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 법원 ‘안’과 법원 ‘밖’

얼마전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판결이 언론에 소개됐다. 영화 <자가당착 : 시대정신과 현실참여>(이하 <자가당착>)에 내려진 제한상영가등급판정 취소판결이 바로 그것이다.

<자가당착>은 몸이 불편한 포돌이(경찰 마스코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명박 정부 당시 촛불집회, 용산참사, 4대강 사업 등을 풍자하고, 현실과 정치를 비꼬는 영화다. 하지만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가 2011년과 2012년 2차례 제한상영가등급판정을 내림으로써 관객과 만날 기회가 막혔다. 제한상영가등급은 사실상 상영불가를 뜻한다. 현재 국내에 제한상영관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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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위가 내세운 표면적 이유는 지나친 폭력성, 선정성이다. “영화에 잔혹한 장면이 다수 등장하고 표현 수위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현저하게 훼손하고, 국민 정서를 손상할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작자인 김선 감독은 ‘박근혜(당시 한나라당대표) 마네킹’에서 피가 솟는 장면에 심기가 언짢을 분들을 배려한 영등위의 ‘정치적 판단’이라고 비판했다. 김 감독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등급판정에 반기를 들겠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결과는 1, 2, 3심 모두 김 감독의 완승, 영등위의 완패였다.

법원은 “영화는 종합예술로서 그 가치와 내용은 ‘상영과 관람’이라는 방법에 의하여 공표되고 전달되므로, 상영과 관람의 자유는 영화의 자유의 본질적 요소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영화의 등급분류제도 때문에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지 않도록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도 설명했다. 이 영화가 명작이어서가 아니다. 상영을 금지할 정도가 아니라면 영화가 관객과 만날 기회를 섣불리 차단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1심 판결문의 표현대로 “관객들이 이 영화를 관람하게 하고 자유로운 비판에 맡겨두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법원의 판결을 보면서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당신의 그 의견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볼테르의 경구가 떠올랐다.

법원은 그동안 판결을 통해 표현의 자유가 헌법상 권리이므로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뜻을 종종 표출해왔다. 비근한 예로 미네르바 무죄 판결, 피디수첩 무죄판결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법원이 과연 내부에선 자유를 보장하고 있을까.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얼마 전에 발생했다. 대법원은 7일 현직 부장판사를 법관징계위원회에 세웠다. 이례적인 일이다.

그 판사는 김동진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부장판사다. 그는 9월 12일 법원 내부통신망(코트넷)에 ‘법치주의는 죽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른바 ‘국정원 댓글사건’의 피고인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일부 무죄(선거법위반 혐의)가 내려지자 해당 판결을 강도높게 비판한 내용이었다. 김 판사는 “국정원이 2012년 당시 대통령선거에 대해 불법적인 개입행위를 했던 점들은 객관적으로 낱낱이 드러났고, 삼척동자도 다 아는 자명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명백한 범죄사실에 대해 담당 재판부만 ‘선거개입이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면서 “이것이 지록위마가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글을 뒤늦게 접한 대다수 시민들은 김 판사의 ‘용기’에 찬사를 보냈지만, 대법원은 법관윤리강령 위반을 이유로 그를 징계위에 회부했다. 대법원은 판사들에게 “국민과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국민의 눈초리를 외면하는 듯하다.

또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은 이 글이 코트넷에 올라온 지 불과 3시간 만에 대법원이 글을 무단 삭제했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명예를 훼손하거나 정치적 중립성이 침해되는 글은 운영지침에 따라 삭제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판사가 내부전산망에 자신의 의견을 표명한 글을 임의로 삭제하고 징계위원회에 회부한다는 걸 수긍하는 시민들은 많지 않다. 글의 당부를 떠나 전체적인 취지로 볼 때 사적인 감정이 담긴 글이 아니고, 판결을 비평하는 성격의 공익적인 글이었는데 다소 격정적인 표현이 있다는 이유로 무단삭제한 행위는 섣불렀다. 그것도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던 법원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법관윤리강령에 따르면 “법관은 교육이나 학술 또는 정확한 보도를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구체적 사건에 관하여 공개적으로 논평하거나 의견을 표명하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판결에 대한 비판이 학술적인 논문의 형태로 표현이 정제되었다면 허용되고, 즉각적이고 직설적인 논평이라면 징계사유에 해당한다는 말이 된다. 이 조항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2011년 말 국회에서 한미 FTA가 강행처리되자 판사 몇 명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상에서 정치권을 비판하는 의견을 올렸다. 그 이후 판사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대법원의 대응은 간단했다.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대다수 판사들은 침묵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 이후 SNS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3명의 판사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법원을 나갔다. 법원 안의 ‘표현의 자유’ 지수는 그리 높지 않다는 반증이다.

법원은 <자가당착> 사건에서 “관객들이 이 영화를 관람하게 하고, 자유로운 비판에 맡겨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을, 김 판사를 징계위원회에 세운 대법원에 들려줄 필요가 있겠다. 시민들이 김 판사의 글을 보게 하고, 자유롭게 비판하게 하라.

판사 한 두 명의 비판으로 판결이나 법원의 권위는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고 법원 밖의 표현의 자유만큼 법원 안의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다. 언제까지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는 말로 판사들을 묶어둘 수는 없지 않은가.

  • Big pan

    국민들과 함께 있지만 항상 비켜서있는 법률이야기 계속 들려주에요…항상 응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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