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뉴스타파 포럼 입니다.
심인보 2015년 11월 25일
2005년 kbs에 입사해 2015년 2월 뉴스타파에 합류했다. 2010년 “조현오 경찰청장의 노무현 차명계좌 언급” 동영상을 발굴했고, 추적 60분 “의문의 천안함, 논란은 끝났나” 편을 공동 제작했다. 2012년 박근혜 캠프의 불법 선거 운동 사무실, 이른바 십알단 사건을 보도했다. “권력과 차별에 맞서는 진실”을 끈질기게 추구하고자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24일) 예정에 없던 국무회의를 긴급 소집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박대통령이 쏟아낸 강경 발언이 하루 종일 SNS를 달궜습니다. "특히 복면 시위는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IS도 지금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얼굴을 감추고서…”라고 한 황당한 발언을 비꼬는 말들이 하루 종일 이어졌습니다. “(속보) 복면 가왕 폐지” “IS도 밥 먹고 똥 싸니까 밥 먹고 똥 싸는 사람들은 다 테러리스트” 뭐 이런 얘기들입니다. 유쾌한 조롱과 풍자죠. 그런데, 이게 그냥 웃고 넘길 일이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초강경 발언까지 해가면서 민중 총궐기 대회를 비판한 것은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여러 가지 노림수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분명히 드러난 것은 바로 ‘테러 방지법’의 국회 통과입니다. 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역시 결코 테러 안전지대가 아니다(...)부디 14년 간 지연돼 온 테러 관련 입법들이 이번에는 통과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그래서 살펴봤습니다. 법안의 내용이 어떻기에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게 간절히 원하는지. 올해 들어 국회에 제출된 테러 방지법안은 2가지 인데요, 하나는 새누리당 이병석 의원, 하나는 역시 새누리당의 이노근 의원이 대표발의했습니다. 보다 최근에 발의된 것은 이노근 의원의 법안이지만 공동 발의자가 10명뿐이고, 이병석 의원의 법안은 그보다 한 달 전에 발의되기는 했지만 공동 발의자가 73명이나 되기 때문에 새누리당의 당론에 더가깝다고 판단됩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이병석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민 보호와 공공 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을 위주로 살펴봤습니다.
법안의 큰 줄기는 크게 4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테러의 개념 정의 2) 테러 대응 조직 신설 3) 테러에 대한 사전/사후적 대응에 관한 조항 4) 테러 피해 비용 지원. 마지막 4)번은 크게 논란이 없는 내용이니 그냥 지나치고, 나머지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테러의 개념은 이 법안 2조에서 정의되고 있는데요. (가)항에서 (마)항 가운데 가장 포괄적인 게 첫 번째, (가)항입니다. 한 번 볼까요?
국가·지방자치단체 또는 외국정부(외국지방자치단체와 조약 또는 그 밖의 국제적인 협약에 따라 설립된 국제기구를 포함한다)의 권한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 할 목적 또는 공중을 협박할 목적으로 사람을 살해하거나 사람의 신체를 상해하여 생명에 대한 위험을 발생하게 하는 행위 또는 사람을 체포·감금·약취·유인하거나 인질로 삼는 행위
복잡하니 가장 넓게 적용될 수 있는 부분만 볼 수 있도록 조문을 좀 줄여보겠습니다.
국가의 권한 행사를 방해할 목적 또는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 할 목적 또는 공중을 협박할 목적으로 사람의 신체를 상해하여 생명에 대한 위험을 발생하게 하는 행위
테러에 관한 통상적인 정의라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 모호해서 악용될 소지가 있습니다. 시민의 정당한 의사 표현인 시위에 대해, 그것도 10만 명이 모인 시위에 대해 ‘법치에 대한 도전’이라고 대통령이 나서서 공격하는 정부에서라면 더욱 더 그렇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테러 단체들이 불법 시위에 섞여 들어와서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즉 박근혜 대통령의 머릿속에서는 시위와 테러가 무척 가깝다는 것이죠. 박근혜 대통령은 분명히 민중총궐기 대회는 “국가의 권한 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공중을 협박할 목적”이 있었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렇다면 시위를 테러로 규정하기 위해 남은 구성 요건은 한 가지입니다. 사람의 신체를 상해하여 생명에 대한 위험을 발생하게 하는 것.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집회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경찰 한 명이 다쳤고, 백남기씨처럼 생명이 위독한 상황까지 간다면? 이 집회는 테러일까요, 아닐까요? 정부에 대한 비판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물리적 충돌, 그리고 그로 인한 예기치 않은 부상을 ‘테러’라고 규정한 뒤 이 법을 적용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게 지나친 우려일까요?
이 법안의 두 번째 줄기는 테러전담 조직을 만드는 겁니다. 만들어지는 조직은 세 가지입니다.
1) 국가 테러대책회의 (위원장은 국무총리)
2) 테러대책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국정원장)
3) 테러 통합대응센터 (국정원 산하)
형식상으로는 국가 테러대책회의가 최고 의사결정 기구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국정원장이 거의 전권을 가지게 되는 구조입니다. 국무총리는 이것 외에도 워낙 많은 위원회의 위원장이기 때문이죠. 국정원장이 맡게 되는 상임위원회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게 됩니다. 테러가 발생했을 때 정부의 대응 방향을 결정하고 어떤 단체를 테러 단체로 지정하거나 해제할 수도 있습니다. ‘테러 방지’라는 명분으로 관계 기관(경찰이나 다른 행정 부처)에게 협조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도 가지게 됩니다. 테러를 저지르거나 심지어 모의한 사람을 제재하는 권한도 가집니다.
