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4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만나러 국회로 갔다. 아침 8시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가 예정돼 있었다. 언제나처럼 출입기자 수십 명이 새벽 댓바람부터 최고위원회의를 취재하고 있었다. 김무성 대표의 이른바 ‘마약 사위’ 파문이 불거진 게 9월 10일이다. 주말을 지내고 김대표가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자리기 때문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김 대표는 목소리가 완전히 잠겨 있었다. 얼굴은 푸석푸석했고 눈 밑 다크서클은 거무스름했다.
회의는 비공개로 1시간가량 진행됐다. 회의가 끝나고 다른 최고위원들이 나왔다. 국감 일정이 바쁜 날이다. 최고위원들은 나오면서 기다리던 출입기자들에게 한 마디씩 회의내용에 대한 이른바 ‘백브리핑’(Back Briefing)을 하고 자리를 떠났다. 출입기자들은 최고위원들이 한 말을 메모했다가 서로 복기하고 녹음파일을 공유하기도 했다.
김무성 대표는 나오지 않았다. 1시간 정도 기다렸다. 상당수 기자들은 자리를 떠났다. 언론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10명 정도의 기자들만 눈치를 보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 자기가 없는 자리에서 중요한 말이라도 나오면 이른바 ‘물을 먹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나도 촬영팀과 함께 문 앞에서 김무성 대표를 기다렸다. 옆에 앉아 있는 얼굴 모르는 기자들이 서로 대화를 나눈다. “무대(김무성 대표를 대장이라고 부르는 애칭이다) 아직 안에 있냐?” “글쎄, 아까 나간 거 아니야?” “과천에서 국감 있어서 나갔을 건데...” “근데 왜 다들 기다리고 있지?” 순간 불안해졌다. 출입문은 몇 개 되지 않는다. 촬영팀과 나는 한눈을 팔지 않았다....아니 팔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진짜 이 친구들은 왜 안 가고 여기서 뻗치기를 하고 있는 거지?’
새누리당 관계자쯤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오더니 기자들에게 크게 고지했다. “저번 주에 협의했듯이 회의 끝나고 (김무성 대표) 백브리핑 안 합니다.” ‘마약 사위’로 김무성 대표가 심기가 불편하니 서로 질의응답은 생략하자는 뜻이다. 이 말을 듣고 몇몇 기자들이 또 자리를 떠났다. 남은 기자들은 나를 포함해 7-8명 정도. 그래도 안에 있다는 말에 안도감이 들었다. 오늘 김무성 대표를 못 만나면 내일까지 개고생이다!
명함을 드리고 누구시냐고 물어봤다. 새누리당 상근부대변이시다. 부친 친일 행적과 관련해서 질의를 서면으로, 또 문자로 보냈는데 답변이 없어서 직접 왔다고 말했다. “출입기자단이랑 양해가 됐는데 이러시면 안 되죠.” “출입기자들이랑 협의한 걸 왜 저한테 강요하시죠?” “절차를 지켜야죠. 뉴스타파는 이렇게 마구잡이로 합니까?” “답변이 없어서 답변을 들으려고 기다리고 있잖아요.”
몇 마디 더 대화를 하다 서로 의미 없음을 깨달았다. 다시 기다림 모드. 잠깐 딴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드니 김무성 대표가 수행원 3-4명을 데리고 내 앞을 지나쳐 간다. 이런 젠장. 좀 뒤에서 따라가 봤다. 도대체 기자들이 질문을 하는지 안 하는지 궁금했다. 기다려봤다. 기자들이 김무성 대표를 에워싸고 행진한다. 각자 녹음기, 스마트폰 등을 켜고 김무성 대표를 따라간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영상을 다시 봐도 재밌는 풍경이다. 도대체 뭘 녹음하고 있는 거지?
출입기자들에게 시간을 줄만큼 줬다. 물어봤다. “해촌 선생 관련해서 여쭤볼 게 있어서요.” 아까 그 부대변인이 어깨로 슬쩍 길을 막는다. “절차를 지키세요.” 한 번 더 물어봤다. 부대변인은 아예 두 팔을 쫙 벌려서 막아선다. “절차를 지키세요.” 끈질기다. 끈질기기로 따지면 나도 전국 천등에는 들어간다.
김무성 대표의 부친 김용주가 일제 말기 ‘군용기 헌납 운동’을 종용하며 아사히신문에 실은 광고를 빼들었다. “김 대표님, 이 사진 한 장 보고 말씀하시죠.” 순간 김무성 대표가 움찔했다. 0.3초 정도 눈길이 사진을 향했다. 사진? 뭐지? 시꺼멓고 쪼만한 애, 얘는 뭐지? 보좌진들이 합세해서 더욱 격렬하게 막는다. 보좌진이 막지 않았으면 김무성 대표는 아마 몇 마디 했을 거다. 밀어 넘어뜨릴 기세다. 아예 팔을 잡는다. 또 ‘절차’ 드립. “절차를 지키세요.” 나도 슬슬 열이 받는다. “얘기 좀 합시다.”
요리조리 피해서 김무성 대표의 옆구리를 파고 들었다. 사진을 다시 밀어 넣었다. “대표님, 이게 1944년 사진이에요. 해촌 선생이...” 이번에는 김무성 대표가 직접 사진을 뿌리친다. 차에 올라탄다. 보좌관들 서너 명이 어깨로 막고 팔짱을 낀다. 난 당신이랑 팔짱 끼고 싶지 않거든요? 김무성 대표를 태운 차량이 유유히 떠났다.
새누리당 부대변인이 나에게 다시 말한다. “출입기자들하고 질문 안 하기로 다 협의가 됐어요.” 나는 말했다. “출입기자들하고 협의하면 우리나라 기자 전체가 질문을 못하는 겁니까?”
뉴스타파와 김무성 대표와의 인터뷰 실랑이를 옆에서 본 뉴시스 기자는 이 상황을 기사로 썼다. <김무성 "백브리핑 없다" 선언 후 취재진과 '실랑이'> 세상에. 아무도 질문하지 않은 것도 코미디지만, 어떤 기자가 질문을 하니까 그게 기사가 되는 건 더 코미디다.
박근혜 대통령 신년회견 때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청와대와 서로 짜고 질문을 하더니, 새누리당 출입기자들은 당 대표에게 질문을 아예 안 하겠다고 협의를 했단다. 김무성 대표 측이 일방적으로 백브리핑이 없다고 ‘선언’했다는 말도 있지만, 결국 어떤 기자도 질문을 안 한 건 사실이다. 언제부터 우리 기자들이 이렇게 말을 잘 듣는 순둥이들이 됐나.
기자는 기록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질문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김무성 대표의 심기가 걱정이 되면 보좌관으로 들어가면 되고, 불러주는 대로 적으려면 당 기관지에 취직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