 우리는 이 영화에 대한 ‘비호감’ 평론들을 화두로 삼았다. 영화가 처음 나왔을 당시, 적지 않은 평론가들이 <내부자들>을 호의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이동진 평론가는 “적나라하고 자극적인 효과 자체에 사로잡혀 있다”고 평했으며 씨네 21의 김현수 기자는 “내용이 부실하니 자랑할 건 배우들 뿐”이라고 혹평했다. 강유정 평론가는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환상이 지나치면 환각이 된다”고 썼다.

요컨대, 영화 <내부자들>은 자극적이고 지나치게 적나라하거나 선정적이며, 영화의 복수극도 단순한 대리 만족 이상의 것을 주지 않는다는 의견들이다. 영화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으니 이런 의견이 틀렸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나는, <내부자들>이 “한국사회 리더 그룹을 모두 파렴치한으로 만든 영화”라고 일축한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불쾌감과, 평단 일각의 불쾌감 사이에 놓인 아주 미묘한 접점을 감지하게 된다.

그것을 최대한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영화를 ‘프로파간다’, 즉 대중 선동의 매체로 보는 관점이다. 역사적으로 영화는 실제로 대중 선동의 매체로 기능했다. 이른바 ‘몽타주 이론’으로 유명한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과 같은 소비에트 감독은 사회주의 혁명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이를테면 <전함 포템킨>(1925) 같은 작품들을 찍었다. 레니 르펜슈탈의 <의지의 승리>(1934) 같은 다큐멘터리는 충실한 나치 선동 영화로 기능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대종상에서 반공영화상을 받으면 외화 수입권을 주는 방식으로 영화를 반공 이데올로기 강화의 도구로 활용했다.

이런 영화의 역사를 반추해보면, 영화가 대중의 의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며 선동적인 역할을 담당한다고 보는 시각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이 시각에서 자칫 간과될 수 있는 것은 영화가 또 한편으로는 창작자가 가진 시대 의식의 투영물이며, 따라서 현실의 투영물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는 ‘현실을 비추는 볼록 거울’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현실이 추하거나 잔혹할 때 영화는 그것을 은유하는 표상을 만들어낸다. <내부자들>의 이른바 ‘성기 동맹’ 장면과 손을 자르는 장면은, 감독 우민호가 감지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공기를 영화적으로 표상화한 것이다. 그것을 단순히 자극적인 효과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자극’으로 치면 영화 <7번방의 선물>이 갑이다. 그 영화는 관객들에게 감정이 남아 있음을 확인시키기 위해 눈물샘을 쥐어짜는 다양한 자극 기제를 총동원했다. 하지만 그 자극으로 얻은 눈물은 파블로프의 개가 흘린 침 분비물과 다름없었다고 나는 평가한다.

<내부자들>의 정의 구현은 어쩔 수 없이 판타지다. 누차 강조하는바, 대중영화는 관객에게 판타지를 선사할 수밖에 없는 한계에 갇혀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 판타지가 현실 인식을 강화하는 것이냐, 아니면 강유정 평론가의 우려대로 그저 환각제에 머무는 것이냐이다. 영화 <암살>의 친일파 염석진 처단은 명백한 판타지다. 그러나 대중은 그 영화를 통해 친일파가 실제로는 청산되지 못했다는 현실을 슬쩍 상기할 수도 있다.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내부자들>에서 안상구와 우장훈의 연합작전으로 기득권 카르텔이 붕괴되는 것 역시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은 명백한 판타지다. 그러나 적어도 파렴치한 협잡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현실을 씁쓸하게 상기하며 극장문을 나서는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역시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우민호 감독과의 대담에 참석한 한 관객은 이렇게 말했다. “영화를 보면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것들은 모두 우리가 신문과 뉴스에서 보았던 것들이었습니다.”

“어차피 대중은 개, 돼지입니다.”라고 말하는 영화 속의 이강희 논설주간은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와중에 한쪽 손이 잘린 상태로 누군가와 통화를 한다. “오른손이 없으면 왼손으로 쓰면 되지요.” 결코 쉽게 붕괴되지 않을 철옹성 같은 지배 시스템이 극장문을 나서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고, 그러니 정신 바짝 차려달라고 감독은 관객들에게 슬쩍, 그러나 인상적인 방식으로 부탁한다. 따지고 보면, 현실을 가리는 일등 공신은 이미 정치권력과 자본에 의해 단단히 장악된 언론 매체이다. 따라서 우리에겐 이런 영화가 더 많이 필요하다.

  • 임달주

    좋은 말씀과식견에 매우매우 동의하면서
    이나라 언론이 제대로 살아있다면
    하는 아쉬움과
    이념이 없는 예술은 쓰레기다 라는 말도 생각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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