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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콘서트’ 발언, 법정에 서다

김용국 프로필 사진 김용국 2015년 01월 05일

법원공무원 겸 법조 칼럼리스트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칼 마르크스가 1848년 발표했다는 <공산당선언>의 서문이다. 이걸 암울한 우리 사회에 대비하여 이렇게 바꿔보고 싶다.


“하나의 유령이 한반도를 배회하고 있다, 종북주의라는 유령이.”


마르크스 시대에 공산주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희망의 단어였다. 하지만 21세기 한반도의 종북주의는 한마디로 낙인찍기와 다름없다. 북에 약간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면 사상과 논리를 떠나서 종북주의자라는 낙인을 찍는다. 요즘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태도까지 포함하여 마구 사용한다.


사전에도 없는 이 단어가 대한민국 사회에 활개를 치고 있다. 종북이란 말 그대로 놓고 보면 북(의 체제나 사상)을 추종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종북은 다의적인 의미를 지니는 단어로 발전해 가고 있다. 북한과의 관계개선이나 대화를 주장하거나 국가보안법 폐지, 개정 등을 주장하면 ‘종북’세력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그뿐 아니다. 언제부턴가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거나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는 쪽을 향해서도 ‘종북’이라고 공격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특정인을 종북으로 지목하면 2가지 효과(?)를 가져온다. 하나는 종북으로 지목된 사람이 (진위와 관계없이) 위험한 인물이라는 인상을 풍기게 한다. 또 하나는 아직도 뒤떨어진 북한 찬양이나 하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인물로 몰아갈 수 있다. 여기에 대처하는 방법은 대개 수세적일 수 밖에 없다. 지목당한 당사자는 스스로 종북이 아니라고 강변해야 한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종북(주의)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깔고 주장을 펼친다. “내가 종북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말이다. 나는 섣불리 종북 운운하는 언론과 사람들을 보면 사상검증이 떠오른다.


2011년 6월로 돌아가보자. 당시 헌법재판관 임명절차 과정에서 여당인 한나라당은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사상’을 문제삼았다. 조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해 질문을 받고서 ‘정부 발표를 신뢰하지만, 법률가로서 직접 보고 경험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확신이라는 표현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그러자 한나라당 의원들은 조 후보자의 사상이 의심스럽다며 몰아붙였다.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은 “직접 보지 않아 (북한의 폭침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은 헌법재판관 후보가 할 발언이 결코 아니다”라고 공격했고, 황우여 원내대표는 “조용환 후보자가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점에 대한 답변을 거부하고 있다”며 민주당에 사실상 후보자 추천 철회를 요구하기까지 했다. 당시 중앙일보(2011. 6. 30.자)는 “마치 맹목적 반정부주의자나 몇몇 종북주의자가 내세우는 주장과 비슷”한 “해괴한 논리”라고 공격했다.


그 뒤 반년 넘게 조용환은 ‘후보자’로 머물러 있었고, 국회는 결국 선출안을 부결시키고 말았다. 법률가로서 확신이라는 말을 함부로 쓸 수 없다는 조 후보자에게 확신을 강요하는 여당 의원들의 태도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다. 헌법재판관은 사상검증을 통과한 사람만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대통령까지 ‘종북’을 언급하고 있다. 작년 12월 15일 박근혜 대통령이 수서비서관회의에서 재미동포 신은미씨와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가 열었던 토크콘서트를 ‘종북콘서트’로 표현한 것이다. 오해 소지를 없애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발언한 내용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인용한다.




최근 소위 종북콘서트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우려스러운 수준에 달하고 있습니다. 몇 번의 북한 방문 경험이 있는 일부 인사들이 북한 주민들의 처참한 생활상이나 인권침해 등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자신들의 일부 편향된 경험을 북한의 실상인양 왜곡과장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 전 세계가 한목소리로 북한 인권 상황을 우려하고 있고, 북한인권결의안이 지난 달 유엔총회 인권사회분과위에서 압도적으로 통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사자인 대한민국에서 그 정반대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극히 편향되고 왜곡된 것입니다. 우리가 평화통일을 지향하면서 북한의 실상을 바로 알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지만 이 모든 행위들은 헌법적 가치와 국가의 정체성을 지킨다는 대원칙 아래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자 합니다.



일부 보수언론과 종편 등에서는 신은미, 황선씨가 콘서트에서 “북한은 지상낙원”이라고 발언한 것처럼 몰아갔지만 경찰수사결과 그런 발언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대통령이 ‘종북콘서트’라는 단정적인 표현을 썼다는 것은 여러모로 부적절하다. 두 사람은 아직 아무런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고, 설사 처벌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종북주의자임을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급기야 당사자 중 한 명인 황선씨는 박 대통령을 명예훼손 등으로 형사고소하고, 이와 별도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법적으로는 어떻게 될까. 섣불리 단정할 수 없지만 관련 법률과 판례를 토대로 사안에 접근해본다.


