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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의 문제점과 입법적 개선방향

신인수 프로필 사진 신인수 2014년 12월 04일

법무법인 소헌 / 변호사

지난 11월 13일 대법원은 정리해고를 당한 쌍용자동차 노동자 153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해고무효확인 사건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정리해고가 유효하다고 판결했습니다. 최근 정부 일각에서는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지면의 한계가 있지만 정리해고가 무엇인지, 가해자와 피해자는 누구이고, 어떤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하는지 함께 고민했으면 합니다.



1. 정리해고 ☞ 가해자는 사용자, 피해자는 노동자!!!


정리해고란 사용자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는 경우에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을 말합니다(근로기준법 제24조). 노동자에게 책임이 없더라도 사용자의 경영상 사정만으로 해고할 수 있다는 겁니다. 가해자는 사용자이고, 피해자는 노동자입니다. 비위행위로 징계해고를 당한 경우에도 실체적·절차적으로 정당성 요건을 구비해야만 효력이 있습니다. 하물며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대량실업 사태를 초래하는 정리해고는 더욱 엄격히 규제될 필요가 있고, 바로 여기에 ‘정리해고시 노동자 보호’라는 규범적 요청의 당위성이 있습니다.



2. 대법원의 입장 ☞ 가해자 마음대로!!!


근로기준법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정리해고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이라는 문구의 어의적(語義的) 한계마저 뛰어넘고 있습니다. 현재도 아니고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하여 정리해고를 하는 것도 허용된다는 겁니다(감량경영설).










▶ 대법원 2003. 9. 26. 선고 2001두10776, 10783 판결
정리해고의 요건이 되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 함은 반드시 기업의 도산을 회피하기 위한 경우에 한정되지 아니하고,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하여 인원삭감이 객관적으로 보아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도 포함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의 감량경영설은 다음과 같은 비판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첫째, 근로기준법 제24조 제1항의 문언에 반합니다. 근로기준법 제24조 제1항에 규정된 ‘긴박한’의 사전적 정의는 ‘매우 다급하고 절박한 상황’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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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판시한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는 바꿔 말하면 ‘장래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위기’를 말합니다. 법이 규정한 ‘매우 다급하고 절박한 상황’을 ‘장래에 올 수도,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경영위기 예측‘ 차원으로 격하하는 것은 어의적 한계를 뛰어넘는 확장해석입니다.


둘째, 규범적 판단을 경제 예측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법원에게 맡겨진 책무는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라는 문언의 합리적 해석이지(규범적 책무), 특정 기업의 장래 경영성과를 예측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법원이 취한 감량경영설은 법원이 정부 산하기구나 기업의 경제연구소 역할을 대신해서 노동자들을 공격적으로 내쫓겠다는 것인데 바람직하지도·가능하지도·적법하지도 않습니다.


셋째, 경영상 위기의 판단주체와 객관성 담보방안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장래에 올 수도, 안 올수도 있다는 경영상 위기를 누가, 언제, 어떻게 판단하겠다는 것인지, 그 판단의 객관성은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 답이 없습니다. 그 침묵을 대신하는 것은 사측이 가공한 회계·재무자료 뿐입니다. 법원이 사용자의 주관적 자료만가지고 특정 기업의 장래 경영성과를 객관적으로 예측하겠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자 합리성을 결여한 주관적 희망일 따름입니다.



3.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원칙은 고대 로마법의 법언이자 근대사법의 기본축입니다.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임대인은 계약기간 동안 임대목적물을 임대해야 합니다. 계약기간은 지켜져야 하고 중도해지는 불가능합니다. 경제형편이 나빠져 집을 팔지 않으면 신용불량자가 되더라도 그것은 임대인 사정이고 임대기간은 준수되어야 합니다. 기존 임차인보다 더 많은 월세를 내겠다는 사람이 있어도 계약기간 중에는 임차인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것이 상식입니다.


정리해고는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법원칙과 상식을 정면으로 깨뜨리는 것입니다. 근로기간이 보장된 노동자를 경영악화라는 사용자의 일방적 사정만으로 해고하도록 허용하기 때문입니다. 매우 예외적이고, 지극히 비정상적인 제도이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항목



임대차계약 해지



정리해고(근로계약 해지)



계약기간 중 중도해지



X



O



귀책사유자의 일방해지



X



O



영업이익을 위한 일방해지



X



O



계약기간 중 상대방 교체



X



O




매매나 임대차와 같은 일반 계약에서도 계약의 중도해지, 특히 귀책사유가 있는 당사자에 의한 일방해지는 불가능한데 귀책사유자인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그것도 대규모로 해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전체 사법질서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일반 사법계약이 대등한 당사자 간에 체결되는 반면, 근로계약은 본질적으로 불평등한 당사자 간에 체결되므로 이를 해석함에 있어서는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노동법의 대원칙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따라서 정리해고는 원칙적으로 금지되거나(정리해고로 인한 손해를 모두 배상하는 것도 포함), 예외적으로 극히 엄격하고 제한된 요건(가해자인 사용자 측의 노력과 비용으로 해고회피 노력 필요) 하에서만 정당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전체 사법질서의 규범적 요청이고, OECD 국가들을 포함한 문명사회의 상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