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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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평야와 강남의 아파트

최경영 프로필 사진 최경영 2013년 03월 24일

뉴스타파 팀장.2013년 3월 KBS를 사직하고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와 뉴스타파 설립에 참여.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95년 12월에 KBS에 입사했고 이후 주로 시사 보도 프로그램을 맡아 활동하였다. 탐사보도팀, 미디어포커스, 특별기획 한국사회를 말한다 등에 참여하였는데, 기자와 PD 영역에서 활동했다. 이달의 기자상 6회, 삼성언론상,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 등을 받았다.

용산, 부동산 광풍 6년후...후기


18년 기자 생활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 가운데 한 분이 손정목 서울 시립대 명예교수입니다.


이 분을 처음 만난건 제가 KBS스페셜팀에서 부동산 관련 60분 다큐멘터리를 취재,제작할 때였습니다.
10년쯤 전의 일입니다.
이 분은 한국 부동산 역사의 산 증인이셨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서울시 도시 계획 국장을 역임했으니 강남 개발의 마스터 플랜을 직접 수립하고 실행한 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당시 강남개발과 관련해 한 청와대 관계자가 와서 선거자금으로 써야 한다며 돈 몇 천만원을 주고 몇 십억을 만들어달라고 했단 이야기,상공부 관료들이
몇 백만원씩 돈을 모아서 집단 땅투기를 했다는 이야기등은 정말 잊지 못할 생생한 증언들이었지요.


그 때 제가 이분을 오랫동안 인터뷰하며 크게 깨달은 게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패러다임의 변화'에 관한 것이었죠.
손 교수님의 증언에 따르면 70년대 강남이 처음 개발됐을때는 4대문안에 살던 강북의 '전통 부자'들이 강남으로 쉽게 옮기려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주하는게 왠지 품위있어 보이지 않았던 것이지요.
또, 당시 강남의 땅을 사느니 자신이 살던 고향의 논과 밭을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말했습니다.
70년대 대한민국은 농업경제에서 빠르게 산업경제로 변화하고 있었고 농촌 공동체가 해체되고 도시화 과정이 급격히 진행되고 있었지만, 당시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그래도 고향에 땅 한 마지기' 사놓는게 폼 나 보였단 말이지요.
고향에 땅 한 마지기는 당시 사람들의 맘을 푸근하게 안심시켜줬지만 강남의 땅은 왠지 탐탁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는 드넓은 호남 평야가 강남의 영동 택지개발지구 예정지 주변땅보다 훨씬 비쌌습니다. 그 때 잠실의 뽕밭을 사 놓은 분들이라면 어찌보면 머리가 '깬' 투기꾼들이었습니다.


그리고 5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강남의 땅,아파트는 금값 정도가 아니라 다이아몬드 가격이 되어버렸습니다.
부의 상징이 됐지요.
부동산으로 한 몫 번 사람들의 신화,강남 주유소와 천억대 건물 서너개를 가진 '김사장님', '조사장님'에 대한 이야기 저도 익히 들었습니다.
로데오 거리, 오렌지족, 강남 졸부, 돈, 욕망.
그렇게 어떤 사람들은 떼돈을 벌고,그렇게 또 한국 사회는 일그러진 역사의 한 단면을 얻게 됐지요.


그러나 지금은 어떤까요?
강남 개발 50여년 뒤,한국의 부동산은 옛 영화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
전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패러다임의 변화'때문입니다.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경제규모,인구 구조,산업 구조 등 모든게 바뀌었습니다.
건설 경기를 통해 쉽게 경기 진작을 할 수 있을만큼 작은 경제 규모도 아니고, 집을 살만한 사람들은 이미 집이 있는 5,60대이고, 2030세대는 집보다는
안정된 직장이 더 시급한 문제가 되버렸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원하는 직업은 보다 창의적이고 자아 실현이 가능한 일이지 이른바 3D는 아니죠.
제가 이렇게 말하면 나이든 어르신들은 이렇게 나무라실 겁니다.
"아니 젊은놈들이 그렇게 힘든 일 피하면 되나?젊을 때 고생해야지"


젊을 때 꼭 건설현장에서 고생해야 하는 건 아니지요. 힘든일이 건설 현장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요.
5년전 오바마 대통령이 흑인으로선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을때 그 역시 금융위기에 빠진 미국 경제를 살리겠다며고속도로, 철도 등 인프라 건설에 박차를 가하겠다 발표했습니다.
미국의 낙후된 고속도로와 철도망, 그리고 그 드넓은 땅을 생각하면 우리와는 많이 다른 상황입니다만 그런데도 뉴욕 타임즈는 이런 오바마의 건설을 통한 경기 부양책을 이렇게 비꼬았습니다.


"기왕이면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지 말고 삽으로 파라. 아니 삽으로 파지 말고 사람들에게 숟가락을 하나씩 나눠주고 숟가락으로 땅을 파라. 그러면 4년동안 수백만명의 일자리가 보전될 것이다"


그러면서 뉴욕타임즈는 자본주의의 발전은 기술 개발과 혁신을 통해서 이뤄졌지 삽질로 이뤄지진 않았다고 비판했지요.


그런데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아파트를 통한 재산 증식의 꿈을 버리지 못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과 결부시켜 그런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시민들을 이용해 먹으려는 비뚤어진 윤리의식을 가진 정치인들 역시 여전히 존재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세상은 이미 변했는데 말이지요.
세상이 바뀌어도,이른바 패러다임은 이미 바뀌었는데도, 마지막까지 쉽게 바뀌지 않는 것,아니 바뀐 세상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게 우리 인간인가 봅니다.
부동산 천국,한국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 관련 기사 : 용산, 부동산 광풍 6년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