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안녕하세요. 뉴스타파 포럼 입니다.

다음은 어느 신문사의 기사일까요?

최경영 프로필 사진 최경영 2014년 11월 10일

뉴스타파 팀장.2013년 3월 KBS를 사직하고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와 뉴스타파 설립에 참여.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95년 12월에 KBS에 입사했고 이후 주로 시사 보도 프로그램을 맡아 활동하였다. 탐사보도팀, 미디어포커스, 특별기획 한국사회를 말한다 등에 참여하였는데, 기자와 PD 영역에서 활동했다. 이달의 기자상 6회, 삼성언론상,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 등을 받았다.

간단한 퀴즈입니다.


다음은 어느 신문사의 기사일까요?




...서울 달동네를 주제로 한 인기 드라마 ‘서울의 달’의 배경이 됐던 서울 성동구 옥수동도 대규모 재개발을 통해 상전벽해하고 있는 대표 지역이다. 달동네는 온데간데 없고 현재 신축된 브랜드 아파트가 즐비하다. 한때 낙후 지역의 대명사였지만 지금은 강남접근성과 한강이 조망되는 좋은 입지에 신규브랜드 아파트까지 들어서면서 주거선호도가 높은 지역으로 탈바꿈했다.이렇게 재건축 재개발을 통해 성냥갑 아파트가 부촌아파트로, 대표적인 낙후지역이 주거선호도가 높은 지역으로 거듭남에 따라 집값도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 ‘래미안 퍼스티지’ 전용 84㎡의 평균 매매가는 14~15억에 달하며, ‘반포자이’ 역시 같은 평형이 14억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분양 당시 이들 분양가가 3.3㎡당 3000만원이 넘어 고분양가 논란이 있었지만 현재는 3.3㎡당 4000만원이 훌쩍 넘는다…



1.조선일보     2.중앙일보     3.아시아경제


2014111000_01


정답은?


뭘 찍으셨어도 정답입니다.
예.맞습니다.
같은 기사가 이들 세 신문에 날짜만 달리하며 실렸습니다.
관련된 기사를 한 번 직접 확인해 보십시오.


먼저 조선일보의 기사입니다.
서울 노후주거지, 재개발·재건축 통해 부촌으로 탈바꿈


다음은 중앙일보.
상전벽해를 꿈꾼다 재건축 재개발의 '힘'


이것은 아시아경제의 기사입니다.
재건축·재개발, 노후주거지 부촌으로 탈바꿈시킨다


마치 베낀 듯 똑같지요?
어떻게 이런 일이…도대체 왜 이런 짓을…


이에 대한 해답은 기사 말미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같이 '영등포뉴타운 재개발 사업의 첫 포문을 열었다'는 한 아파트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재개축이나 재개발한 아파트들 가운데 가격이 많이 오른 아파트들이 이런 것들이 있어. 이렇게 재개발, 재건축 아파트들의 가격이 많이 올랐으니 이 아파트도 분양받으면 오를거야,빨리 사!"


사실 이것이 이 기사들이 말하고자 하는 진짜 의도였던 것이지요.


A아파트도 재건축인데 올랐고, B아파트도 재개발인데 올랐으니 당연히 재개발인 C도 오른다고 말하는, 실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잠시 눈과 귀를 현혹시키는 사기꾼 같은 이런 논리, 이런 것을 성급한 일반화(Hasty Generalization)의 오류라고 합니다만 이 신문사 기자들에게는 이런 지적이 ‘쇠귀에 경 읽기’일 겁니다.


왜냐하면 이 기사들은 사실 이 신문사의 기자들이 쓴 게 아니기 때문이지요.
뉴스타파의 데이터 리서치센터에 의뢰해보니 1분도 안 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최근에 분양된 이 아파트를 소개하는 다른 홍보성 기사들을 찾을 수 있었는데요, 중앙일보도, 서울경제도, 건설타임즈도 이 문장들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의도 증권회사에 다니는 김 씨(45세)는 아침이 여유롭다. 남들처럼 지옥철을 경험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집 앞에서 지하철을 타면 여의도까지 2정거장이면 가능하다. 운동을 위해 걸어서 출근해도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저녁에는 아파트 내에 마련돼 있는 골프장에서 골프배우기를 시작했다. 시설이 최신식인데다 단지 내에서 즐길 수 있어 주변 동료들이 부러워한다…



누가 써 주지 않고서야 신문사들의 기사가 이렇게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업무ㆍ여가ㆍ교통시설… 영등포엔 '多' 있다(중앙일보)
없는 게 없는 영등포… 업무에 여가에 교통까지(한국아이닷컴)
업무·교통·상업 모두 갖춘 영등포…새로운 주거중심지로 부상(건설타임즈)


그럼 대체 이 기사들은 누가 쓴 것일까요?
해당 건설사 커뮤니케이션팀에 전화해서 어떻게 이런 기사들이 나갈 수 있었던거냐고 물었습니다. 돌아오는 말은 이랬습니다.


"뭘 새삼스럽게 이러십니까? 저희 건설사만 그런 게 아닙니다.분양 홍보 대행사들이 다 알아서 뿌리고 그걸 그대로 싣는 거죠."


분양 홍보 대행사의 보도자료를 신문사들이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뉴스, 기사라며 자신들의 신문사 홈페이지에 떡 하니 실었다는 말이지요. 건설사 홍보팀이 촌스럽게 다 아시면서 왜 이러냐고 말하는 투에 저도 이리 말하며 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새삼스러웠나요? 하하하…"


웃고는 말았지만 가슴 한 켠으로는 씁쓸함을 숨길수는 없군요.


지금이 이른바 '기레기'의 시대가 맞나 봅니다. 언론이 이러면 우리는 대체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