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논의를 위한 최소한의 전제, 최저임금법 개정

2015년이었다. 최저임금 심의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최저임금 1만원’을, 사용자위원들은 ‘최저임금 동결’을 최초 요구안으로 제시했다. 줄다리기를 벌이다가 노사 양측이 수정안을 내기 시작했다. 3차례의 수정안이 오고 간 뒤에 공익위원들이 노사 양측을 조정한다며 ‘심의구간’이란 것을 내놓았다.

“5,940원(6.5%)~6,120원(9.7%)”

대폭 올려도 부족할 최저임금 인상률 한 자리수라니? 노동자위원들은 강력한 항의의 표시로 교섭장을 박차고 나왔다. 노동자위원이 빠진 자리에서 공익위원과 사용자위원은 위 심의구간의 중간치인 시급 6,030원으로 2016년 적용 최저임금을 결정하게 된다.

2016년에도 양 노총은 최저임금 1만원을, 사용자위원은 동결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번엔 팽팽했다. 노동자위원들은 1만원에서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며 수정안 제시를 거부했다. 사용자위원들도 동결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다시 공익위원들이 턱없이 부족한 심의구간을 내놓자 노동자위원들이 퇴장했다. 공익위원과 사용자위원은 다시한번 일방적으로 시급 6,470원을 2017년 적용 최저임금으로 결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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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과 2016년에 진행된 최저임금 교섭과정을 표로 정리해봤다. 최초요구안과 최종 결정 사이에 3차례의 수정안을 주고받은 2015년, 수정안을 일체 제시하지 않은 2016년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그렇다. 사실상 청와대가 미리 정해놓은 각본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최근 공개된 김영한 청와대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업무일지)에 따르면, 2014년 6월 20일에 “6/30까지 내년도 최저임금액 결정, 인상률 놓고 대립. 案(안)으로 投票(투표). 7% 인상 線(선)”이라고 쓰여 있다. 실제로 1주일 뒤인 6월 27일 새벽, 최저임금은 비망록 내용처럼 7.1% 인상으로 결정되었다. 최저임금이 청와대 각본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은 단순한 의혹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동안 수정안을 제시하는 과정은, 이게 각본이 아니라 노사 양측이 한발씩 양보하고 공익위원이 중재하며 답을 찾아가는 교섭처럼 보이게 만드는 장식물이었다. 그 장식물(수정안)이 제거된 2016년의 결과를 보라. 2015년과 차이를 거의 확인할 수 없지 않은가.

짜놓은 각본에 따라 판을 주도하는 것은 ‘공익(公益)위원’이라는 탈을 썼을 뿐, 실제로는 청와대가 임명한 ‘정부위원들’이다. 2015~2016년 교섭에서 번번이 이들에게 뒤통수를 맞은 민주노총·한국노총의 노동자위원들은 지난해 전원 사퇴서를 제출한 상태이다. ‘기울어진 운동장’ 최저임금 제도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교섭 자체가 의미가 없음을 선언한 것이다.

2017년 2월, 최저임금 제도를 개혁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 다수의 예상대로 헌재의 탄핵 심판 최종 결정이 2월말 3월초에 나온다면 4월말 5월초에 대선이 치러진다. 그럴 경우 4월 임시국회는 사실상 식물국회나 다름없게 된다. 최저임금 심의와 교섭이 6월에 집중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2월 임시국회가 최저임금 제도개선의 사실상 마지노선이다.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일까? 개혁 입법이 아니라 대권 경쟁에만 몰두하던 여야 정당들이 2월 임시국회에서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다루기로 합의했다. 오는 2월 17일(금)에 환노위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최저임금법을 다룰 예정이란다.

20대 국회 개원 후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무려 23개에 달한다. 최저임금 제도를 개선하는 법안도 있고, 애매한 개정안도 있으며, 제도를 개악하는 법안도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는 법! 각각의 법안을 검토하기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펴려면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3~4가지만 짚어보도록 하자.

우선 시대변화에 걸맞게 최저임금의 결정기준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현행 최저임금법 4조에 따르면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여”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 중 ‘근로자의 생계비’가 문제인데, 1988년 최저임금 제도가 생긴 이래로 정부는 ‘비혼 단신근로자 생계비’만을 제시하고 있다. 최저임금 제도가 생긴지 벌써 30년이 되었건만 아직도 혼자 사는 노동자 생계비만을 참조해서 최저임금을 결정한다니 이건 너무 구닥다리 아닌가.

게다가 1990년대 말 IMF 구조조정과 2000년대 초반 세계금융위기를 거치며 한국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현재 저임금 노동자의 다수가 40~60대로 최소한 2~3인 가구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따라서 최저임금의 핵심 결정기준은 ‘가구 생계비’, 즉 생계를 같이 하는 부양가족 생계비를 포함하는 생계비로 개정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사실상 청와대가 낙하산으로 내리꽂는 공익위원 선출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노사 양측이 대립하다 어느 한쪽이 퇴장하면 결국 최저임금 결정은 공익위원 손에, 아니 정확히 말하면 청와대 손에 놀아난다. 이게 무슨 최저임금 심의이고 교섭인가.

지금처럼 노동자·사용자·공익위원을 두는 최저임금심의위 틀을 유지하려 한다면, 정부에게 공익위원 선정권한을 줘선 안 된다. 기본적으로 노·사 양측의 추천권을 보장해야 하고,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일부 공익위원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최저임금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획기적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 우선 최저임금조차 떼어먹는 사용자들이 너무 많다. 최저임금은 국가가 정한 ‘최저의 기준’이다. 그런데 정부는 최저임금 위반·미만에 대한 감시·감독조차 소홀히 하고 있다. 근로감독관 수를 대폭 늘리는 것과 함께, 이것으로도 부족하다면 노동조합 간부들을 명예근로감독관으로 위촉해 민·관 합동으로 최저임금 위반 근로감독을 대대적으로 벌이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아울러 최저임금 위반이 발생하는 사례 중 상당수가 재벌들의 도급단가 후려치기에서 비롯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하청업체가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도급계약과 도급단가에 반영하는 것을 법제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최저임금심의위 회의를 공개함으로써 국민 모두가 교섭과정을 볼 수 있도록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 문제는 최저임금 결정기준과 공익위원 선출방식을 바꿔 최저임금 대폭 인상의 길을 연다면 쉽게 해결되는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 최저임금을 찔끔찔끔 올리려 하니 교섭과정과 내용을 숨기고 싶은 것 아니겠는가. 만일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인상되고 국민에게 사랑받는 최저임금심의위가 된다면, 정부가 회의내용을 숨길 이유가 없어진다.

이제 다음주(2.17)면 최저임금법 개정이 어떻게 되는지가 결정된다. 국회가 국민이 부여한 임무를 방기한다면, 올해 최저임금 교섭은 아예 시작조차 못할 공산이 크다. 사퇴서를 제출한 노동자위원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에 다시 들어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제 국회에 묻는다. 최저임금 교섭 파행의 책임을 그대들이 뒤집어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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