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방해’ 앞에 무너진 ‘집회의 자유’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제1항, 제2항

법 중의 법, 국민의 기본권을 담은 최고 규범인 헌법. 21조에는 ‘집회의 자유’가 이렇게 나와 있다. 헌법재판소도 민주사회에서 ‘집회의 자유’ 보장이 언론의 자유와 함께 필수적인 구성요소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다소 길지만 결정례를 인용해본다.

집회의 자유는 국민들이 타인과 접촉하고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며 공동의 목적을 위하여 집단적으로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개성신장과 아울러 여론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하여 동화적 통합을 촉진하는 기능을 가지며, 나아가 정치·사회현상에 대한 불만과 비판을 공개적으로 표출케 함으로써 정치적 불만세력을 사회적으로 통합하여 정치적 안정에 기여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선거와 선거 사이의 기간에 유권자와 그 대표 사이의 의사를 연결하고, 대의기능이 약화된 경우에 그에 갈음하는 직접민주주의의 수단으로서 기능하며, 현대사회에서 의사표현의 통로가 봉쇄되거나 제한된 소수집단에게 의사표현의 수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언론·출판의 자유와 더불어 대의제 자유민주국가에서는 필수적 구성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헌법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한 것은 관용과 다양한 견해가 공존하는 다원적인 ‘열린사회’에 대한 헌법적 결단인 것이다.
– 헌재 2009. 9. 24. 2008헌가25

한마디로,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다양한 견해가 공존하는 수단으로 집회의 자유가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실제 집회 현장에서 이런 헌법정신이 구현되고 있을까.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망설여진다. 헌법이 집회에 대한 허가제를 금지하고 있지만, 집회참가자는 경찰에 사전신고를 해야 한다. 경찰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금지통고를 하면 집회를 열 수 없다. 심지어 집시법에 따르면 경찰은 교통불편을 줄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집회를 금지를 할 수 있다. 최근 대규모 집회가 불허된 사례가 있기 때문에 사실상 허가제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최근 집회의 자유와 관련, 대법원 판결을 보면 더더욱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사건은 이렇다. A씨와 B씨는 지난 2012년 6월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쌍용차대책위가 주최한 걷기 대회에 참석했다. A씨 등은 다른 참가자 5백여 명과 함께 서울 충정로 부근 고가차도 옆 도로에서 차로로 행진을 했다. 이 구간은 철길과 차도가 교차하는 곳이었는데 경찰은 “인도로 올라가라”고 요구했고, 임씨 등은 행진한 지 약 5분 만에 모두 인도로 올라갔다. 경찰과 참가자들 사이에 특별한 충돌도 없었다.

행진은 별 문제없이 끝났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검찰은 5분간의 행진을 ‘차로 불법 점거’로 보고 교통을 방해한 혐의(일반교통방해죄)로 A씨와 B씨 등 일부를 기소했다.

A씨는 1심(2014년)과 2심(2015년)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다. 1, 2심 법원은 ▲ 행진 구간이 철길과 인도가 교차하여 별도 인도가 없는 곳 부근이고 ▲ 경찰의 요구로 모두 인도로 올라갔으며 점거시간도 5분에 불과하며 ▲ 당시 차량 소통이 원활하였던 점 등을 무죄 근거로 들었다.

B씨도 같은 사안으로 다른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았다. B씨 역시 2015년 2심(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 판결이 났다. 법원은 “일시적으로 차도를 점거하였으나 경찰의 제지를 받고 별다른 저항 없이 바로 인도로 올라간 사실” 등을 들어 “차량의 통행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한 것으로 단정하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판결을 뒤집었다. A씨와 B씨의 무죄 판결이 모두 잘못됐다고 봤다. 대법원은 A씨에 대해선 작년 11월, B씨에 대해선 지난 10일 무죄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2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의 판단근거는 무엇일까.

대법원은 “일반교통방해죄는 추상적 위험범”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쉽게 말해 교통방해 결과가 현실적으로 발생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교통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가 되면 바로 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집회참가자들의 도로점거로 인해 비록 단시간이나마 일반 차량의 교통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가 발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또한 고가차도 옆 도로에 차도와 구분된 인도가 설치된 부분도 있는 점, 집회참가자들이 모든 차로를 점거한 채 행진한 점 등을 유죄의 근거로 삼았다. A씨는 지난 10일 파기환송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고, B씨 역시 같은 결론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A씨와 B씨가 집회 도중 5분간 차로로 행진한 대가는 가혹했다. 그들은 2012년 사건 때문에 4년간 재판을 받았다. 두 사람은 동일하게 하급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대법원에서 유죄로 뒤집어졌다. 게다가 두 사람에게 적용된 죄명은 집시법이 아닌 일반교통방해죄다.

집회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행진에 참석한 시민이 행진 도중 단 몇 분간 차량통행을 방해하거나 혹은 방해할 우려가 있는 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교통사범으로 기소되고 처벌되는 현실은 헌법상 기본권 보장 취지를 무색케한다.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가 교통불편과 대등한 가치로 취급되고, 단지 교통을 방해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집회가 금지되고 더 나아가 형사처벌될 수 있다면 헌법이란 장식물에 불과하다.

실제 집회나 시위에 참가해보면 예상과는 다른 돌발변수가 많이 생긴다. 예컨대 5천 명으로 신고한 집회에 1만 명이 참석한 경우 더 많은 차로를 이용해야 행진이 가능할 수도 있다. 예상보다 집회나 행진 등에 소요되는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고 진행방식이 변경될 수도 있다. 경찰의 폴리스라인 설치를 놓고 공간을 확보하려는 집회주최 측과 경찰 사이에 마찰이 생기는 일도 잦다. 이때마다 실정법의 잣대로 사소한 위반행위까지 법정에 세운다면 집회의 자유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대법원도 이런 사정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대법원 판례 중에는 “집회 또는 시위가 신고된 범위 내에서 행해졌거나 신고된 내용과 다소 다르게 행해졌어도 신고된 범위를 현저히 일탈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로 인하여 도로의 교통이 방해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반교통방해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이 있다(대법원 2008. 11. 13. 선고 2006도755 판결).

또한 “집회․시위의 자유가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라는 점, 집회 등의 주최자로서는 사전에 그 진행방법의 세부적인 사항까지 모두 예상하여 빠짐없이 신고하기 어려운 면이 있을 뿐 아니라 그 진행과정에서 방법의 변경이 불가피한 경우 등도 있을 수 있는 점 등을 염두에 두고, 신고내용과 실제 상황을 구체적․개별적으로 비교하여 살펴본 다음 이를 전체적․종합적으로 평가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는 판례도 있다(대법원 2008. 10. 23. 선고 2008도3974 판결 참조).

헌법재판소도 대법원도 집회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추켜세우지만, 현실은 녹록지않다. A씨와 B씨의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실제로 집회의 자유가 쟁점이 되는 사건에서 대법원의 입장은 보수적이기만 한다.

헌법전에 거창하게 나오는 집회의 자유는 교통불편이나 교통방해 앞에 맥없이 무너지고 만다. 대법관들이 직접 집회에 참가할 일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집회의 자유를 책으로만 배워서일까. 대법원 판결에서 집회의 자유 쪽에 손을 들어주는 보기란 어렵기만 하다.

  • disqus_wang

    거 대법원 판사가 판례를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유죄 하는 것은 왜 그런거져?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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