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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선 후퇴’와 ‘거국중립내각’, 답이 아니다

김용국 프로필 사진 김용국 2016년 11월 15일

법원공무원 겸 법조 칼럼리스트

드디어 100만이 모였다. 주말 광화문과 을지로, 종로, 시청, 남대문 일대는 청와대를 향해 ‘하야’, ‘퇴진’을 외치는 인파로 뒤덮였다. 11월 12일 서울 도심은 2002년 월드컵 4강 길거리 응원을 능가하는, 그야말로 ‘민중 총궐기’였다.


근원은 바로 대통령이다. 국민에게 위임받은 자신의 권한을 비선실세에게 양도하고 사유화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얼마 전 대구 시내에서 열린 시국대회 자유발언대에서 한 여고생의 자유발언이 화제가 되었다. 그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박 대통령은 우리의 국민, 우리 주권자가 선사한 권력을 사사로운 감정으로 남발하고 제멋대로 국민 주권자의 허락 없이 이를 남용하여 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위헌적인 부분이다. 적어도 헌법 1조 1항(민주공화국 조항)와 67조(대의제 원리) 위반에 해당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급기야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과 측근들의 정부 문건유출, 횡령, 뇌물, 사기 등의 혐의에 현직 대통령이 직접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 참담한 현실에 직면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향후 어떤 선택을 하건, 민심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만큼 아주 멀리 떠나고 말았다. 이젠 담화건 사과건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다.


그런데도, 국가가 정상적으로 작동되는지 의심스러운 이 시점에서 박 대통령이 자진 사퇴를 결정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부에서는 하야나 탄핵을 추진하는 대신, 현실적으로 박 대통령이 권한을 내려놓고 2선으로 후퇴하도록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통령 2선 후퇴 후 거국중립내각 구성은 과연 실현 가능한 일일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현행 헌법 체제에선 답이 아니다.


먼저, 대통령의 2선 후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어렵다. 어디까지 권한을 행사하고 어디부터 내려놓으라는 말인가.


한국의 대통령은 헌법상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여 조약을 체결, 비준하고, 국군통수권, 선전포고, 군대의 외국 파견 등의 권한을 갖는다.

또 법령집행권, 법률안 제출권, 대통령령제정권, 법률안거부권, 사면·감형·복권권, 긴급명령권, 계엄선포권이 있으며 국정을 총괄하는 국무총리를 임명하고, 행정 각부의 장관 등 국무위원 등 공무원을 임명한다. 이 중에서 어떤 권한을 제한하는 것이 2선 후퇴일까. 그리고 제한하는 방법은 무엇이며 그 근거는 또 어디에 있을까.


일각에서는 여야 합의와 대통령의 수용과 같은 정치적 결단으로 국회가 추천한 총리를 대통령이 임명하고, 그 총리가 국정을 주도하면서 국무위원 제청권을 행사하면 거국중립내각이 구성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위헌 소지를 안고 있다.


헌법상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물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의 명에 따라 행정각부를 통할하도록 되어 있는 총리가 독자적인 업무 수행을 한다면 헌법에도 없는 권한을 부여받는 셈이다. 또한, 국무위원 임명 시 국무총리의 제청권도 대통령을 법적으로 기속하지 않는다는 것이 학자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그렇다면 총리가 권한 대행을 맡는 일은 어떨까. 이것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헌법(71조)에는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고 되어 있다. 단순히 대통령이 2선 후퇴하는 정도로는 총리가 직무를 대행할 수 없다.


현대사에서 권한대행 체제는 1960년 4.19 이후 이승만 대통령 사임 시 외무부장관 허정, 1979년 10. 26. 사태 시 국무총리 최규하,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시 국무총리 고건의 사례 정도이다.


결국, 대통령의 퇴진을 전제로 하지 않은 2선 후퇴나 거국중립내각은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따른 것이라는 보장도 없고 오히려 법적인 혼란만 부추길 뿐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대통령의 권한이 있다. 바로 사법기관의 수장에 대한 임명권이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 중 3명을 직접 선정하여 임명하고,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임명한다.


준사법기관이라 일컫는 검찰의 수장인 검찰총장과 검찰총장을 지휘·감독하는 법무부장관 임명도 대통령의 몫이다. 또한, 선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앙선거관리위원 9인 가운데 3인을 직접 선정하여 임명하고 감사원장과 감사위원도 임명한다.


이처럼 헌법은 헌법재판소, 사법부, 검찰의 구성에 대통령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다.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비판이 있지만, 헌법 개정 전까지는 유지될 수밖에 없다.


당장 내년에 임기만료가 되는 헌법재판소장과 대법원장이 문제다. 헌법을 수호하지 못하고 심지어 위헌적인 상황을 자초했다고 평가받는 대통령이 또다시 사법기관의 수장을 임명하는 상황을 수용해야 하는가. 2선 후퇴라는 애매한 표현은 이 문제를 정리할 수 없다. 임기 내내 권한을 둘러싸고 오히려 논란을 부추길 뿐이다. 대통령과 여야 국회의원 몇 명이 모여서 정할 문제도 아니다.


그래서다. 사퇴든 탄핵이든 대통령의 신분을 확실히 정리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의 압도적 다수의 압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지 않는다면 탄핵절차가 법적인 방법이다.


물론 탄핵을 위해서는 국회의원 200명과 헌법재판관 6명이 손을 들어줘야 한다는 난점이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직무수행이 헌법을 위반한 경우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을 추궁하는 길은 현재로썬 탄핵이 유일하다. 국민에게 위임받은 국가권력을 남용하여 위헌적인 상황을 만들었다면 그 권한을 박탈한다는 것이 탄핵제도의 취지다.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뜻이다.


2004년 노무현 탄핵 정국을 떠올려보라. 그 당시엔 대통령의 발언이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점을 주된 근거로 탄핵절차를 일사천리로 추진했던 국회가 이번엔 왜 망설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여야 모두 탄핵의 정당성 여부보다는 자신들에게 미칠 파장을 고려하느라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는지 아닌지 의심스럽다.


현재 헌법재판관들의 성향을 파악해보면 탄핵 인용 결정이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2004년 탄핵심판에서 헌법재판소는 ‘중대한 법 위반이 있다면 대통령을 파면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이 기준을 현재 박근혜 대통령에게 적용해보면 어떻게 될까.


‘대통령을 파면할 정도로 중대한 법위반이 어떠한 것인지’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나, 대통령의 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여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에 한하여, 대통령에 대한 파면결정은 정당화되는 것이다.
2004. 5. 14. 2004 나헌나1

현재의 난국을 대통령과 정치권 인사 몇 명이 밀실에서 결정한다면 그건 국민주권주의를 무시하는 셈이 된다. 2선 후퇴건, 중립내각이건 마찬가지다.

대의민주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압도적 다수의 힘으로 대통령과 국회를 압박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시점에서 국가를 바로 세우는 데는 거국중립내각보다 차라리 하야촉구 촛불시위가 더 현실적인 방안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