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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주의 변곡점, 성완종 게이트

오민규 프로필 사진 오민규 2015년 04월 15일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연이은 참사, 노동관계법 개악, 민주노총 총파업, 정권 지지율 하락, 권력형 비리 사태 …


최근 벌어지는 일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20년 전 김영삼 정부 시절에 똑같이 반복된 역사였다. 1994년에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이듬해(1995년)엔 삼풍백화점이 붕괴하여 500여 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다음 해인 1996년, 김영삼 정부는 “투쟁과 분배 우선에서 벗어나 경제 발전과 함께 가는 합리적 생산적 노동운동” 등 이른바 ‘신노사관계 구상’을 발표, 노동법 개악에 착수하게 된다. 그해 12월 26일 새벽, 신한국당과 김영삼 정권은 노동법과 안기부법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하지만 퇴행하는 역사의 물줄기를 되돌려 세운 흐름이 있었으니, 창립한 지 1년 남짓한 민주노총이 무기한 전면 총파업을 선언한 것이다. 노동자들의 저항이 종이호랑이 수준일 것으로 착각한 정권은, 해를 넘겨 3주 동안 연인원 수백만의 성난 총파업 노동자들을 만나야 했다.


정리해고제를 도입하고 안기부법을 개악시킨 날치기는 평범한 국민들의 엄청난 분노를 자아냈다. 연일 김영삼 대통령이 쏟아내는 총파업에 대한 비난은 오히려 정권의 지지율을 곤두박질치도록 만들었다. 게다가 한보철강 비리와 김현철 게이트가 연이어 터지자, 총파업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은 김영삼 정권은 이후 거의 ‘식물정권’ 수준으로 전락하게 된다.


돌이켜 보면 국민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고 이윤만을 좇던 ‘빨리빨리’ 자본주의 시스템이 낳은 참사들이었다. 197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의 개발독재로부터 쌓여온 적폐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었다. 시스템 자체가 위기로 치달으며 결국 1997년 말에는 IMF 공황이라는 거대한 붕괴 위기로 몰리게 된다.



반복되는 역사


누군가 한국 현대사를 기록한다면 IMF 이전과 이후의 역사가 크게 구분된다고 적을 것이다. 실업과 정리해고, 비정규직이라는 새로운 사회 현상이 대두된 것도 IMF 공황 이후였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한 번 유사한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의 역사 역시 완전히 달라졌다. 이윤만을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IMF 이후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적폐가 이제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멀쩡해 보이던 타워크레인이 무너지고, 병원과 지하철에 화재가 빈발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업무마저 모조리 외주화·비정규직화되어 버렸고, 이제 그것도 모자라 ‘비정규직 종합대책’이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 무한착취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파견허용업종을 고령자와 400여 개에 달하는 전문직으로 확대하겠다고 한다.


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취업규칙을 쉽게 개악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법 개악이 추진되고 있다. 비정규직 착취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자본가들이 드디어 정규직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위기의식을 느낀 노동자들은 지난해 연말 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박근혜와 맞짱뜨는 총파업’을 내세운 쌍용차 해고자 한상균을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선출하기에 이른다.


그런 상황에서 경남기업 성완종 전 회장이 자원개발 비리 건으로 수사를 받던 도중, 억울함을 호소하며 돌연 잠적하더니 결국 싸늘한 시체가 되어 발견되었다. 수많은 정계 실력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구명을 시도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자 자살을 결행하면서 그가 돈을 건넨 정치인들 목록을 남겼다. ‘성완종 게이트’의 문이 열린 것이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비리 사태의 앞에 있느냐 뒤에 있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20년 전의 상황 전개와 너무도 흡사하게 닮았다. 박근혜 정부 지지율은 당시 김영삼 정부 지지율처럼 곤두박질치기 시작했고, 한보철강이 부도 사태를 맞으며 정태수 회장의 엄청난 로비 행태가 드러난 것처럼, 성완종 씨가 회장으로 있던 경남건설 역시 현재 법정관리 상태이다.


IMF 공황 직전 시기처럼 현재 한국의 경제상황 역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쌓아놓은 수많은 적폐가 박근혜 정부 치하에서 집중적으로 터져 나온다. 그렇다. 1995년 직후 국면처럼, 지금이 바로 한국 자본주의의 중요한 변곡점에 해당하는 시기라는 말이 된다.



기업이 망해도 자본가는 망하지 않는다


경남기업은 어떤 곳인가? 건설업계 30위 안에서 반세기 이상을 살아남은 업체는 현대건설, 대림산업과 경남기업이 유일하다. 그만큼 오랜 역사를 갖고 있기도 하지만,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주인이 여러 번 바뀌는 등 수많은 우여곡절을 갖고 있기도 하다.


