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 이후, 법원을 주목하자

2017년 봄은 시민들이 만들어가고 있다. 작년 가을부터 촛불을 든 시민들은 한 주도 멈추지 않고 광화문으로 나왔다. 철옹성 같던 청와대 앞에까지 가서 그들이 주말마다 외친 구호 ‘대통령 탄핵’은 현실이 되었다. 정권 실세들은 감옥으로 가고, 탄핵당한 대통령은 구속과 형사처벌을 걱정하는 신세가 되었다.

무능과 부패로 임기를 못 채운 대통령이 쫓겨난 대한민국은 조만간 새로운 대통령을 뽑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살만한 세상이 찾아온 걸까.

안타깝지만 아직 멀었다. 대통령 한 명 바뀐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무능 부패한 정권 말고도 우리에겐 몰아내고 바꾸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이 참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서 오랫동안 쌓인 이른바 ‘적폐’를 거두어내지 않으면 세상은 도로 ‘그들만의 세상’이 된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제대로 바꾸고 개혁해야 할 대상을 꼽으라고 한다면 법원을 꼽고 싶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약 10년간 사법부는 인권의 최후 보루라는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 아니 현저하게 한쪽으로 기울었다. 한때, 보수 일색이던 대법원에 진보·개혁적인 성향의 대법관들이 들어오면서 그나마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가 이뤄졌던 적이 있었다. 이른바 독수리 5형제로 불리던 이들은 사회적 약자와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중시하며 판결문에서 진보적인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0년 김영란, 2011년 박시환, 김지형, 2012년 이홍훈, 전수안 대법관이 임기를 마친 뒤 대법원은 다시 보수로 전면 회귀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 판결은 그 증거다. 몇 가지만 꼽아보자. 먼저 ‘KTX 여승무원 근로자지위확인 사건’이다. 하급심에선 ‘해고는 무효이고 복직은 정당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했으나 대법원은 3년 만에 뒤집었다. 여승무원들이 코레일 노동자라고 판단한 하급심이 잘못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비정규직, 위장도급, 부당해고 문제를 바라보는 대법원의 시각을 여실히 보여준다.

긴급조치 위반 국가손해배상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2010년 긴급조치가 위헌, 무효라고 선언했던 대법원은 2015년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한다. 유신시대 긴급조치권 행사가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이므로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는 볼 수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원세훈 국정원장 공직선거법 위반사건도 비슷한 결론에 이른다. 대법원은 선거개입을 인정한 2심 판결을 뒤집고 파기환송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국정원의 선거부정에 면죄부를 주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법원은 2013년 1월 약 2천여 명의 시민이 제기한 18대 대선 무효소송도 직무유기를 했다. 소 제기 후 4년이 훨씬 지났고, 심지어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물러난 현재까지도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그동안 ‘재판묵살’이라거나 ‘정권 눈치보기’라는 지적을 받았다. 국가권력을 견제하고 인권을 옹호해야 할 사법부는 제대로 역할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지난 10년간 사법행정에서도 보수화, 획일화, 관료화는 심화되었다. 2008년 촛불집회 재판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던 신영철 전 대법관이 판사들에게 사건처리를 독려하거나 배당 몰아주기를 한 사건이 알려진 게 2009년이다. 당시 전국의 판사들이 들불처럼 일어났지만, 재판의 독립은 아직도 요원한 과제이다. 대법관, 법원장 임명권, 법관 인사권을 쥔 대법원장의 의중은 사법행정에서도 그대로 관철된다.

최근에도 달라진 게 없다.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의 학술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사법제도와 관련된 설문조사를 실시하려고 하자 이를 저지하고 행사를 축소하려고 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이 때문에 법원행정처 차장까지 사퇴하고 진상조사가 시작됐지만, 사태는 진정되지 않고 있다.

판사 501명이 참여한 이 설문은 역설적이게도 법원 개혁의 필요성은 깨닫게 해준다. 3월 25일 공개된 설문결과에 따르면 판사 10명 중 9명(88.3%)이 “사법행정에 관해 대법원장, 법원장 등의 정체에 반하는 의사표시를 한 법관이 보직, 평정, 사무분담에서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대법관 임명절차를 바꾸어야 한다(71.6%)거나 법관의 독립 보장을 위해 개선이 필요한 사법행정 분야가 있다(96.6%)는 의견도 지배적이었다.

판사가 제대로 재판하도록 재판을 지원해야 할 사법행정이 되레 판사를 간섭하고 재판의 독립을 침해한다는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설문조사 결과가 나오자 정치권에서도 헌법과 법률을 개정해 사법부를 바로잡겠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독립을 생명으로 삼는 사법부로서는 ‘사법행정의 법관 독립 침해’ 운운하는 정당들의 비판이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법원장과 법원장의 권한 분산, 대법원장을 떠받드는 법원행정처의 축소 또는 해체는 사법개혁의 필수과제가 되어 가고 있다. 나아가 대법원장, 대법관 선출절차의 개선, 고등부장제도 폐지 등 법관 인사제도 개혁, 국민의 사법 참여 등도 정권이 교체되는 지금이 호기이다.

법원은 지난 2월 퇴임한 이상훈, 박병대 대법관 후임 대법관 2명과 오는 9월 신임 대법원장 임명을 앞두고 있다.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어떻게 선출하고, 누가 임명되는지, 그리고 그들에게 어떤 개혁 의지가 있는지가 상당히 중요한 시점이다.

법원 내부에도 고무적인 현상이 있다. 최근 법원을 바꾸어야 한다는 소장 판사들과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법원 공무원들의 움직임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 개혁에 시민들의 동참도 필수적이다. 촛불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었듯이 주권자인 국민이 사법부의 적폐 청산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 사법부와 헌법재판소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그동안 우리는 보아왔지 않는가. 대통령 탄핵 정국 이후의 법원을 주목하자. 아니 제대로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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