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판을 오른 주봉희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무효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내린 다음날, 오랜만에 그를 보았다. 해고노동자를 끌어안은 채 서럽게 우는 반백이 넘은 늙은 노동자. 조간신문에 실린 사진을 통해서였지만 그가 느꼈을 슬픔과 비탄이 전해져 가슴이 저려왔다. “한 쪽으로 기운 저울은 저울이 아닌데… 그런 저울은 부셔버리는 게 나은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안아주고 같이 우는 것밖에 없어서 더 서러웠어.” 전화 속 목소리는 하루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젖어 있었다.

민주노총 부위원장 주봉희. 그는 언론노동자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1990년대 초반부터 방송사의 용역 운전기사로 일해오고 있는 언론사 비정규직노동자다. <추적60분> 등의 프로그램을 제작하던 무렵 나는 그와 자주 지방출장을 함께 다니곤 했었다. 정규직 운전기사의 1/4에 불과했던 박봉 탓에 연장근무와 휴일특근, 장기출장에도 앞 다퉈 자원하며 갖은 차별을 감수했던 용역직 기사들. 조명용구 상자와 트라이포드를 군말 없이 들어주는 데다 태도 또한 온순했기 때문에 PD들은 정규직 운전기사보다도 그들과 함께 일하는 쪽을 오히려 선호했었다.

그러나 주봉희는 2000년 6월, 7년 동안 다니던 KBS로부터 해고를 당했다. IMF위기와 함께 불어 닥친 구조조정 태풍 속에서 98년 6월에 제정된 파견근로자법의 적용을 받게 된 까닭이었다. 2년에서 하루라도 더 넘겨 근로계약이 유지되면 정규직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조항 탓에 파견계약기간 일주일을 남기고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 이후 그는 ‘사나운’ 사람으로 돌변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운전기사, FD, 카메라 보조원들을 모아 비정규직 노조를 결성하고, 매일 아침 KBS본관 앞에서 항의집회를 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 지쳐 조합원들이 거의 다 떨어져나가도 몇몇 대학생들의 도움에 의지해 혼자만의 투쟁을 고집스럽게 펼쳐나갔다.

나는 이따금 멀찍이에서 그의 싸움을 지켜보곤 했었다. 인간적으로 안타까웠다. 하지만 뭔가 민망하고, 마땅히 도울 방법도 찾을 수 없어 언젠가 부터는 외면하고 말았다. 그리고 4년여의 투쟁 끝에 KBS가 설립한 자회사의 운전사 직으로, 언론노조 비정규직 KBS분회장으로 돌아온 그를 대할 때마다 늘 마음 한 구석을 찔려하곤 했다.

2011년 나는 언론사 비정규직노동자의 상징으로서 주봉희에 대해 ‘오랫동안 지녀왔던’ 부채의식을 청산할 기회를 맞았었다. 언론노조 일을 시작하며 나는 임기 내에 비정규직 조직화와 처우개선에 획기적인 진전을 이루겠다는 당찬(!) 목표를 내세웠다. 비정규직을 제대로 아울러야만 언론노조의 정당성과 대표성이 온전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비정규직들의 광범위한 조직화를 이루어내고 나면 외주제작 부문은 물론 케이블TV와 IPTV 등 미디어 영역 전반으로까지 영향력과 산업적 통제력을 확장해나가겠다는 야심찬 구상을 세우기도 했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나는 임기 내내 그런 구상을 거의 펼치지 못했다. 날로 확산되는 비정규직 미디어노동의 실태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 조직화의 실마리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기존 운동의 관성과 상황논리에 휩쓸려 들어갔다. 그 결과로, 2012년 사상초유의 방송3사 연대파업을 벌이면서 역설적으로 지상파/정규직 중심 기존 언론운동의 한계를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오랜 기간 눈물겹게 싸웠지만, 우리들만의 파업에는 예전만한 위력이 없었다. 간부들과 ‘수시채용자’들은 조합원으로서 투쟁에 나선 정규직 노동자들을 대신해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지휘·관리하며 생산량을 유지했다. 외주제작사의 노동자들은 변함없이 방송 콘텐츠의 절반을 공급했고, 케이블·IPTV·종편채널들은 오히려 이 상황을 자신들이 지상파의 대체재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았다. 노동을 이리저리 분할시키면서 외국자본과 재벌들의 지배력을 확장하는 구도로 산업의 판도가 이미 재편되고 있었지만 우리의 준비와 전략은 구태의연했으니, 실패는 실로 예정된 결말이었다. 우리 정규직 언론노동자 부대는 결국 숱한 사상자들을 남긴 채 분루를 삼키며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다시 2년, 아직도 지난 패배의 기억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내게 요즘 케이블TV·IPTV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벌이고 있는 강렬한 투쟁은 너무나 경이롭고 충격적이다. 우선 주봉희의 두 후예들이 프레스센터 앞 대형 전광판 위에 올라 벌이고 있는 대담한 고공농성이 많은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2년 전 대선국면 와중에 언론노조 집행부 역시 그곳에서 해고자 복직을 내건 고공농성을 준비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논란이 있었고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아무래도 절박함의 차이가 아닌가 싶어요.” C&M노동자들의 점거 소식을 전하는 당시 농성준비를 주도했던 후배의 목소리에는 못 다한 투쟁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 배어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싸움이 내 눈길을 오래 사로잡는 진짜 이유는 투쟁의 강도보다도 그들의 투쟁에 내포된 사회적 의미 자체에 있다. 지금까지 미디어 구조개편을 주도해온 자본과 관료, 그들의 이데올로그들은 방송통신융합의 찬란한 미래를, ICT산업의 무한한 성장가능성을 선전해왔다. 하지만 강성덕, 임정균의 고공농성과 C&M, SK브로드밴드, LGU+ 노동자들의 총파업은 방통융합의 실상이 다단계 하도급, 위장도급 등 온갖 탈·불법과 장시간 근로, 저임금, 악랄한 노조탄압으로 얼룩진 디스토피아라는 사실을 여지없이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금압박으로 누적손실이 수천억 원이 되어도 당기순익의 80% 이상을 배당으로 빼가는 사모펀드 MBK와 맥쿼리. 그들의 투쟁은 외국 금융자본과 통신재벌들의 악행을 의제화 함으로써 이 나라의 미디어 영역이 공공성이 전무한 탐욕의 난장판으로 전락했음을 또렷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바야흐로 정규직노동자들의 일상을 점점 더 옥죄어 오는 자본과 권력의 공세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를, 자사 이기주의를 넘어선 진정한 연대란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여, 비록 다리를 다쳐 방구들 신세를 지고 있지만 내 마음은 요즘 항상 프레스센터 앞에, 또 다른 주봉희들과 함께 있다. 그동안의 수세를 벗어나고 무기력함을 떨칠 돌파구를 그곳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지금은 우리 언론노동자들이 자본과 권력이 설정한 노동의 분할을 과감히 뛰어넘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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