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적 보수’의 출현에 대한 기대

“더 이상 국민을 속이지 말라“ 세월호 유가족들의 말이 아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당 대표가 지난 3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한 얘기다. 박근혜의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한 통렬한 공박인 셈이다.

전날 치러진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선 박근혜 대통령과 날카롭게 각을 세웠던 유승민 의원이 팽팽하리라 던 예상을 깨고 여유 있게 승리했다. 의원직을 겸하고 있는 국무위원들 까지 전원 투표장에 불러들이며 총력전을 펼쳤던 친박 진영은 국회의장과 당대표에 이어 원내대표 자리마저 내줌으로써 와해의 위기에 직면했다.

새누리당 내에선 이번 선거결과를 ‘유 의원의 승리가 아닌 박 대통령의 패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지지율 20% 대로 주저앉은 ‘박근혜 호’에 같이 있다가는 내년 총선에서 동반 침몰하겠다는 위기감이 아직도 3년 임기를 남겨놓은 대통령에게서 등을 돌리게 만든 배경이다. 국정장악력을 상실한 박 대통령의 국정기조가 변하지 않으면 당정 간의 갈등과 긴장은 높아 질 수밖에 없다. 과연 박 대통령은 선거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 비선인사를 혁신하고 국정 쇄신을 이룰 수 있을까?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집권당내의 선거결과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상식적인 보수’의 출현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진보진영이 집권 하더라도 보수 세력이 건강하지 않으면 국정의 정상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노무현 집권초기 당시 야당 대표이던 박근혜의 사생결단식 장외투쟁으로 4대 개혁입법은 좌초되고 국정은 마비되었었다. 새누리로 대표되는 기득권 집단이 보여준 그간의 정치 행태는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문명사회에서 통용되고 확립된 상식적인 정치질서에 대한 배반이다.

국정원과 군의 선거개입에 대한 집권세력의 비호와 은폐행위, 채동욱 검찰총장에 대한 공작수사와 숙청방식, 간첩조작과 종북몰이, 공안통치와 적대적 공존의 남북관계, 전시작전권의 양도와 국방주권의 포기, 사회양극화를 조장하는 재벌중심의 성장정책과 비정규직의 급증, 극심한 노동탄압과 환경파괴, 세월호 참사에서 보여준 무책임과 반인륜적 행태, 그리고 언론장악과 여론조작에 의존한 통치행태 등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적으로도 용납하기 어려운 야만적 정치질서의 구태일 뿐 아니라 민족사의 발전을 저해하는 극복의 대상일 뿐이다.

박심 보다 무서운 민심?

유승민 원내대표는 이번 선거과정에서 광범위한 민심의 이반과 심각한 국정의 위기 상황을 강조하고 박심 보다 민심에 주목해 줄 것을 호소했다. 2011년 한나라당 당대표 선거에 나가서는 4대강 사업을 비판하고 무상급식 수용, 공기업과 대기업의 청년 의무 고용할당제 도입과 비정규직의 의무적 감축,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징벌적 배상제 도입 등의 정책을 내걸었다고 한다.

2012년 5개 언론사 노조가 관제사장 퇴진과 제작자율성 수호를 내걸고 짧게는 95일, 길게는 180일에 이르는 장기파업을 전개했을 때 유승민 의원은 언론노조 관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언론사 연대파업은 공정보도를 위한 기자 피디들의 염원이 표출된 것”이라고 평가하고 정치권의 영향력이 큰 현행 공영방송사의 사장선임 방식으로는 사태가 되풀이 될 수 밖 에 없다는 인식을 내비친 바 있다. 이번 경선과정에서도 ‘공영방송이 정치적 영향력에 휘둘리면 안 된다’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는 의견을 피력했다고 한다.

선거 때의 공약일 뿐인가? 문제는 실천이다

독선과 불통의 상징이 되어버린 박 대통령도 지난 대선 시기에 100% 대한민국 국민통합, 복지와 분배, 경제민주화 등 화려한 선거공약으로 유권자를 현혹한 바 있다. 박근혜의 대선공약이 완전 사기임이 드러나는 데는 채 6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를 비통하게 지켜본 다수 국민들은 대한민국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구분될 수 있도록 대대적인 국가혁신을 원했다. 그래서 박근혜 조차 비정상의 정상화를 얘기했고 국가 대개조를 입에 담았다. 물론 입에 발린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나타난 ‘유승민 돌풍’이 비정상의 정상화를 추동하는 ‘상식적인 보수 세력’의 태동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박근혜의 독선적인 국가운영에 제동을 걸고 박심 보다 무서운 민심을 중히 여길 줄 아는 보수 세력의 탄생은 한국정치 발전사의 일대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 전제 조건은 스스로 쏟아 놓은 숱한 말들에 대한 실천이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과 해직언론인에 대한 유승민 원내대표의 책임 있는 실천을 언론계는 눈여겨 지켜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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