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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조치제도 개정안에 대한 서한

박경신 프로필 사진 박경신 2015년 02월 16일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소장 | 사단법인 오픈넷 이사

누군가의 침해주장만으로 게시글이 일단 내려지고 복원을 하려면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임시조치제도 개정안에 대한 서한


국회의원 여러분들께 올립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번에 추진하는 임시조치제도 개정안은 인터넷 상의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파괴하는 법입니다.


우리는 인터넷의 부작용을 잘 알고 있고 이에 대한 규제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인터넷에서 합법적인 정보가 삭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번 개정안은 누군가 인터넷에 올라온 글이 자신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주장만 하면 그 글은 반드시 내려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내려진 상태가 30일로 한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글을 복원시키려면 반드시 민사소송을 제기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터넷게시글을 복원하기 위해 민사소송을 제기할 자원이 있습니까?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없으면 그 글은 영원히 삭제되어 버리므로 30일의 기간도 의미가 없습니다.


물론 중간에 분쟁조정부가 게시글을 복원하라는 결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도 높으며 분쟁조정부의 심의가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무조건 내려져 있어야 합니다. 심의기간은 법으로는 10일로 정해져있지만 더 오래 걸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최선으로 해석하더라도 누군가 내 글이 자신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주장만 하더라도 최소한 10일 이상은 내려져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타인의 명예, 사생활, 영업비밀 등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은 글들은 긴급히 내려질 필요가 있습니다. 불법임이 확인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선 한시적으로라도 내려져야 합니다. 하지만 이 법은 그런 법이 아닙니다. 침해할 가능성이 높은지에 관계없이 그리고 피해가 회복할 수 없게 시급한지에 관계없이 누군가 주관적인 판단 만으로 게시물이 내려지게 되는 법입니다.


이렇게 합법적인 글에 대해 차단의무를 부과하는 법은 전세계에서 유일합니다. 이렇게 되면 진실된 상호비판과 토론이 어려워지며 문화, 정치, 경제 모두 망가질 것입니다. 기업A가 기업B의 주장이 기분나쁘면 차단시킬 수 있습니다. 영화감독A가 관객B의 영화평이 기분나쁘면 차단시킬 수 있습니다. 정치인A가 유권자B의 비판이 싫으면 차단시킬 수 있습니다. 변호사 A가 고객 B의 서비스 품평이 싫으면 차단시킬 수 있습니다. 소통의 장인 인터넷이 이렇게 망가지면 우리나라가 과연 발전할 수 있을까요?


현재를 바라보지 말고 미래를 봐주십시오. 다른 나라들은 인터넷을 살리려고 오히려 불법적인 글이 올라오는 것을 무릅쓰게 합법적인 글들을 차단을 막기 위한 세이프하버 법들을 만들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의 법조문은 “사업자는 이렇게 저렇게만 하면 게시물을 내려야 할 필요는 없다'라고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법만 “사업자는 요청이 들어오면 삭제해야만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갈라파고스 상태를 뛰쳐나올 논의를 해주십시오. 그 첫 번째 길이 바로 이번 방통위 안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저희 오픈넷은 이 법에 대한 국제컨퍼런스를 개최하려고 합니다. 국제컨퍼런스를 통해서 인터넷을 살리고 경제, 정치, 문화를 살리는 방법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토론해본 후에 방통위 안을 논의해도 늦지 않습니다.


해법들도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개정안의 “임시조치를 해야 한다”를 원래의 임시조치 조항(현행 44조의2 제4항)처럼 “할 수 있다”로 바꾸면 책임감경조항과 조화롭게 작용하여 국제표준인 “세이프하버”처럼 작동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어렵다면, ‘권리가 침해된 경우에만’ 차단의무가 발생하도록 하면 됩니다. 불법적인 글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우겠다는 조문은 아직도 국제표준에 떨어지기는 하지만 최소한 지금의 개정안보다는 훨씬 나을 것입니다.


또 분쟁조정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게시물을 차단해놓는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이미 그것만으로 표현의 자유는 파괴되는 것입니다. 공적 판단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 침해주장을 했다고 해서 먼저 차단해놓고 분쟁조정을 시작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복원주장이 있다면 반드시 복원해놓고 분쟁조정절차를 시작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유승희 의원안이 발의되었습니다.


인터넷 표현의 자유 개선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사항입니다. 이번 개정안은 공약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개정안입니다. 여야 의원님들의 검토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