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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장의 장외투쟁

김용국 프로필 사진 김용국 2016년 01월 18일

법원공무원 겸 법조 칼럼리스트

재판은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 법원은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패자가 반발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법원의 운명이라면 운명이다.


특히 인신구속이 달려 있는 형사사건을 보자. 판사는 검사와 피고인 사이에서 유죄와 무죄를 놓고 판단한다. 유죄가 나오면 피고인이 반발하고, 무죄가 나오면 검찰의 불만은 커진다. 판결에 대한 비판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최근 검찰의 판결에 대한 반발은 아무리 선의로 받아들이려고 해도, 도를 넘어섰다고 볼 수밖에 없다. 11일 검찰의 2인자로 불리는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기자회견을 자청, 법원을 성토했다. 배임죄로 구속기소된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에 대해 법원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선고한 직후다. 강 전 사장은 자원개발업체 인수과정에서 수천억 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특가법상 배임죄)로 기소됐으나 법원은 8일 “검찰 증거만으로는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유죄가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 지검장의 주장 요지는 “재판 과정에서 천문학적 손실이 발생한 사실이 인정되었는데, (법원이) 무리한 기소이고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하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1심 판결의 문제점에 대해 기자들 앞에서 조목조목 꼬집었다.


그동안 검찰의 판결 비판은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적지 않았다. 특히 시국사건에서 무죄 판결이 나오는 경우 법원을 성토하는 일이 잦았다. 또한, 검찰이 중요사건으로 취급하는 사건 피고인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는 경우에도 검찰은 언론을 통해 불만을 표출해왔다.


하지만 판결에 대한 당부를 떠나서, 실무자도 아닌 서울중앙지검장이 특정사건에 대해 의견을 밝힌 것은 사법부의 권한에 대한 도전으로 비친다. 이건 단순한 판결 비판이 아니라 여론을 동원한 압박이 될 수 있다.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되는 피고인을 법정에 세우는 일(기소)은 검찰의 권한이다. 재판에서 검찰의 권한은 거기까지다. 법정에 오면 검사도 재판을 받는 입장이 된다. 기소권은 검찰이, 재판권은 법원이 맡은 것은 서로 권한을 나누고 견제하여 제대로 된 재판을 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재판은 항상 검찰이 원하는 대로 결과가 나올 수는 없다.


그런데도 검찰은 무죄 판결이 난 이후에 판결에 불만을 품고 장외에서 시위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국가기관인 검찰이 법정 밖에서, 그것도 법적 절차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법원을 비난하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검찰이 강조하는 법치주의와도 배치되는 모습이다.


역으로 가정해보자. 만일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이 사건에 대해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했다”고 비판했다면 검찰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운동선수가 시합이 끝나고 패인을 냉철하게 분석하듯 검찰도 왜 무죄가 나왔는지 스스로 돌아볼 때가 되었다. 법원은 판결에서 “문제 삼고 있는 피고인의 임무 위배 행위들은 기초가 되는 중요한 사실이 인정되지 않거나, 석유공사 조직이 아닌 피고인 개인에게 책임을 묻기 적절하지 않거나, 책임과 직접 관련시키기 어려운 내용들로 판단된다”면서 유죄입증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검찰은 1백 쪽이 넘는 판결문을 다시 분석하고, 유죄 입증에 공을 들여서 항소심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으면 될 일이다.


재판의 승자는 “정의의 승리”라며 사법부를 추켜세우고, 패자는 “썩은 판결”이라며 사법부를 매도한다. 어느새 우리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풍토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최근 검찰의 모습은 법원을 매도하는 차원을 넘어서 재판권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서울중앙지검장의 기자회견은 법정이라는 링을 벗어난 장외투쟁과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