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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1Q84>와 TV수신료 분리징수

박경신 프로필 사진 박경신 2015년 03월 24일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소장 | 사단법인 오픈넷 이사

수년 전 NHK 임원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자신을 응대한 KBS 본부장에게 사석에서 “NHK 수신료의 징수율이 낮아졌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KBS본부장이 “우리나라처럼 전기료랑 같이 걷으면 사람들이 전기는 반드시 써야 하기 때문에 징수 걱정이 없다”라고 조언을 했다고 한다. NHK 임원은 호텔에서 자고 나온 다음 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방송을 잘하고 있는지 시청자들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는 통로가 수신료 징수밖에 없는데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전 세계에서 수신료를 단전의 압박이라는 야만적인 수단으로 강제징수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터키뿐이다. 가구별 징수를 검토하고 있는 독일도 결국은 별도로 징수하겠다는 것이지 ‘수신료 내야 전기 주겠다’는 강박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과 정부의 영향력을 피하고 시청자와의 상호책임성을 확립하기 위해 전 세계 대부분의 공영방송은 광고와 정부지원을 모두 줄이고 수신료에 의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수신료를 강제징수하는 야만을 저지르면서 수신료의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는 TV 수신료 분리징수에서 시작되었다. 남자주인공 덴고는 초등학교 때부터 NHK 수금원인 아버지에게 일요일마다 수금압박의 도구로 동원되면서, 공부 잘하고 키 크고 운동도 잘하면서도 동급생 사이에 3학년부터 ‘NHK’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외톨이로 남게 되는 이유가 된다. 여자주인공 아오마메가 어머니와 함께 일요일마다 ‘여호와의 증인’ 선교를 다니다가 덴고와 마주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래서 따돌림을 당하던 아오마메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덴고가 상냥하게 대해준 이유이기도 하며, 아오마메 역시 덴고의 손을 잡아주는 사건 -<1Q84>의 세계에서는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바로 여기서 덴고는 아오마메를 다시 만나기 위해 두 개의 달이 뜨는 세계를 소설로 써내면서 “1Q84”의 세계는 펼쳐진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의문의 NHK 수금원은 소설의 마지막인 3권에서 <선구> 세력으로부터 도피 및 은둔해야 하는 아오마메의 집과 덴고의 집을 번갈아 방문하여 수금하려 한다. (덴고가 병상의 아버지에게 ‘수금은 잊어버리라’고 말하고 아버지가 죽은 후에 이 의문의 방문이 그치는 것으로 보아 NHK 수금원은 아버지의 초현실적 환영으로 보인다.) 하루키는 여기서 NHK 수금원의 영혼 없고 집요하고 의도적으로 짜증나는 수금의 변을 낱낱이 소개한다.




여러분의 NHK 예요. 당신이 안에 있다는 건 다 알아요. 제아무리 숨을 죽이고 있어도 다 압니다. 내가 아주 오래 이 일을 해서요, 안에 정말로 사람이 없는지, 있으면서 없는 척하는지 다 알아요...수신료를 내지 않는 건 도둑질이나 마찬가지예요...당신도 요만 일에 도둑 취급을 받고 싶지는 않지요? 이런 번듯한 신축맨션에 사시는데 그깟 수신료 정도를 못낼  리가 없죠, 안 그래요?



하루키는 왜 NHK수금원을 등장시켰을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래 대목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록히드 뇌물수수 사건을 특집으로 다룬 NHK 프로그램에 자민당이 불만을 표시하여 그 내용을 바꾸게 한 사건이 있었다. NHK는 방송 전에 몇몇 여당 정치인에게 그 프로그램의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고 “이런 걸 방송해도 괜찮을까요?”라고 굽실굽실 머리를 조아리면 의견을 여쭈었다는 것이다. 그건 놀랍게도 그때까지 일상적으로 이루어진 관행이었다. NHK 예산은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때문에 여당이나 정부의 심기를 거슬렀다가는 어떤 보복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NHK 상층부에 있었다. 또한, 여당 내에는 NHK를 자신들의 홍보기관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한 내막이 폭로되자 국민 대다수는, 당연한 일이지만 NHK 방송 프로그램의 독립성과 정치적 공정성에 불신을 품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수신료 납부거부운동도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국문 1권 229쪽).



NHK에 대한 일본국민들의 일반적인 불만을 담담히 써내려간, 별다른 독창적 가치도 없어 보이는 이 문단은 스토리 진행에 전혀 도움도 되지도 않는다. 이 문단은 하루키가 NHK에 대한 불만을 의도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루키는 수신료 징수 자체에 반대하고 있지 않다. 하루키는 NHK 수금원도 책 3권에 가서는 따뜻하게 감싸준다. 사실 3권의 중반부에서부터 <선구> 세력도 주인공들을 해할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하고 두 주인공도 물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어 조금은 감질나는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NHK 수금원의 환영은 두 주인공이 어서 나와서 서로 그토록 원하는 재회를 하기를 권하고 있는 것만 같다. 덴고와 아오마메를 만나게 한 아버지가, 죽기 직전에 환영으로 나타나 두 주인공을 만나게 하려 한 것이다.


하루키는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NHK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면서도 수신료 징수만큼은 박대하지 못한 것이다. TV 수신료를 통한 공영방송과 시청자와의 책임성의 관계, 전 세계 1억 부 넘는 베스트셀러 소설에도 각인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