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비권 행사하셨으면 귀가하세요”

헌법 제12조 제2항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우리 헌법이 피의자의 묵비권을 보장하는 이유는 고문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검경은 묵비권을 행사하는 자도 5~6시간 넘게 붙잡아놓고 계속해서 질문한다.

물론 소환에 응해 출석하는 사람은 그런 신문에 동의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현재와 같이 소환불응시 체포영장이 쉽게 발행되는 상황에서는 동의에 의한 신문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것은 고문이다. 언어고문이다. 2010년부터 67명의 피의자들이 자살했다고 하는데 (매년 피의자 10여명 ‘극단 선택’…되풀이되는 ‘악몽’ 개선 목소리 / 경향신문) 이 언어고문을 중단해야 피의자 자살이 줄어들 것이라고 본다. 여기에는 전직 대통령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언어고문에 대한 두려움과 충격으로 이 많은 자살이 전부 설명되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죄가 있는 사람이 자살하는 경우도 많겠지만, 이 역시 국가가 자신과 주변인들에 대해 진행하는 공격에 일조하기 싫다는 절박함은 헌법으로 보호되어야 한다.

국가는 개인의 인생을 파괴하는 절차에 대해 그 개인이 협조할 것을 강요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모든 개인은 재판이 끝나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되어야 한다. 국가가 영장을 통해 강제로 유죄증거를 취득하거나 구금은 할 수 있어도 국가의 공격을 돕기 위한 진술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것이 자기부죄금지권(묵비권)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묵비권을 행사하면 모든 검경의 신문은 즉시 중단되어야 한다.

체포상태라면 중단했다가 나중에 묵비권 철회 여부를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체포상태가 아니라면 즉시 귀가 허락을 해야 한다.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서 진술할 것인지는 다시 소환해서 물어보면 된다. 여기서 귀가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이는 불법구금이 되어 손해배상 감이다.

여기서 쟁점은 그렇게 귀가한 사람에 대해 경찰이 소환불응으로 보고 체포영장을 청구할 경우 법원이 체포영장을 발부할 것인가이다. 나는 체포영장을 발부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틀림없이 피의자는 소환에 응하여 사법절차를 회피하지 않을 의사를 명백히 밝혔다. 그렇다면 체포영장을 발부할 이유가 없다.

체포의 목적은 수사가 아니다. 수사일 수가 없다. 헌법이 묵비권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사의 목적은 일단 피의자가 앞으로의 사법절차를 회피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받는 것이다. 즉 도피 우려가 있다고 법원이 인정하면 구속을 시켜야 하지만 그런 정황이 없다면 체포를 해서는 안된다.

더 지난한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체포기간이 무조건 48시간까지 확보되어 있는 것도 문제이다. 묵비권 행사를 하는 피의자는 즉시 풀어주는 것이 체포의 헌법적 목적에 더 부합하는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현실을 모른다고 땅을 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피의자와 치열하게 심리전을 벌여야 하는 수사현실이 있을 거다. 우리나라 형사사법시스템은 표현의 자유, 공안 분야를 제외한다면 비교적 청렴하고 효율적으로 평가받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 노련한 심리전도 기여한 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수의 사건에서는 틀림없이 피의자는 자신은 100% 결백하다고 믿고 검찰과 경찰의 질문을 받는 것 자체를 고통스러워한다. 전직 대통령 1인도 그랬다. 또는 고통 때문이 아니라 주변인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일부러 신문을 피하기 위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이들의 고통과 선택 모두 지나칠 수 없는 헌법적인 문제들이다.

※ 첨언 – 묵비권 행사하는 사람에 대한 신문이 즉시 중단된다면 변호사의 신문참여권도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지금은 묵비권을 행사하는 사람도 5시간 조사를 받기도 하는데, 이런 조사에 변호인이 참여하도록 할 재력이 있는 사람도 없지만 그런 재력이 있어도 답변 없는 질문에 참여하는 것이 큰 의미도 없다. 묵비권을 행사할 때 신문을 즉시 중단해주면 변호인도 그렇게 오래 붙들려 있을 필요가 없고 피의자에게 질문에 대해 설명을 해주는 등 의미 있는 조력을 제공하고 다른 일정을 소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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