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과 선수

얼마 전 한화 김성근 감독은 심판의 스트라이크 판정에 강력히 어필하면서 선수들을 벤치로 불러들였습니다. 다음 날 인터뷰에서 김 감독은 “심판과 선수, 벤치 간에 믿음이 필요하다고 본다. 어떤 믿음이든지 간에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김 감독의 말처럼 심판과 선수, 벤치 간에 믿음이 없다면 야구는 불가능합니다. 심판이 자기 본분을 내팽개치고 선수로 뛰겠다고 나서는 순간 게임은 엉망진창이 됩니다.

노사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사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스트라이크 존(strike zone)과 볼과 스트라이크를 정확히 판단해주는 심판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노동자가 던지는 한 가운데 공도 볼이 되고, 사용자가 던진 땅볼은 종종 스트라이크가 됩니다. 사용자가 던지는 공이 시원치 않으면 아예 심판인 정부가 투수로 나서 노동자 머리에 공을 던지기도 합니다. 죽거나 다치기 싫으면 타석에서 비키라는 것입니다. 과장이 아닌 2015년 6월 대한민국의 엄연한 현실입니다.

좁디 좁은 스트라이크 존

우리 헌법 33조 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합니다. 아름답지만 현실에서는 종이조각에 불과합니다. 대한민국에서 합법파업이란 ‘미션 임파서블’이기 때문입니다. 정리해고 반대도, 공장 해외이전 반대도, 동료였던 해고자의 원직복직 요구도 불법, 모두 불법입니다. 파업은 커녕 노동조합을 만들고 유지하기도 벅찹니다. 6만 여명의 조합원 중 해직자 9명, 비율로 0.015%의 조합원 자격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전교조는 법 밖으로 내몰려 법외노조가 되었습니다. 다른 나라, 전 세계 문명국가의 스트라이크 존은 다릅니다. 노동자는 자주적으로 단결할 수 있고, 제3자인 정부가 감놔라, 배놔라 간섭할 수 없습니다. 정리해고나 공장해외 이전을 반대로 한 파업은 지극히 당연하고, 프랑스에서는 정부의 연금개혁에 반대해 200만 명이 총파업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ILO, EI, ITUC, OECD 등 국제사회가 스트라이크 존을 넓히라고 아무리 권고해도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좁디 좁은 스트라이크 존은 변함이 없습니다.

주옥 같은 판정

아래 글은 누가 썼을까요?

경영권과 노동3권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 이를 조화시키는 한계를 설정함에 있어서는 기업의 경제상의 창의와 투자의욕을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증진시키며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함을 유의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기업이 쇠퇴하고 투자가 줄어들면 근로의 기회가 감소되고 실업이 증가하게 되는 반면, 기업이 잘 되고 새로운 투자가 일어나면 근로자의 지위도 향상되고 새로운 고용도 창출되어 결과적으로 기업과 근로자가 다 함께 승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구조조정이나 합병 등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경영주체의 경영상 조치에 대하여는 원칙적으로 노동쟁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해석하여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촉진시키는 것이 옳다.

놀라지 마십시오. 전경련이나 대한상공회의소의 성명서가 아닙니다. 지금도 곧잘 인용되는 대법원 2003. 7. 22. 선고 2002도7225 판결입니다. ‘기업이 잘 되야 노동자도 잘 된다, 그러니 노동자는 가만 있어라’ 이런 말은 전경련도 내놓고 하기 쉽지 않습니다. 당장 지난 15일 IMF조차 이른바 ‘낙수효과’가 완전히 틀렸다고 하였고,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이를 실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수인 전경련도 하기 어려운 말을, 심판인 대법원이 나서 시속 150km 직구로 던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경영권은 감히 노동3권이 근접할 수 없는 신성 불가침의 권리라고 말입니다.

못본체 하는 심판

충남 아산의 갑을오토텍은 회사가 ‘노조파괴 용병’을 채용했다는 의혹이 일었습니다. 신규채용 인원 중 상당수가 특전사나 전직 경찰 출신이었고, 지난 5월 노동부 천안지청도 이력서를 허위로 기재한 신입사원 채용을 취소하도록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노동부 권고를 따르지 않았고, 마침내 6월 17일 이들 ‘신입사원’의 폭력으로 금속노조 조합원 수십 명이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그 중 한 명은 눈 주변의 뼈가 함몰되어 시력이 상실될 위험에 처했고, 공업용 선풍기로 머리를 가격 당한 조합원은 뇌출혈로 중환자실에 입원했습니다. 그러나 체포되거나 구속된 사람은 없었습니다. 가해자들은 여유롭게 공장 안을 배회하고, 경찰은 정문 출입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폭력으로 노동자들의 뼈가 함몰되고, 뇌출혈로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무법천지의 상황에서 심판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선수로 나선 심판

사용자가 주자를 내보내면 종종 정부가 구원투수로 나서기도 합니다. 6월 17일 정부는 1차 노동시장개혁 추진방안을 발표하면서 모든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민간부문도 30대 기업과 중점 관리대상 사업장 551곳을 중심으로 임금피크제를 정착시켜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노동시장의 유연·안전성 제고를 위한다는 2차 추진방안에는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파견 확대’, ‘저성과자 일반해고’가 추진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제97조 제1항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과반수 노조나 과반수 근로자의 동의를 받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근로기준법의 명문 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부가 직접 선수로 나서 임금은 낮게(임금피크제), 해고는 쉽게(일반해고), 비정규직은 양산(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파견업종 확대) 하겠다는 것입니다. 심판이 선수로 나선 것도 모자라, 최소한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룰(근로기준법, 기간제법, 파견법)마저 뒤흔들겠다는 것입니다.

벤치의 어필

다시 김성근 감독님의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선수(노사)와 심판(정부) 간에 신뢰가 깨지면 게임(노동시장)은 파행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는 선수가 아니라 심판입니다. 지금 형국은 심판인 정부가 사용자팀의 투수로 나서 타석에 들어선 노동자의 머리에 빈 볼을 던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심판이 본분을 저버리면 벤치의 국민들이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빈 볼로 위협받는 노동자는 조금 전까지 옆에 있던 동료였고, 그가 빈 볼에 맞고 실려나간 다음 타석은 내 차례이기 때문입니다.

  • sc K

    낙수효과라는 아이디어를 사용자 측에서 생각해 냈듯이 반대로 근로자가 잘 살아야 기업측이 잘 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왜 생각하지 못할까요? 암울하지만 현실인 세상에서 지금 바꿀 수 있는 것은 개인의 깨어남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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