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영 기자의 독일 사이버 정책 연수기 II. “이 여행 증명서의 소지자는 이스라엘 시민이 아닙니다”

“야,사진 좀 찍자.”

“응, 그래. 좋지.우리 같이?”

“아니,너 말고 네가 가진 그 여권.”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던 일행의 웃음보가 터졌다. 필자가 팔레스타인에서 온 저널리스트, 지아드를 가볍게 ‘디스’하는 순간이었다고 느꼈나 보다.

오해였다. 필자는 진지했다.

웃음이 걷히고 난 뒤, 지아드의 양해를 구하고 지아드가 가진 여권(사실은 여행 증명서)을 찍었다. 겉표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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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정부의 여행 증명서, 여권이 아니다.

다음 장의 글귀는 더 당혹스럽다.

“이 여행 증명서의 소지자는 이스라엘 시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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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드 칼릴리 아부 자야드.

그는 미들이스트 포스트(middleastpost.com)라는 중동 정세 분석 전문 웹사이트를 직접 만들어 운영하는 팔레스타인 저널리스트였다. 팔레스타인으로는 드물게 세계 최고 명문대학 가운데 하나라는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에서 영문학과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똑똑한 청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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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국제관계학 전공 필수로 이슬람인을 사실상 모두 잠재적 극단주의자로 보는 ‘이슬람 극단론자들’이라는 과목을 들어야 졸업을 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는 그의 표정에서 대학내 거의 유일한 팔레스타인 학생으로서의 그의 학창시절이 과연 어떠했을까는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일제 식민치하 경성제국대학을 다녔던 조선 청년의 얼굴이 지아드의 얼굴과 겹쳐 잠시 환영처럼 지나갔다.

그의 나라 팔레스타인은 아직 온전한 독립국가가 아니다. 팔레스타인은 2012년 유엔(United Nations)으로부터 비회원국가의 지위를 얻어 앞으로 자국 국민들에게 여권을 발행하겠다고 선포했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아직 인정하지 않고 있다.

※ 관련기사 : ‘지위격상’ 팔레스타인, 여권에 ‘국가’ 명기(연합뉴스)

그래서 실질적으로는 이스라엘 점령지역에 거주하는 지아드는 이스라엘 정부가 발급하는 여행 증명서를 들고 해외 여행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무국적자나 난민과 비슷한 처지다.

실질적 점령국인 이스라엘로부터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해외여행이 가능한 나라 아닌 나라의 민족. 이 상황은 잊을만하면 벌어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근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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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8일 시작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세로 팔레스타인인 1900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약 1만 명이 다쳤다. 이스라엘에서도 하마스의 공격으로 67명이 숨졌다. (출처:KohraM)

한쪽은 어떻게든 공식적인 독립국으로 인정받고 싶어하고, 한쪽은 이를 부정하며 탄압하려 들고…그 사이 죄없는 아이들과 시민들은 상처받고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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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미들이스트 포스트

일제 식민치하를 거친 한국인으로서야 팔레스타인의 처지에 어찌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냉혹한 힘의 철학이 지배하는 생존의 장이 국제 관계라지만 이 역시 사람과 사람의 관계일 뿐이 아닌가? 필자와 함께 찍은 사진 속에서 활짝 웃는 모습처럼 그의 앞날에,또 그의 조국의 앞날에 행운이 함께 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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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최경영 기자)와 지아드 칼릴리 아부 자야드 미들이스트 포스트 기자.

※ 아래 오디오 파일은 지아드가 필자와 인터뷰한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그는 매우 폭력적 상황이 발생할 때나 되어야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고, 상황이 어떻다는 식의 선정적이고 피상적인 보도에만 매달리지 말고 언론들이 제발 민주주의,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의 측면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봐달라고 호소했다.

누군가가 단 한마디로 정의하는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이 많은 팔레스타인에게는 처절한 생존의 문제라는 것이다.

 최경영 기자는 지난 8월 3일부터 10일까지 독일연방정부 초청으로 독일의 사이버 정책 등에(Visitors Programme of The Federal Government-Dialogue with Germany) 관한 5일 동안의 연수에 참여했습니다.비행기 왕복 항공료를 포함한 독일 베를린 현지의 숙박과 식비 등 일체의 경비는 독일연방정부의 후원이었음을 알려드립니다.

 ● 관련 기사

 최경영 기자의 독일 사이버 정책 연수기 I “그들은 아마도 알고 있을 것이다”

└ 최경영 기자의 독일 사이버정책 연수기 III “하얀색 나라와 주황색 국가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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