일단 형사사건에서 박 대통령이 조사나 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없다.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민사재판의 피고가 되었기 때문에 민사재판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특정인을 함부로 ‘종북’으로 낙인찍는 일은 법적으로 허용될까. 약 1년 전에 내려진 2개의 민사판결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서울시장, 성남시장, 노원구청장 외 종북 성향의 지자체장들 모두 기억해서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퇴출해야 합니다. 기억합시다.



아나운서 출신 정미홍씨는 지방선거를 겨냥하여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종북 성향’으로 거론된 당사자들은 반발했고, 적지 않은 네티즌들도 정씨의 글을 성토했다. 그러자 정씨는 다음날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자질이 의심되는 지자체장과 종북 성향의 지자체장들을 퇴출해야 한다니까 또 벌떼처럼 달려드는군요. 그들은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지 잘 알아보지도 않고 그저 반대를 위한 반대를…ㅉㅉ



당사자인 김성환 노원구청장과 이재명 성남시장은 개인 자격으로 서울중앙지법과 성남지원에 각각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판결을 내린 법원은 달랐지만 결과는 대동소이했다. ‘종북 성향의 지자체장’이라는 표현이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원은 “명예훼손이란 사람의 품성, 덕행, 명성, 신용 등 인격적 가치에 대하여 사회로부터 받는 객관적인 평가를 침해하는 행위를 말하고, 그와 같은 객관적인 평가를 침해하는 것인 이상, 의견 또는 논평을 표명하는 표현행위에 의하여도 성립할 수 있”다고 전제했다.


법원은 이어 “이른바 ‘종북(從北)’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북(북한)을 추종하는 것’을 의미하고, 보통 ‘주체사상과 북한 정권의 노선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경향’을 일컫는 데 쓰이는 말”이라면서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나 북한을 추종하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행위에 대하여는 국가보안법에 따라 처벌될 수 있는 실정을 고려하면, ‘종북 성향’의 인사로 지목되는 경우 그에 대한 사회적 평판이 크게 손상될 것임이 명백하므로 그로 인하여 그 사람의 명예가 훼손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법원은 “아무런 전후 맥락 없이, 또한 구체적인 전제사실의 적시 없이 ‘종북 성향의 지자체장’으로 단정하고 지방 선거에서 퇴출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한 행위는 사회적 평가를 현저하게 저해시키는 표현으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종북 성향’이라는 표현은 경우에 따라서 단순한 의견 또는 논평에 불과할 수도 있으나, 아무런 전후 설명 없이 ‘종북 성향의 지자체장’으로 지칭하는 글을 게시하였다면, 이는 ‘종북 성향’이 있다는 사실, 즉 북한 정권의 주장이나 정책에 찬성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하는 사상을 가졌거나 그러한 언행을 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이라는 사실을 묵시적으로 포함한 표현이라 볼 수밖에 없다”고 적시했다.


다시 말해 “북한을 추종하는 정치인은 정치적․사회적으로 큰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고 반면 국민의 지지를 받기는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하면, ‘종북 성향의 지자체장’이라는 표현은 사회적 평가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 정씨는 위법성조각 사유를 주장했다. 트위터에 글을 올린 목적이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라는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려는 의도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그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종북성향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므로” 위법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지방자치단체장이 북한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이고, 당시의 상황이나 그 표현행위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공공성은 인정된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 근거가 매우 박약함에도 불구하고 ‘종북 성향의 지자체장’이라고 단정하여 지칭한 행위는 진실하거나 진실하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내렸다. 트위터에 공적 관심사에 관한 의견을 표명하는 행위는 표현의 자유가 넓게 인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게시글은 표현의 자유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서 위법한 행위라고 판시했다.


법원은 “다른 성향의 정치인이나 공인에 대하여 충분한 근거 없이 ‘종북’이라 지칭하는 행위는 그 상대방에 대한 사회적 평가에 치명적 손상을 입힐 수 있고, 합리적인 토론과 소통을 전제로 하는 민주주의의 정착과 발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뿐”이라고 꼬집었다. 법원은 공인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종북’의 낙인을 찍는 것은 사회적 평가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명예훼손 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물론 이 판결로 박 대통령 관련 소송결과를 예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법적인 판단 여부를 떠나 북한과 관련된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섣불리 예단하고 공격하는 일은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더구나 공격하는 주체가 국가기관이라면 사상의 자유, 민주주의에 역행할 위험도 있다.


박 대통령은 신년인사에서 “통일이 구체적인 현실로 구현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준비와 실천에 최선을 다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북한을 경험한 뒤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눈 민간인들의 행위를 “편향되고 왜곡된” 종북콘서트로 규정하는 것은 과연 통일을 구현하는 데 도움이 될까. 토론과 소통이 없는, 맹목적인 종북 낙인은 세련된 반공주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