성완종 씨의 손에 경남기업이 넘어온 것은 2003년이다. 서산토건에 입사해 건설업계에 발을 들인 성완종 씨는 이후 직접 서산토건을 인수하고 대아건설로 이름을 바꾼 뒤, 대우그룹에 편입되어 있던 경남기업까지 손에 쥐며 매출 2조 원 대까지 도약하는 등 일약 건설업계 중견기업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얼마 지나지 않아 내리막길을 걷게 되는데, 그게 바로 문제의 ‘자원외교’라는 말씀. 2006년부터 러시아 캄차카 석유광구 탐사, 중앙아시아 아제르바이잔 이남(INAM)광구 석유 탐사에 본격 진출하며 노무현 정부로부터 '성공불융자금' 330억 원을 받았지만, 번번이 실패를 보게 된다.


위기에 처한 경남기업의 자본가 성완종 씨가 당시 택한 일은 정치권에 줄을 대는 것이었다. 죽기 직전 그의 입으로 직접 얘기한바, 2006년에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 측근으로 있던 김기춘․허태열에게 수억 원을 건넸다고 하지 않았는가. 기업이 위기에 처해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던 바로 그 시절, 자본가는 정치인에게 뒷돈을 대줄 수십억을 펑펑 쓰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2009년 경남기업은 워크아웃 상태에 들어간다. 2011년에 워크아웃을 조기졸업 하며 회생의 의지를 다지기도 했지만, 바로 그때에도 성완종 전 회장이 선택한 것은 로비였다. 2011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홍준표에게 1억을, 2012년 박근혜 캠프 조직 총괄본부장이던 홍문종에게 대선 자금 2억을 건넸다고 진술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경남기업은 2013년에 결국 2차 워크아웃에 돌입, 지난달에는 완전 자본잠식상태가 되어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된다. 노동자들에게는 위기를 강조하고 끝없는 희생을 강요하면서, 정작 위기를 불러온 자본가는 수십억의 로비 자금을 뿌려대고 있었다.


이게 어디 재계순위 상위에 들지도 못한 경남기업만의 일일까? 돈 뿌리기로는 재벌 상위 그룹이 훨씬 더할 텐데, 대체 그들이 뿌리는 액수는 얼마이며 그 대가로 챙겨간 이윤은 또 얼마일까? 그 과정에서 자본가들은 위기를 벗어났겠지만, 위기를 빙자해 퇴직을 강요하고 임금삭감을 강요당한 노동자들의 피해는 또 얼마일까?



노동자와 자본가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법과 원칙’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정부와 여당은 어김없이 ‘성역 없는 수사’를 들고 나온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들이 말하는 ‘성역’은 야당일 뿐이다. “우리만 처먹었느냐? 너희도 처먹었지. 그러니까 적당히 하고 사건 덮자.” 이런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성문종 전 회장의 경남기업이 가장 잘나가던 시절이 바로 노무현 정부 때 아니던가. 겉으로 야당은 대선 자금 수사를 부르짖지만, 결국은 ‘겨 묻은 개’의 본성을 버리지 못하고 타협해 간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처지와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여당과 야당이 번갈아가며 자본가들에게 돈 먹고 더러운 정치를 하지만, 노동자들은 생존권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수십~수백억의 로비 자금은 경남기업과 그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돈이다. 법정 최저임금을 받는 하청의 재하청, 먹이사슬의 최말단에 위치한 노가다들을 착취해서 만든 돈이란 말이다.


검찰의 수사가 제아무리 날카롭게 진행되어도 정치자금이나 대선자금을 ‘뇌물’로 보기 위해서는 그놈의 지긋지긋한 ‘대가성’을 입증해야 한다. 제기랄, 저놈의 잣대는 오직 자본가들에게만 적용된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적용되는 검찰의 잣대는 전혀 다르다.


만일 성완종 전 회장이 경남기업 노동조합에 사무실을 제공하거나 노조 전임자의 임금을 지원한다면, 검찰은 그것의 대가성 여부를 일절 따지지 않고 ‘편의제공’으로 보아 즉각 수사에 착수하며 노동자들을 탄압할 것임이 틀림없다. 이런 잣대를 동일하게 적용한다면, 자본가들이 정치인에게 단돈 1원이라도 제공하면 그것의 대가성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뇌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즉 ‘대가성’이란 말은 자본가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논리에 불과하다.



마지막 변수 - 총파업


20년 전에 등장했던 요소 중 아직 드러나지 않은 변수가 하나 남아 있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민주노총의 총파업이다. 한보 사태와 김현철 비리는, 만일 그 사건 하나만 있었다면 김영삼 정권을 휘청거리게 만들 요소는 아니었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이라는 강펀치를 맞은 상태에서 연달아 비리 사태가 터져 나왔기에 김영삼 정권을 하야 직전으로까지 몰고 갔던 것.


그렇다면 저 더러운 정경유착의 사슬을 끊기를 염원하는 이들이라면 민주노총의 총파업에 힘을 실어줄 차례이다. 여당도 야당도 모두 철저히 조사하고 그 진상을 낱낱이 전 국민 앞에 공개하라. 자본가들이 사용한 모든 로비 자금을 최저임금 인상과 고용안정 기금으로 사용하라. 경남기업만이 아니라 이 나라 모든 재벌의 더러운 행위에 대한 전면 수사에 착수하라. 재벌 배불리기가 아니라 노동자 살리기 총파업을 선언한 민주노총의 요구가 바로 이런 것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