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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주의' 화살은 왜 항상 시민을 향하는가

김용국 프로필 사진 김용국 2015년 12월 15일

법원공무원 겸 법조 칼럼리스트


불법 폭력 시위는 대한민국의 법치를 부정하고 정부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1월 14일 서울 도심 시위(1차 민중총궐기)가 끝나고 열흘 뒤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현 정부 들어 유독 법치 혹은 법치주의가 강조된다.


대통령이나 정부 당국자의 발언에서 법치(주의)가 언급되는 방식은 시민들이 법을 잘 지켜야 한다거나 불법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는 훈계에 가깝다. 과연 시민들만 준법의식을 가지면 모든 게 해결될까.


정부는 법치를 준법정신과 동의어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그보다는 국가에 요구하는 측면이 더 큰 게 법치의 개념이다. 법치(法治)는 인치(人治)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즉 권력자나 소수 개인에 의한 ‘사람의 지배’, ‘자의적 지배’와 대비되는 ‘법에 의한 지배’를 뜻한다. 즉 국가권력이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일방적으로 제한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개념이다. 다시 말해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려면 누구나 알 수 있도록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만든 법률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국회가 제정한 법률조차도 시민의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이건 학자나 시민단체의 주장이 아니다. 20여 년 전 헌법재판소가 이미 판단한 사항이다.




우리 헌법은 국가권력의 남용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려는 법치국가의 실현을 기본이념으로 하고 있고 그 법치국가의 개념에는 헌법이나 법률에 의하여 명시된 죄형법정주의와 소급효의 금지 및 이에 유래하는 유추해석금지의 원칙 등이 적용되는 일반적인 형식적 법치국가의 이념뿐만 아니라 법정형벌은 행위의 무거움과 행위자의 부책에 상응하는 정당한 비례성이 지켜져야 하며, 적법절차를 무시한 가혹한 형벌을 배제하여야 한다는 저의금지 및 과잉금지의 원칙이 도출되는 실질적 법치국가의 실현이라는 이념도 포함되는 것이다. 이는 국회의 입법재량 내지 입법정책적 고려에 있어서도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제한은 필요한 최소한에 그쳐야 하며,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입법은 할 수 없는 것을 뜻한다.
- 헌재 1992. 4. 28. 선고 90헌바24 결정



이런 개념을 이해한다면 “시민들이 법을 잘 지켜야 법치주의가 확립된다”는 말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셈이다.


방향을 잘못 잡은 법치주의의 압권은 지난 11월 27일 김현웅 법무부장관의 담화문이다. 당시 민주노총이 2차 민중총궐기를 예고한 가운데 김 장관은 “불법과 폭력으로 얼룩진 우리 시위 현장을 보면 법치국가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한다.


여기까지는 장관으로서 할 말이었다고 치자. 하지만 이어지는 담화문 내용은 도를 넘어섰다. 그는 민주노총 위원장을 향해 “명백히 죄를 짓고도 일체의 법 집행을 거부한 채 종교시설로 숨어 들어가 국민을 선동하고 불법을 도모하는 것이야말로 법치 파괴의 전형”이라고 지적한다.


헌법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이란 게 있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기 전까지 피의자(또는 피고인)는 무죄로 추정된다. 법치주의는 헌법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런데 법무부장관은 법원에서 재판도 받지 않은 이에게 ‘명백히 죄를 짓고’ 있다고 단언한다. 정부에 껄끄러운 피의자에겐 공개적으로 비난을 퍼부어도 되는 게 법치일까.


좀 더 살펴보면 더 위험한 발언도 나온다. 김 장관은 “집회 현장에서 복면 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폭력을 행사한 자에 대해서는 법안이 통과되기 전이라도 양형기준을 대폭 상향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익명’을 기댄 폭력시위꾼들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실형이 선고되도록 모든 역량을 투입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법무부장관이나 검찰은 법을 넘어설 수 없다. 법은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게다가 집회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비판을 받는 소위 ‘복면금지법’의 제정과 무관하게 양형을 상형한다는 건 월권이다. 양형은 재판하는 법원에서 판사가 정하는 고유의 권한이다. 행정부 소속인 법무부장관의 소관과는 전혀 무관하다. 법무부장관의 담화문은 법치주의나 권력분립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위험한 발언일 뿐이다.


최근 경찰이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해 소요죄 적용을 검토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인 것도 법치주의와는 거리가 있다.


형법 제115조(소요)
다중이 집합하여 폭행, 협박 또는 손괴의 행위를 한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소요죄는 8.15와 6.25를 겪은 정부가 사회혼란을 수습하고자 1953년 일본형법가안을 본떠서 만든 조항이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사회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2015년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고, 최근에는 소요죄로 기소된 사례조차 없다.


더구나 요즘은 집시법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집시법 5조는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1항)를 금지하고 이런 집회 또는 시위를 하도록 선전, 선동하는 것(2항)도 처벌하고 있다.


그런데 왜 경찰은 소요죄 카드를 꺼낸 걸까. 2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소요죄의 법정형(최고 징역 10년)이 집시법(5조 1항 최고 징역 2년, 2항 최고 징역 1년)보다 훨씬 높다. 기껏해야 징역 1~2년에 불과한 집시법보다 소요죄가 위력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직접 폭력행위에 가담하거나 선동해야 처벌이 되는 집시법과 달리, 소요죄는 다중의 구성원에 속하기만 하면 직접 폭행, 협박, 손괴행위를 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구성원의 행위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된다. 경찰로서는 이래저래 손해 볼 게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집회에서 폭행이 등장했다고 해서 소요죄를 적용한다는 건 무리다. 법원의 판례도 소요죄의 폭행, 협박, 손괴는 “한 지방에 있어서의 공공의 평화, 평온, 안전을 해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집회의 불법 여부를 떠나 민중총궐기가 과연 서울의 평화와 안전을 해할 정도의 것이었을까. 경찰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불법폭력시위로 인한 국민 불편이 크기 때문에 소요죄에 대한 법리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국민불편은 정당한 처벌근거가 되지 못한다. 법 제정 당시 혼란기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일본법을 따라 급조한 소요죄를 오늘날 적용하는 건 자의적인 법 적용이 될 가능성이 크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지 못한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최근 집회 현장 차벽설치, 정권 비판 전단지 제작자 구속기소는 무엇을 말하는가.


현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법치주의를 강조해왔다. 하지만 화살은 늘 시민들을 향해 있다. 정작 법을 잘 지켜야 하는 쪽은 권력이다. 국가의 통치나 공권력 행사를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여 엄격하게 행하고, 법의 집행도 시민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고 목적과 내용이 정의에 합치되도록 끊임없이 돌아봐야 한다. 그것이 법치주의에 부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