테러 통합대응센터는 그 집행 기구가 되는 셈인데, 센터장은 국정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게 됩니다. 실질적인 인사권은 국정원장에게 있는 셈이죠. 이것이 국정원이 그렇게 오랫동안 테러방지법의 통과를 위해 애써왔던 이유입니다. 그런데, 불법적인 댓글 공작을 통해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고 때로는 증거까지 조작해가며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드는 국정원에게 이렇게 막강한 권한을 줘도 괜찮을까요?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입니다. 이 법안 16조는 이렇습니다.
1항. “테러통합대응센터의 장은 테러단체의 구성원 또는 테러 기도 및 지원자로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에 대하여 출입국, 금융거래 및 통신 이용 등 관련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2항. … 테러를 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내,외국인과 테러 단체 구성원에 대해 출입국 규제를 요청할 수 있다.
3항. … 테러에 이용되었거나 이용될 가능성이 있는 외국환 거래에 대해 지급정지를 요청할 수 있다.
표현에 주목해 주십시오.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테러를 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이용될 가능성이 있는”. 어떤 사람이 테러에 연루되었을 수 있다고 의심하고, 판단하고, 가능성이 있다고 결정하는 주체는 누구일까요? 네, 그렇습니다. ‘테러 통합대응센터의 장’입니다. 국정원장이 실질적인 인사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죠. 사실상 국정원이 테러에 연루되었다고 의심하기만 한다면 그 누구든 전방위적인 감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테러와 연관된 그럴듯한 이유만 댈 수 있다면 출입국 기록과 금융거래, 통신 내용까지 샅샅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아무런 법적 권한 없이도 해킹 프로그램을 구매해 민간인들에 대한 무작위적인 사찰을 해온 것으로 의심되는 국정원이 ‘합법’의 외양까지 갖추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정말로 이 권한을 순수하게 테러 방지에만 국한해서 사용할까요?
독소 조항은 또 있습니다. 똑같은 16조의 4항을 볼까요?
4항… 1항과 3항의 경우, 긴급을 요할 때에는 전화 또는 전산망을 통해 약식으로 설명하고 (추후에) 서면으로 통보할 수 있다.
긴급을 요한다는 판단은 누가 하는 걸까요? 역시 국정원입니다. 시민들을 감시하기 위한 최소한의 서면 절차조차 생략하겠다는 겁니다.
뿐만 아닙니다. 23조를 보면 “테러를 선전 선동하는 글 또는 그림” 등이 유포될 경우 긴급 삭제 를 요청할 수도 있게 됩니다. 물론 어떤 글이 테러를 선전 선동하는지 아닌지의 여부는 국정원이 결정하겠죠.
가장 무시무시한 것은 이 법 35조에서 정하고 있는 처벌 조항입니다.
테러 단체의 수괴: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
테러 단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사람 :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
테러 단체의 자금과 연루 : 3년 이상 징역
가입을 지원하거나 권유하면 5년 이하 징역
테러와 관련된 허위 사실을 퍼트리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의 벌금입니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히 강력한 처벌 조항입니다. 그런데 진짜 무서운 것은 마지막 부분, 35조 5항과 6항입니다.
5항 “제1항 및 제2항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6항 “제1항 및 제2항에서 정한 죄를 범할 목적을 예비 또는 음모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1항은 “테러 단체의 수괴가 되는 것”이고 2항은 “테러 단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것”입니다. 즉, 테러 단체를 구성하려는 계획만 가지고도 징역을 살게 된다는 것이죠. 심지어 벌금형 조항도 없습니다. 무조건 징역입니다. 국정원이 누군가의 컴퓨터를 압수 수색하고, 하드디스크에서 테러 단체 구성의 “증거”라고 볼 수 있는 뭔가가 나온다면 그것만으로도 징역형을 살게 된다는 겁니다. 실제로는 국가와 공동체에 위해를 끼치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요. 국정원이 유우성씨 사건에서처럼 증거를 조작한다면..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지난 18일 충청남도에서 “테러 단체를 추종한 혐의”로 인도네시아인 A씨가 경찰에 검거됐습니다. 만약 테러 방지법이 있었더라면 이 인도네시아인은 아마도 테러 단체 가입을 권유한 혐의로 5년 이하의 징역을 살거나 허위 사실을 퍼트린 혐의로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됐을 겁니다. 그런데, A씨가 한 일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요? 북한산에서 테러 단체인 ‘알 누스라’의 깃발을 든 채 동영상을 촬영하고, 경복궁에서 ‘알 누스라’ 모자를 쓴 채 사진을 찍어 지지글과 함께 SNS에 올렸다는 겁니다. 그의 집에서 발견된 증거는 이른바 ‘람보칼’이라고 불리는 보위나이프와 비비탄을 사용하는 M-16 모형 소총이었습니다. 테러 방지법이 통과 되면 이런 일이 내국인에게도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