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핵심이 밥값? ‘금품수수금지’ 취지를 생각하자

내연관계로 지내던 남자 변호사 A와 여자 검사 B가 있었다. A는 B를 위해 아파트 보증금을 대신 내주고 B에게 다이아반지·시계·골프채 등을 선물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A는 자신이 맡은 형사사건이 잘 처리되도록 B에게 도움을 청한다. B는 A에게 사건 진행 상황을 알려주었고, 담당 검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해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그 무렵 A는 B에게 외제 승용차와 신용카드를 사용하도록 호의를 베풀었고, B는 A에게 명품백 값을 달라고까지 요구한다.

2011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벤츠여검사 사건의 내막이다. 검찰은 알선수재 혐의로 B 검사를 기소한다. 검찰은 엄벌을 요구했고 이에 화답하듯 1심은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 결과는 무죄였다. 재판부가 ‘청탁은 있었지만 대가는 없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외제승용차와 신용카드를 제공한 행위는 사랑의 정표일 뿐 사건 청탁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청탁과 대가가 동시에 입증돼야 처벌이 가능하다는 법과 판례 때문에 B 검사는 면죄부를 받을 수 있었다.

여론은 들끓었다. 언론은 하루빨리 법을 고쳐서 법과 현실의 괴리를 줄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권익위는 2012년 8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 원안을 발표했고, 국회는 2015년 3월 우여곡절 끝에 이 법을 통과시켰다. 그 이틀 뒤 대법원은 B검사의 무죄를 확정한다. 김영란법 탄생의 일등공신은 역설적이게도 법을 피해갔다. 다만 앞으로는 이런 요행은 불가능하다는 사실만은 확실해졌다.

그런데 국회를 통과한 지 1년 반이 지나고 시행을 목전에 두고서도 김영란법은 언론과 정치권에서 계속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법의 적용대상자에 언론인 등이 포함된 것과 배우자에게 금품수수 신고의무를 둔 조항 등을 두고 일부에서 위헌성을 제기했으나 지난 28일 헌법재판소는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이 법이 추구하는 공익이 사익보다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회도 통과했고 위헌 시비도 끝났다. 하지만 아직도 언론에선 불만이 많다. 불만은 크게 2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법 적용대상자인 ‘공직자 등’에 언론인을 포함시킨 부분과 이른바 ‘3·5·10 조항’(음식물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 상한선 조항) 때문이다. 일부 정치인들도 여기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급기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5일 ‘3·5·10 조항’을 유예하거나 상한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 국회와 언론의 논의는 한심한 수준이다.

벤츠여검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강력한 법을 만들어 부정한 청탁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하던 언론사들은 정작 법 시행일이 다가오자 검찰의 표적수사와 법 오남용 우려를 제기한다. 게다가 언론의 자유가 침해된다거나 처벌기준이 모호하다는 주장을 펴면서 여전히 위헌성을 거론한다. 하지만 이미 헌법재판소는 “교육계와 언론계에 부정청탁이나 금품 등 수수 관행이 오랫동안 만연해 왔고 크게 개선되고 있지 않다는 각종 여론조사결과와 국민 인식 등에 비추어 볼 때, 교육계와 언론계의 자정노력에만 맡길 수 없다는 입법자의 결단”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가권력이 청탁금지법을 남용할 것을 두려워하여 사학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가 위축될 우려도 있으나, (사익이) 부정청탁금지조항이 추구하는 공익보다 크다고 볼 수는 없다”고 정리했다.

다음으로 일부 언론에선 ‘3·5·10 조항’이 김영란법의 핵심쟁점인 것처럼 거론하면서 이 조항이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는 법 전체에서 아주 지엽적인 문제일 뿐이다.

