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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잣대는 공평한가

김용국 프로필 사진 김용국 2017년 01월 23일

법원공무원 겸 법조 칼럼리스트

"삼성 안도, 특검 타격, 국민 분노"


지난 1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어느 기사는 외신의 반응을 이렇게 정리했다. 외신뿐이겠는가. 일반 시민들의 정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중앙지법은 영장기각 사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뇌물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각종 지원 경위에 관한 구체적 사실관계와 그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 관련자 조사를 포함하여 현재까지 이루어진 수사 내용과 진행 경과 등에 비추어 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려움."



장황하지만, 특검의 수사가 아직 부족하니 구속영장 발부는 어렵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런데 왜 여론은 법원에 강한 비난을 퍼붓고 있을까. 사법부에 대한 막연한 불신? 재벌에 대한 분노? 그보다는 법원의 잣대를 믿지 못해서가 아닐까싶다.


원론으로 접근해보자. 피의자에 대한 수사는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다. 이것은 헌법과 형사소송법에서 파생되는 원칙이다. 헌법에 나오는 무죄추정의 원칙, 신체의 자유에 비추어 볼 때 구속수사는 예외적인 처분이다. 따라서 법원은 구속영장 발부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구속=처벌’, ‘영장기각=면죄부’로 받아들여지는 관행이 있긴 하다. 이런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되, 유죄로 결론이 나면 그에 상응하는 무거운 처벌이 뒤따르게 된다는 제도적인 정착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전에 고려할 문제가 있다. 법원이 과연 누구에게나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느냐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할 시민들은 거의 없다.


몇 년 전이다. 찜질방과 노숙생활을 전전하던 출소자가 몇 만원에 불과한 좀도둑질을 하다가 구속된 사례가 있었다. 이 출소자는 주거가 부정하고, 도망할 염려가 있다는 형사소송법상 구속 사유를 근거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반면, 이재용 부회장은 천문학적인 액수의 뇌물혐의를 받고 있지만 영장이 기각되었다. 주거도 확실하고, 도망할 가능성도 없다는 점이 큰 도움이 되었던 걸까. 일반 시민들 중에 이재용과 노숙자가 동일한 잣대로 법의 심판을 받는다고 느끼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필자는 법원에 일하는 관계로 판사들과 사적으로 많은 대화를 할 기회가 있다. 그 중에서 기억나는 어느 판사가 있다. 벌써 15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그 판사의 말이 생생하다.    




“삼성이 바로 대한민국 경제에요. 삼성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무너진다고 봐야죠. (그렇기 때문에) 삼성 사건은 신중해야죠.”



판사는 식사 도중에 사석에서 무심코 이야기했지만 그 기억은 여전히 뚜렷하다. 무슨 의도인지 더 물어보지 않았지만 재판에서 삼성을 고려하겠다는 뉘앙스는 충분했다. 물론 그런 판사들이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믿고 싶다. 이 때 필자는 법원의 잣대, 아니 판사 개개인의  잣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판사들이 모든 사건을 같은 잣대로 같은 비중으로 재판하기는 어렵다. 한 해 수백 건 수천 건 판결문을 작성하는 판사로서도 중요한 사건이 있게 마련이고 나름대로의 판단기준이 있게 마련이다. 이건 법조항의 기계적인 적용과는 다르다. 법조항과 판례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적용하는지가 담겨있는 잣대이다.


그런데 그 잣대가 반듯하지 않고, 적용이 평등하지 않다면 어떨까. 특히 국가의 위상을 생각해서 개인보다는 정부를 고려하고, 국가경제를 감안해서 노동자보다는 재벌을 선처해준다면 그건 어떻게 보아야 할까. 과연 칭찬할 일일까.


좀 더 극단적으로 얘기해볼까. 법관들이 나라의 신인도를 생각한다면 대통령 탄핵안을 기각해야 하고, 국가경제와 고용증가를 위해서는 재벌 총수의 구속도 자제해야 마땅하다. 정부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는 장차관 고위관료들의 실형선고는 신중해야 하고, 지방자치의 활성화를 생각하면 자치단체장의 비리 처벌도 삼가야 한다. 이게 좋은 법원, 좋은 나라일까.


물론, 이재용 부회장의 영장기각에 삼성에 대한 고려가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재벌이 살아야 국가가 살고, 경제가 살아야 고용이 확대된다는 환상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재벌 비리쯤이야 대의를 위해서는 큰 흠도 아니고 정의쯤이야 사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묻는다. 법원의 잣대는 공정한가. 이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사법불신 해소는 먼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