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노동’을 ‘고용’한 자본부!

‘장그래법’ 사기 정책에 동원된 설문조사

만일 전쟁 포로들에게 이런 설문조사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을 사형시켜야 할지도 모르는데, 최대 몇 년 뒤에 집행했으면 하는가?” 답변 항목에는 1년부터 5년까지를 적어놓고 맨 마지막에 ‘기간결정 안했으면 좋겠다’가 있었다. 몸을 크게 다쳐 삶을 포기한 극소수는 1년을 쓸 수도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은 5년 또는 마지막 항목을 답으로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설문 결과 발표 내용이다. “적국의 포로들은 우리나라가 너무 마음에 들었는지 본국 송환을 바라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으며 되도록 오래오래 우리나라에 머물고 싶어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분석 아닌가? ‘본국 송환’이라는 답변 항목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는데!

‘장그래법’의 근거가 된 설문 분석 사기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12월 29일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기존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한다는 대책이다. 이른바 ‘장그래법’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대책은, 비록 35세 이상 그리고 본인이 원할 경우라는 단서조항이 붙어있긴 했지만, 삽시간에 SNS 상에는 “장그래가 원한 건 정규직 전환이었지, 기간연장이 아니었다”며 뜨거운 비판의 목소리들이 올라왔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이 대책을 내놓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기간 연장을 원하고 있다”며 그 근거로 설문조사 결과 하나를 내놓았다. 하지만 그 설문문항과 답변 항목들을 보면 정말 고약하기 그지없다.

[고용노동부 설문 문항] 귀하는 한 사업장에서 기간제근로자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을 최대 몇 년까지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① 1년 ② 2년 ③ 3년 ④ 4년 ⑤ 5년 ⑥ 기간제한 필요 없음

자, 위의 질문에 여러분은 어떤 답변을 선택하시겠는가? 그렇다. 맨 앞에 사례로 든 포로들과 똑같은 입장일 것이다. ‘정규직 전환’이라는 답변 항목이 없으니 당연히 ‘5년’과 ‘기간제한 필요없음’을 선택할 것이다. 특히 ‘기간제한 필요없음’이란 답변은 누가 봐도 평생 고용, 즉 정규직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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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답변 분포는 위와 같이 나왔다. ‘기간제한 필요없음’ 항목에 무려 53%의 답이 몰렸고, ‘5년’이란 답변이 그 다음으로 많은 14.8%였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바로 위 설문조사 결과를 놓고 “비정규직 스스로 기간연장을 원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자는 이른바 ‘장그래법’의 근거라는 것이다.

자본의 마름이 되어 버린 고용노동부

나중에 설문 문항이 언론에 알려지게 되자 고용노동부 답변이 오히려 더 기가 막히다. 한겨레 취재에 따르면 고용노동부 관계자가 “정규직 전환 의사를 물으면 대부분 그쪽으로 응답할 게 뻔하다. 또 정규직 전환 대신 계약을 해지하는 비율이 77.0%에 이르는 현실에서 이를 묻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한겨레 2014. 12. 31.)

정규직 전환은 어차피 힘드니 답변 문항에서 뺐다는 것이다. 이럴 거면 뭐하러 설문조사를 했단 말인가? 그리고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근로감독을 하는 주체가 바로 고용노동부 아니던가. 그런데 정규직 전환이 힘들다는 전제 위에서 설문문항을 설계하다니!

문제의 설문조사의 맹점은 이것 말고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기간제로 근무한 총 기간”을 묻는 설문에 무려 33.9%의 답변자가 ‘2년 이상’이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현행 기간제법상 근무기간이 2년 넘으면 당연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본인이 원하면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 무조건 정규직이 되는 것이다.

답변자의 1/3에 달하는 이들에 대해 ‘불법’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들은 본인을 ‘계약직’이 아니라 ‘정규직’이라고 알고 있어야 정상이다. 그렇다면 고용노동부는 응당 ‘2년 이상’이라 답변한 사업장에 대해 즉각 근로감독을 실시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지도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노동조합이 파업이라도 한 번 할라치면 득달같이 달려와 ‘불법’ ‘탈법’ 운운하는 고용노동부, 하지만 자본의 불법에는 천사처럼 관대하다. 노동자들이 무슨 일만 벌이면 ‘불법에 타협 없다’면서, 자본가들의 불법은 눈감아준다. 아니, 자본가들의 불법을 봐주는 데에 타협이 없다.

“산재 은폐는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어 객관적인 근거가 떨어지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게 부담스러웠다”(고용노동부 관계자) “산재 은폐는 파급력이 커서 객관성이 중요한데 설문조사는 객관적 증거가 될 수 없어서 뺐다”(안전공단 관계자)

고용노동부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외부 연구진에 의뢰한 산업재해 관련 조사에서, 애초 ‘산재 은폐’ 관련 설문조사 결과가 중간보고서에는 들어갔으나 최종 보고서에서 누락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고용노동부 관계자가 쏟아낸 말들이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철강·조선 업종에서 엄청나게 산재 은폐가 빈발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 결과를 빼버린 것이다.

설문조사를 자본에게 유리하게 설계한 것은 자기 입맛대로 해석해서 공개하고, 설문조사 결과가 자본에게 불리하다 싶으면 제멋대로 누락해 버리다니. 아, 그래서 ‘노동’부란 이름을 ‘고용노동’부로 바꿨을까?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존재하는 행정부처가 아니라, ‘노동’을 ‘고용’한 자본가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곳이라는 뜻 말이다.

  • 노동부는 2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노동자의 편이 아니라 고용주의 편이었고, 앞으로도 쭈~욱 변함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민주당 집권 때도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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