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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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내고 치료해주면 사고 없던 걸로 해주나요?

오민규 프로필 사진 오민규 2015년 07월 07일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최저임금 대폭 인상 없이는 최저임금 위반도 잡을 수 없다.



귀 공투본에서 최저임금 위반여부에 대한 확인을 요청한 경기남부권역 지자체 6곳에 대해 조사한 결과, 위반 없음 2곳, 추경예산편성을 통한 소급지급 3곳, 위반 있음 1곳으로 확인됨.



지난 7월 1일 경기지방고용노동지청이 경기도 내 지자체 최저임금 위반 여부를 조사해 통보한 결과이다. 위반이 의심되는 6곳의 지자체 중 1곳은 위반이고 2곳은 위반이 아니라고 봤다. 그런데 문제는 나머지 3곳이다. 추경예산편성을 통한 소급지급? 대체 이건 법 위반이라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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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방자치단체부터 최저임금 위반이라니?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민주노총 소속 민주일반연맹이 전국의 광역 및 지방자치단체 중 세종시와 제주도를 제외한 245곳의 지자체 홈페이지에 공시된 2015년 일반·특별회계 세입세출예산서 및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비정규직인건비 예산 편성표를 확보해 이들 지방자치단체의 2015년 인건비예산을 분석한 결과, 놀랍게도 무려 78곳이 최저임금법(시급 5,580원)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놀라운 사실을 접하고 민주노총은 공공부문 산별연맹과 함께 지난 4월 8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이 사실을 폭로했으며, 민주일반연맹은 국민권익위원회에 이 내용을 전달했다. 권익위 측은 고용노동부에 내용을 전달했다고 통보해왔다. (기자회견 내용 및 최저임금 위반 증빙자료는 모두 4월 8일 기자회견 시점부터 민주노총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음.)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이 사건에 대해 무려 2개월 동안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참다못해 민주일반연맹 등이 지난 6월 17일, 각급 노동지청 면담을 통해 최저임금 위반 여부 조사를 재차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불과 2주일 만인 7월 1일, 위와 같은 조사결과가 먼저 경기지방노동지청에서 나온 것이다. 추가로 다른 지방노동청에서 결과가 나오게 되면 최저임금 위반 지자체의 숫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소급 지급했으니 문제없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경기고용노동지청은 위반이 의심되는 6곳 중 3곳은 추경 예산편성을 통해 소급 지급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급해서 지급하면 그만인가? 추경 예산편성까지 해서 소급 지급을 할 정도였다면, 그 이전에는 명백한 최저임금 위반이었음이 분명한데 말이다.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가해자)이 차를 몰고 가다가 다른 사람(피해자)을 다치게 했다고 해보자. 당연히 가해자는 피해자가 몸을 치료하고 정상이 돌아오도록 비용을 대는 등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그런 책임을 졌다고 해서 교통사고 자체가 없던 것이 되는가? 교통사고를 낸 것은 낸 것대로 별도의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경기지청은 소급 지급한 지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 위 문서의 맨 마지막 부분에 법을 위반한 지자체에 대해 후속 조치를 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경기지청이 ‘위반 있음’이라고 본 것은 1개의 지자체에 불과하니 말이다.


이건 말 그대로 교통사고를 냈으나 치료해 줬으니 교통사고는 없던 걸로 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부 지자체가 최저임금을 위반해도 나중에 돈으로 물어주면 아무런 형사책임도, 행정적 불이익도 당하지 않는데, 도대체 어떤 사용자들이 최저임금법 위반을 꺼려하겠는가?



막바지 최저임금 교섭, 대폭인상 염원 실현시켜줄까?


오늘(7일)과 내일(8일), 최저임금심의위원회는 연달아 전원회의를 열고 내년도 법정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마지막 절차에 들어간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사용자 측은 올해에도 최저임금 동결(내년에도 시급 5,580원)안을 냈다가 1차 수정안으로 고작 30원 인상된 시급 5,610원을 제시한 상태이다.


사용자들은 그럴 때마다 고장난 레코드처럼 이렇게 말한다. “최저임금 위반율·영향률이 계속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건 그동안 최저임금을 너무 많이 올려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최저임금 인상이 아니라 안정화를 꾀해야 한다.” 그들이 말하는 안정화(?)란 곧 동결 또는 아주 소폭의 인상을 의미한다.


하지만 위의 사례를 보면 최저임금이 오르는 것과 최저임금 위반율이 높아지는 것에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최저임금이 많이 오르건 적게 오르건, 심지어 지불능력이 충분한 정부기관조차 어떻게든 최저임금보다 낮은 수준의 임금을 주려고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서 밝힌 것처럼 최저임금을 위반해도 별다른 불이익이나 처벌을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용자들이 왜 법을 지키겠는가? 최저임금 위반율이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최저임금이 많이 올라서가 아니라 정부 당국이 이를 시정할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내년 법정 최저임금 결정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최저임금 위반율·영향율 얘기를 하기 전에 정부 당국이 최저임금 위반에 대한 강력한 시정 의지를 갖고, 최저임금을 위반한 사업주에 대해 가능한 최대치의 행정적 불이익과 함께 형사처벌을 하겠다고 천명해야 한다. 당장 법을 위반한 지자체부터 책임을 물어야 한다. 소급 지급을 했다고 해서 죄가 사라지는 게 아니지 않는가.


아울러 그동안 위반율이 어떻고 영향률이 어떻고 하면서 최저임금 인상폭을 억제해온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서라도, 내년 법정 최저임금은 1만원으로 대폭 인상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빠른 속도로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던 최경환 부총리를 비롯해 정부 고위관계자들의 언급이 모조리 사기이자 거짓말이었음을 고백하는 꼴이 될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