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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예우를 대하는 변협의 ‘월권’

김용국 프로필 사진 김용국 2015년 03월 30일

법원공무원 겸 법조 칼럼리스트


대법관 퇴임자는 변호사 개업을 통해 사익을 취할 것이 아니라 최고 법관 출신으로서 국민에게 봉사하고 사회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지난 3월 19일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무척 긴 제목의 성명을 발표한다. 제목만 보면 누구나 공감할 만하다. 하지만 특정 변호사의 개업을 막기 위한 성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이례적이다. 게다가 그 후 변협의 행보를 보면, 과연 변협이 법을 다루는 변호사단체가 맞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2014년 대법관직을 마친 차한성 전 대법관은 1년간 대학에 석좌교수로 있다가 올해 2월 변호사 등록을 마치고 3월 변호사개업 신청을 하였다. 그러자 변협은 차 전 대법관에게 공개적으로 개업신고 철회를 권고했다. 변협은 성명을 통해 “최고 법관을 지낸 분은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는 것이 세계적인 경향”이라면서 “변호사 개업을 통해 사익을 취하면서 전관예우의 문제를 야기하기보다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변협의 행동은 권고에서 그치지 않았다. 차 전 대법관이 철회하지 않자 지난 23일 개업신고서를 반려하였다. 문제는 변협의 반려가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전관예우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변협이 개업신고를 막을 수 있을까.


변호사법에는 변호사가 활동할 수 없는 사유를 명시한 조항들이 있다. 변호사의 결격사유(5조)와 등록거부사유(8조)가 그것이다. 5조에 따르면 형사처벌(금고이상의 형)을 받거나 징계처분을 받은 뒤 일정기간은 변호사가 될 수 없다. 8조는 5조의 결격사유에 더해 △심신장애로 변호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한 자 △공무원 재직 중 위법행위로 인하여 형사소추 또는 징계처분을 받거나 그 위법행위와 관련하여 퇴직한 자로서 변호사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현저히 부적당하다고 인정되는 자는 등록을 거부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변호사법과 대한변호사협회 회칙에 따라 변협은 등록거부 사유에 해당하면 등록심사위원회 의결을 거쳐 등록을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차 전 대법관은 어느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개업을 막을 법적 근거가 없다는 말이다. 결국, 변협의 변호사 등록거부는 법에 없는 행위인 셈이다. 혹자는 이야기할 것이다. 전관예우를 없애자는데 그쯤은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과연 그럴까.


사실 전관예우 문제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고질병과도 같다. 이걸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해결책은 법에 있다. 더디지만 국회가 법으로 만들어야 할 일이다. 그 과정에서 전문가와 시민들의 광범위한 의견을 거쳐 ‘전관’들의 변호사 개업을 제한하는 방법을 강구해야한다. 그리고 대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관처럼 최고위직이라고 할 수 있는 법조인의 개업을 제한하는 대신, 일정한 보수를 지급하고 공익활동을 하게 강제하는 방안도 강구해볼 수 있다.


그렇게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면 대법관이나 고위직에 오르는 사람들은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는 문화가 정착될 것이다. 개업지 제한 등 전관예우를 제한하는 법이 지금도 있지만, 아직 미약하다. 그렇다면 이것도 입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변협은 언론을 통해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도장값’만 3천만 원이 넘는 현실을 지적했다. 검찰과 법원 고위직들이 퇴임하면서 과도한 수임료를 받는 일을 두둔할 뜻은 전혀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다소 뜬금없는 성명을 발표하고 특정인의 변호사 개업을 막는 방식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변협의 방식은 특정인 망신주기나 봉사 강요로 비쳐 되레 반발만 살 뿐이다. 아무도 변협에 그런 권한을 준 적이 없다. 변협의 주장처럼 개업을 막아서 전관예우를 철폐해야 한다면 모든 대법관이 개업 신고할 때마다 변협은 ‘월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변협은 전관예우가 대법관 직에 국한되지 않는 부분도 간과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 고등법원장, 지방법원장, 검찰총장, 고검장, 지검장 등 차관급 이상의 고위직들이 받는 수임료도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현직에 미치는 영향력도 대단하다. 변협은 그때마다 변호사 개업을 막을 것인가. 아니면 이들은 대법관이 아니므로 상관하지 않을 것인가.


변협은 한술 더 떠 앞으로 대법관후보자들에게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겠다고 했다. 이것 역시 월권이 아닐 수 없다. 제도적인 뒷받침이 없이는 깜짝쇼에 불과하다. 차제에 대법관의 개업문제에 대해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국회가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법을 만들어라. 그러면 된다. 변협의 방식은 전관예우를 해결하는 방식이 될 수 없다.


변협은 평소에는 변호사를 “공공성을 지닌 법률전문직”으로 정의한다. 또 변호사가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법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그런데 유독 대법관 출신들의 변호사 개업만을 사익추구로 몰아가고 있다. 이중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개업 변호사들이 공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변협의 몫이다.


의도가 선하다고 해서 법적인 절차가 무시되어도 좋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범죄자의 인권을 제한하는 것도 법률과 적법절차에 따라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전관예우 방지를 위해 변호사 개업을 자제하라고 권고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 등록을 가로막은 법률전문가 단체 변협의 처신은 정당화하기 어렵다. 변협의 전직 대법관 변호사등록 거부사건은 여론에 기대어 법을 무시한 일회성 이벤트에 그칠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