법조문을 보자. 김영란법의 핵심골자는 ‘부정청탁의 금지’와 ‘금품등의 수수금지’다. 즉 금전이 오가지 않더라도 부정청탁 자체에 제재를 가하겠다는 것이고, 대가성 없는 금품·향응도 일정 금액 이상이면 처벌하겠다는 취지다. 이중 금품수수금지(법 8조)를 자세히 살펴보자. 공직자나 기자 등은 직무 관련성·명목에 무관하게 동일인에게 1회 100만 원, 1년 기준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거나 요구할 수 없다. 또한 직무와 관련, 대가성 여부를 불문하고는 그 이하의 금액을 받거나 요구해서는 안된다.

금품수수 금지조항을 거칠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① 공직자와 기자 등은 직무와 관련 있으면 대가성이 없더라도 금품·향응·접대 자체를 받아서는 안된다. ② 직무와 관련 없더라도 어떤 명목이든지 동일인에게 1회 1백만 원, 연간 3백만 원을 넘는 금품을 받으면 형사처벌 대상이다.

다만, ①이나 ②에 해당하더라도 예외적으로 ▲외부 강의료 ▲직장 상급자의 위로·포상금 ▲원활한 직무수행 또는 사교·의례 또는 부조목적의 음식물·경조사비·선물 등은 허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중 음식물·경조사비·선물은 대통령령으로 3·5·10만원의 상한선을 두고 있다. 원칙적으로 금품이나 접대를 받아서는 안되지만, 사회상규상 불가피한 상황에서 용인할 수 있는 한도라고 볼 수 있다.

이 조항을 “3만 원짜리 밥, 10만 원짜리 선물까지는 받아먹어도 된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법의 기본 취지는 금품수수금지다. 1만 원이건 2만 원이건 공무원이나 기자가 각자 자기 돈으로 밥을 먹으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연일 축산 · 화훼업 타격, 골프회원권 폭락 등의 기사를 내세워 조항을 무력화시키거나 상한선을 올리려고 부추기는 언론의 태도는 기존의 접대관행 자체를 접으려는 뜻이 있는지 의심케한다. 아예 접대문화를 청산하려고 작정한다면 5만 원이냐 10만 원이냐 하는 논쟁은 무의미하다.

정작 언론이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문제는 김영란법으로도 잡을 수 없는 부정한 청탁, 은밀한 거래는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것이다.

이런 예를 들어보자. 어느 검사가 대기업 C사의 비자금 사건을 수사했다고 치자. 그는 C사로부터 돈을 한 푼도 받지도 않았고, 아무런 청탁도 받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C사에 흠집이 가지 않을 정도로 수사를 잘 마무리해서 기소유예로 사건을 종결했다. 몇 년 후 그는 변호사개업을 한 뒤 C사의 법무실장으로 발탁되었다.

비슷한 가정을 해보자. D사를 운영하는 재벌총수의 수천억대 횡령 사건 재판을 맡은 판사가 있었다. 그는 “재벌 회장이 구속되면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고, 그러면 국가경제도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으로 징역형의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했다. 몇 년 후 이 판사는 D사의 고위직에 있는 선배법관의 제의로 D사의 임원이 되었다.

이런 얘기를 하면 판사나 검사를 뭘로 보느냐고 반론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잘 나가던 판사나 검사가 옷을 벗은 뒤 수억, 수십억 원대의 연봉을 받고 대기업 임원이 되는 모습은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아무리 법을 촘촘하게 만든다 한들 이런 행태는 제재하기 어렵다. 정작 우리가 걱정할 일은 김영란법으로도 잡을 수 없는 은밀한 거래를 어떻게 잡아낼 것인가다.

김영란법 적용대상자인 나로서도 법을 두고 할 말은 많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엄격한 잣대로 청탁의 고리를 끊지 않고서는 부정부패를 잡을 수 없고, 부정부패를 잡지 않으면 국가의 불신도 바로잡을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가하게 5만 원, 10만 원 논쟁을 할 때가 아니다.

길 가는 사람에게 한 번 물어보라. “대한민국 공무원과 기자는 깨끗합니까?” 나중에라도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한다면 일단 김영란법은 잘 정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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