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 범죄 혹은 정신질환 범죄

강남역 화장실 여성살인 사건을 두고 여성혐오 범죄인지 정신질환 범죄인지 또는 ‘묻지마 폭행’인지 논란이 뜨겁다고 한다.

‘논란이 뜨겁다’고 보도하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여성에 대한 묻지마 살인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여성혐오범죄 아닌가? 정신질환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혐오가 범죄로 발현된 것 아니겠는가? 왜 이걸로 싸워야 하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그런 논란과 무관하게 첫째, 무고하게 죽은 사람을 애도하고 있고 둘째, 아동학대의 피해자들이 그렇듯이 신체적 약자인 여성은 항상 이유 없는 폭행 대상이 쉽게 될 수 있다는 상황에 통감하고 있다. 셋째, 상당수 사람들은 한국의 성 차별적 상황에서 여성은 카르텔을 유지하려는 남성들의 분노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이번에 용의자가 ‘여성에게 무시당해서 복수하려고 했다’라고 말했는데 자신의 발밑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했기 때문에 분노가 강렬했으리라(참고로 ‘세계여성포럼’이 2015년 발표한 ‘성(性) 격차’ 세계 랭킹에서 한국은 중국이나 캄보디아보다도 낮았다).

내가 보기에는 이번 사건으로 우리 사회는 여성차별철폐를 위해 더욱 단합하고 있다. 여성혐오범죄임을 구태여 부인하려는 사람이 극소수이지만 언론이 이들에게 목소리를 주고, 다른 쪽이 구태여 ‘묻지마 범죄’나 ‘정신질환 범죄’임을 부인하고 있는 것처럼 보도하면서 ‘없는 논란’을 키우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바로 작년 6월에 한 백인청년이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시의 흑인교회에 들어가서 총기 난사를 했을 때 어느 누구도 그것이 증오범죄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와 동시에 모두가 미국사회에 인종차별·혐오의 문제가 있고 강박장애를 앓고 있는 ‘미친놈’이었기에 그런 차별적 이념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음에도 동의했다. 무슬림청년이었다면 ‘테러리즘’으로 규정되어 훨씬 더 많은 수사 자원이 투입되었을 거라는 비판이 있었을 뿐이다.

혐오는 두뇌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당연히 두뇌에 문제가 생기면 혐오는 더 증폭될 수 있다. 이미 10년 넘게 기능적자기공명영상(fMRI)을 통해 인종차별 및 혐오가 뇌의 특정 부분의 활성화와 관련이 있음이 밝혀진 바 있다. 뇌의 관련 부분에 문제가 생겼는데 차별이나 혐오적 성향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히틀러의 정신질환 가능성에 대해서 밤을 새우고 토론해도 히틀러가 저지른 범죄가 인종혐오 범죄임에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강남역 사건이 ‘묻지마’ 폭행임을 주장하는 분들이 여성혐오 범죄임을 배제하기 위해 그런 주장을 하고 있다면 이를 옹호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번 사건은 여성혐오 범죄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들만을 보면 여성 중에서 무작위로 상대를 선택한 묻지마 범죄임도 명백하다. 헌법의 평등원칙 내용은 자의적인 차별의 금지이다. 그렇다면 의도적인 혐오·차별과 자의적인 혐오·차별은 서로 반대말인가? 아니다. 우리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서 그 사람을 혐오하는 것을 ‘자의적인 혐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데도 어떤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의도적인 차별’이라고 생각하고 금기시해왔다. 이번 사건도 ‘묻지마’이기 때문에, 즉 피해여성을 공격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더욱 혐오범죄임이 명백한 것이다. 살인의 동기를 파보면 아무런 이유 없는 여성에 대한 혐오만 똘똘 뭉쳐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찰이 이 사건을 정신질환 범죄로 구분하면서 구태여 여성혐오 범죄가 아님을 강조하며 ‘논란’을 자초했다. 하지만 면식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강간 또는 아동학대는 틀림없이 신체적 약자를 향한 혐오범죄이고 이 사건도 마찬가지이고 경찰로부터 더 인정받을 것도 없다. 2012년 10월 여성 12명을 연거푸 성폭행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성남 발바리 사건’의 범인 B씨(47)도 2005년 특수강간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었으나, 당시 정신병(심신미약)을 인정받아 가벼운 처벌만 받고 풀려났었다. 경찰 발표 때문에 싸우지 말고 그냥 대범하게 해석해주자. 강남역 사건에서도 ‘정신질환이니 무죄’라는 항변이 나올 수 있으니 수사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 뉴타

    여성혐오라는 단어에서 혐오가 단순히 일상적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만 할 때 이견의 충돌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싫어하는것을 넘어 대상화, 편견, 그 외 모든 사회적 틀을 덧씌우고 그 구속에 여성을 가두려할때 모두가 여성혐오일진데요.. 기사 감사히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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