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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 군대 아니면 감옥인가

김용국 프로필 사진 김용국 2015년 05월 27일

법원공무원 겸 법조 칼럼리스트

군대냐, 감옥이냐.


대한민국의 신체 건장한 20대 남성에게 ‘신성한’ 국방의 의무 앞에서 열외란 없다. 한국 사회에서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적 확신으로 총을 들기를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택할 수 있는 길이란, 감옥밖에 없다. 군대냐, 감옥이냐. 과연 이것이 정답일까.


자신의 신념(또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또는 집총거부)는 병역기피, 병역비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런데도 한국의 병역법에서는 “입영통지서를 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았다”며 똑같이 취급하고 있다.


이 문제는 10년 전만 해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했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국회와 국방부에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했다. 이어 2007년 7월 국방부와 병무청은 병역제도 개선추진안을 발표하면서 사회복지, 환경, 보건의료 분야의 사회복무제도를 신설하기로 했고, 9월에는 종교적 이유 등에 의한 병역거부자를 사회복무제도의 적용대상으로 인정할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 국방부는 국민적 합의나 공감대 부족을 이유로 들어 대체복무 재검토를 발표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 뒤 아무런 진척이 없다.


이 때문에 국가안보가 우선이냐 양심의 자유가 우선이냐를 두고 여전히 해묵은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 사이 감옥행을 택할 수밖에 없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늘어가고 있다. 2000년 이후에만 1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광주지법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 조화” 강조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와중에 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려 주목된다. 광주지법 (형사 5단독 최창석 부장판사)은 지난 5월 12일 종교적 신념 때문에 입영하지 않은 A 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A 씨는 자신의 진정한 양심상의 결정에 따라 병역거부에 이른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 사건 병역거부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종교적 신념과 양심을 이유로 한 입영거부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해 온 것과 입장을 달리 한 것이다.


판결의 결론도 그렇지만 양심의 자유(헌법 19조)와 국방의 의무(헌법 39조)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정하기보다는 조화로운 해석을 강조한 판결이어서 눈길을 끈다.


최 판사는 “사람이 자신의 가치관, 종교관 등에 따라 전쟁이나 인간 살상에 반대하는 진지한 양심을 이루고, 그러한 양심에 따라 인간 살상을 위한 집총이나 훈련을 이행할 수 없다는 양심상의 결정을 하였다면, 이는 헌법상 양심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전제한 뒤 “헌법과 병역법은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사람을 징역형에 처하는 형사 처벌을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강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 판사는 “헌법상 기본권과 헌법상 국민의 의무 등 헌법적 가치가 상호충돌하고 대립하는 경우에는 어느 하나의 가치만을 선택하여 나머지 가치를 희생시켜서는 안 되고, 충돌하는 가치를 모두 최대한 실현하게 할 수 있는 규범조화적 해석원칙을 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국가안보나 사회체제의 유지를 전제로 양심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헌법에 부합한다고 했다.



교도소 대신 대체복무 제시


최 판사는 그 방법으로 대체복무제를 제시했다. 그는 △양심적 병역거부로 징역형을 선고받는 인원이 연간 약 600명(전체 입영 인원의 0.2%)에 불과하고 △이미 방위산업체나 공익근무 등 대체복무형태의 군 복무가 매년 징병검사 인원 중 약 13%에 달하며 △대만 등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많은 국가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고 △유엔의 인권위원회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한 점을 거론했다.


최 판사는 “군 복무와의 부담 형평성을 고려하여 기간, 근무여건 등 대체복무의 형태를 설계·운영한다면 어렵지 않게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고, 악의적 병역기피자도 가려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판결을 통해 국방부나 국회가 할 일을 사법부, 그것도 하급심 법원이 치고 나온 셈이다.


국방부나 국회가 아주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한 게 없다. 2007년 국방부도 대체복무제도 연구위원회를 설치하여 사회복무제도를 신설하는 방안을 발표까지 한 바 있다. 하지만 국방부는 정권이 바뀐 뒤 국민 여론을 들먹이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장을 선회했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최근인 2013년 전해철 의원 등 12명의 의원은 병역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주요 골자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일정한 심사를 거쳐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여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를 조화시키겠다는 것이다. 대체복무요원의 심사 요건을 엄격하게 하고, 복무 기간도 군 복무보다 기간이 긴 3년으로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 법도 여전히 잠자고 있다. 표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일까.


많은 사람이 선진국으로 추켜세우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이스라엘 등은 헌법이나 법률에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유엔인권위원회는 2006년, 2010년, 2011년 3차례에 걸쳐 “한국 정부가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8조 제1항(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을 위반했다”며 보상과 구제조치를 권고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 무죄 판결을 받은 A 씨는 어려서부터 여호와의 증인으로 살아왔고, 종교생활을 통해 무기를 들 수 없다는 결정을 했다. 그는 형사 처벌을 받은 전력도 없다. 하지만 종교생활을 함께하는 동료나 선배들이 감옥에 간 것을 보고도 병역거부를 결심했다.


1심은 무죄를 선고했지만, 이 판결은 상급심에서 뒤집힐 가능성이 매우 크다. 병역 의무를 위해 양심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입장이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병역의무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국가의 안전보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국민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도 보장될 수 없음은 불을 보듯 명확한 일이다. 따라서 병역의무는, 궁극적으로는 국민 전체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 할 것이고, 피고인의 양심의 자유가 위와 같은 헌법적 법익보다 우월한 가치라고는 할 수 없다. 그 결과, 위와 같은 헌법적 법익을 위하여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피고인의 양심의 자유를 제한한다 하더라도 이는 헌법상 허용된 정당한 제한이라 할 것이다.” (대법원 2004. 7. 15. 선고 2004도2965 전원합의체 판결)



1년에 600명, 굳이 감옥에 보내야 할까


대법원뿐 아니라 헌법재판소와 국회, 국방부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사회에서 공존할 길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전쟁연습을 하거나 총을 드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소수자들은 소신을 버리지 않으려면 결국 전과자가 될 수밖에 없다.


방위산업체나 공익근무, 공중보건의 등으로 군 복무를 대신하는 인원이 약 5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에 반해 양심적 병역거부로 감옥행을 감수하겠다는 이들은 연간 수백 명 정도이다. 전체 입영 인원의 0.2%, 1년에 고작 600명 정도에 불과한 이들을 굳이 감옥에 보내야 할까. 더 늦기 전에 국방부와 국회가 답해야 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